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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크레이지 수영천재'황선우,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전영지 기자

입력 2021-07-28 17:17

수정 2021-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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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수영천재'황선우,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올림픽] 황선우 아시아신기록 준비 중<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자유형 100m에서 동양인 최초로 47초 벽을 깨보고 싶어요."



지난해 11월 말, 서울체고 실내수영장에서 만난 열일곱 살 황선우가 해맑은 표정, 담담한 어조로 이 엄청난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경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8초25, 박태환의 기존 한국신기록을 0.17초 앞당긴 며칠 후였다. "다들 아시아 선수는 100m에선 안된다고 하는데, 전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오기가 생겨요." 그로부터 8개월 후, 흘려들었던 그 말이 믿기 힘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황선우는 28일 오전 10시30분 일본 도쿄아쿠아틱스센터에서 펼쳐진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선 1조 3레인에서 47초56초, 전체 16명의 선수 중 4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중국 닝저타오가 보유한 47초65의 아시아신기록을 0.09초 넘어섰다. '광주세계선수권 6관왕' 케일럽 드레슬(미국),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일 차머(호주) 등 지구촌 최강 수영스타들과 나란히 상위 8명의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유일의 결선 진출자, 1956년 멜버른 대회 일본의 다니 아쓰시(7위) 이후 아시아 선수로는 65년만의 결선행이다.

남자 자유형 100m는 전세계 최고의 수영 에이스들이 빛의 속도로 메달색을 가리는 격전지다. 압도적인 힘과 스피드, 기술을 다 가져야 하는 이 종목은 아시아 수영의 불모지다.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아시아 선수는 2015년 카잔 대회 금메달리스트 닝저타오가 유일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전무하다.

기록만큼 놀라운 것은 과정이다. 황선우는 27일 오전 자유형 200m에서 자칭 '오버페이스'로 7위에 머물며 메달을 놓쳤다. 이날 오후 9시간만에 치러진 자유형 100m예선, 황선우는 몸도 마음도 빠르게 '리셋'했다. 47초97. 마의 48초대 벽을 넘어 한국최고기록을 찍었다. 47초대는 역대 대한민국 선수 누구도 깨지 못한 경지, '월드클래스'의 상징이다. '47초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박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 15시간만에 펼쳐진 28일 오전 준결선, 황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리빙레전드' 드레슬(47초23)의 바로 옆레인에서 황선우는 폭풍 스퍼트로 따라붙었다. 8명의 결선 진출자 중 후반 50m가 24초39로 가장 빨랐다. 47초56, 전날보다 무려 0.41초를 줄였다.

0.1초를 줄이기 위해 수년간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 단거리 종목에서 자고 일어나 0.4초를 뚝딱 줄여낸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유형 100m에서 48초 벽은 육상 100m, 10초 벽에 빗댈 만하다. 이 벽을 깬 것도 엄청난데 거기서 0.4초를 더 줄였다. 그 기적같은 일을 18세 황선우가 해냈다. 그것도 첫 올림픽 무대에서.

도저히 이해불가, 설명불가, 예측불가다. 현장의 한 수영인은 "18~20세 상승세를 타는 선수들의 미친 기운은 그 누구도 못 막는다. 이른바 '크레이지 모드'"라고 규정했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지"라고 했다. 지난 3년간 황선우를 지도해온 이병호 서울체고 감독 역시 "우리도 지난 2년간 선우가 대회에서 보여주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즐겨왔다. 그냥 천재 선수로 보시면 된다. 우리가 어떻게 천재를 설명하고 예측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있다. 수영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 살 떨리는 올림픽에서조차 나만의 '도장깨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선우만큼 수영을 좋아하고 즐기는 선수는 없다. 거기에 천재적 재능까지 더해졌다. 원래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다. 침착하고 담담하다"고 귀띔했다. 이정훈 총감독 역시 "200m 메달을 놓친 후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원래 긍정적이다. 아쉬움은 있었겠지만 자신의 레이스를 펼친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훌훌 털고 즐겁게 도전한 자유형 1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이라는 더 큰 사고를 쳤다.

자유형 100m는 레이스 운영이 필요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진하면 된다. 결선에 오른 이상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스스로도 한계를 모른다. 지도자들도 이 선수의 끝을 짐작할 수 없다. 다음 파리올림픽이 기대된다는 점 외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메달 가능성을 묻자 이 총감독이 짧게 답했다. "즐길게요." 드레슬, 차머, 포포비치…. 유튜브로만 보던 지상 최고의 프리스타일러들과 직접 맞붙는 것이 마냥 꿈같고 행복한 18세 청춘은 잃을 것이 없다. '전설' 마이클 펠프스는 "황선우와 같은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은 자신의 경기에 집중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황선우 자유형100m 기록 추이

2019년 6월 7일=동아수영대회=50초28

2019년 8월 24일=대통령배 전국수영=49초86

2019년 10월 9일=제100회 전국체전=49초69

2020년 10월 15일=김천전국수영대회=48초51

2020년 11월 18일=경영국가대표선발전=48초25(한국신)

2021년 4월 1일=김천전국수영대회=48초48

2021년 5월15일=경영국가대표선발전=48초04(한국신)

2021년 7월27일=도쿄올림픽 예선=47초97(6위, 한국신)

2021년7월28일=도쿄올림픽 준결선=47초56(4위, 한국신·아시아신·세계주니어신)

2021년7월29일=도쿄올림픽 결선=?

*종전 아시아최고기록=47초65(닝저타오, 중국, 2014년 자국대회)

*세계최고기록=46초91(세자르 시엘류, 브라질,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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