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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붕괴참사' 후폭풍에 휩싸인 HDC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 무사고 선언은 공염불?

이미선 기자

입력 2021-06-15 07:32

수정 2021-06-16 07:45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대산업개발)로 질타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초 '무사고'를 자랑하며 앞으로도 무재해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의 외침은 이미 헛구호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무리한 철거 작업 지시가 있었다는 철거업체의 주장 등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번 참사에 대한 파문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수사관 40여 명을 투입해 전담 수사반도 꾸렸으며, 부실 공사와 안전 점검 소홀 등이 드러나면 관련자 처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관계자 3명을 포함해 철거업체 관계자 3명, 감리회사 직원 1명(총 7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15일 입건한 7명 중 현장소장과 굴삭기 기사 2명에 대해선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에 적극 임하고 있다"는 현대산업개발, 도의적 책임 불가피

권순호 대표와 정몽규 회장까지 나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개발을 둘러싼 의혹과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철거 공사 진행 중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정류장에 있던 시내버스가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권 대표는 10일 현장 브리핑에 참석해 "원인이 조속히 밝혀지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같은 날 정몽규 회장은 광주시청에서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유족과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권 대표는 "감리업체는 재개발조합이 선정하게 돼 있고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다. 또한 한솔기업 계약 외 재하도급은 주지 않았다"며 일각에서 불거진 감리자 감독 의무 논란과 불법 재하도급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특히 법에 위배되므로 회사는 결코 재하도급을 준 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잘잘못을 떠나서 정 회장과 권 대표를 비롯한 현대산업개발 측은 도의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사고현장 브리핑 당시 권 대표와 현장소장은 책임 소재와 사고 과정 등 주요 쟁점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자 비난을 샀다. 철거 작업자들이 이상 징후를 발견한 뒤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도 말해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한편 12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강력범죄수사대) 등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과 철거 계약을 맺은 한솔기업과 실제 철거 작업을 한 백솔건설은 경찰 조사에서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사고가 난 건물을 철거할 때 현대산업개발 측의 과도한 요구로 당초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살수 펌프를 동원했다고 진술했다. 철거 때 날리는 먼지로 인한 민원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붕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살수를 지목했다. 굴착기를 올리기 위해 산처럼 쌓은 흙더미에 물이 스며들면서 밑둥부터 파낸 건물에 외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은 "철거업체 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현재로선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 사고 원인 등이 밝혀질 수 있도록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라며 말을 아꼈다.



▶'무사고 자랑' 불과 다섯달 만에 사망사고 발생…중대재해법 준하는 법 적용 필요하단 지적도

이번 참사로 인해 현대산업개발이 올해 초 발표한 '스마트 제로(Smart Zero)' 슬로건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지난 1월 현대산업개발은 안전 시스템과 안전의식 개선을 위해 이와 같은 전략을 세우고 안전·보건 활동을 새롭게 강화했다. 특히 안전 측면에서는 자주적 안전관리 및 위험감시, 적극적인 참여, 추적관리, 의식개선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당시 권순호 대표 역시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바탕으로 지난해 사망 재해 0건을 달성했고 부상 재해도 줄었다"며 "중대재해 발생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 시스템과 시설·도구 개선을 통해 무재해·무결점 현장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으나 공염불에 그치게 된 것이다.

권 대표는 30년 넘게 현대산업개발 건설부문에서 몸 담은 소문난 '건설통'이다. 2018년 건설사업본부장 겸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건설과 결합한 수주영업을 통해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을 얻기도 했으나, 이번 이슈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등 각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에 준하는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 책임자가 산업안전 관리체계 구축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 대상이 되도록 한 법이다. 다만 중대재해법이 아직 시행 전인 만큼 이번 참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광주 공사 현장 주변의 교통 안전관리대책을 마련하고 보행자 및 차량 통행을 위한 안전시설물 설치, 유도원 및 교통 안내원 배치계획 등을 세워야 하는 규정이 있는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은 불법 재하도급 사실에 대해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도급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적인 철거 현장을 방관했다"며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발생 후 사고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언한 만큼 이번 사고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020년 기준 현대산업개발은 시공능력평가에서 9위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6946억원, 영업이익은 1184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1%, 13.7% 감소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매출액은 다소 감소했으나, 자체 사업 실적의 영향으로 지난 분기와 비슷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미선 기자 alread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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