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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경연장 방불케하는 필드의 변신, '라웨이' 즐기는 2030이 몰고온 골프장의 새바람

이정혁 기자

입력 2021-04-29 10:42

수정 2021-05-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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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경연장 방불케하는 필드의 변신, '라웨이' 즐기는 2030이 몰고온…
2030 영 골퍼들에게 골프장은 패션 경연장이자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사진제공=인스타그램 계정 @ellen_lee627

골프장의 변신이 놀랍다. 더 이상 '운동+교제'를 위한 비즈니스 미팅장이 아니다. 패션 경연장인 동시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뜻)한 힙플레이스다. '나 이런데도 가봤어'라고 과시하기 딱 좋은 곳이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불리던 골프장이 밀레니얼 세대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늘어난 2030세대 골프 인구는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 인구는 약 470만명, 이중 2030세대는 85만명이었다. 올해에는 약 30만명이 늘어난 115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프에 대한 인식이 젊어지고 대중화되면서 골프장은 물론이고 관련 업계 역시 요동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골프웨어 시장이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골퍼를 타깃으로 한 브랜드들이나 새로운 플랫폼 사업이 몇 년 새 크게 성장했다.

▶2030 영 골퍼 늘어나며 젊어진 골프장…골프장서 패션쇼?

골프는 매너와 격식을 매우 중시하는 스포츠다. 완화됐다고는 하나, 청바지 등 지나치게 캐주얼한 복장에 대해선 주의를 주는 골프장들도 있다.

특히 안양CC·곤지암CC·해슬리 나인브릿지CC·이스트밸리CC·화산컨트리CC 등 이른바 '명문 골프장'으로 손꼽히는 곳들은 클럽하우스 출입시 재킷을 입어야 하는 분위기다. 라운딩 때는 긴 바지, 발목을 덮는 양말 착용을 권장한다.

그러나 회원권을 통해 비교적 엄격히 관리되던 골프장들도 영 골퍼들로 인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드레스코드는 점점 사라지고, 과감한 노출 등 트렌디한 패션이 오히려 늘어나는 분위기다.

일례로 주말에는 관계사 대표급만 라운딩이 가능할 정도로 엄격히 회원 관리를 해오던 서울 근교 A 골프장은 2030 영 골퍼 '출몰'로 소동 아닌 소동을 겪기도 했다. 1억원대의 주중 회원권이 만들어지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평소 이곳 나들이가 쉽지 않았던 영 골퍼들은 모처럼의 '기회'를 과시하듯 '튀는' 스타일로 필드를 물들였다. 또 클럽하우스 등 골프장 이곳저곳에서 인증샷을 찍으면서, 중·장년층 회원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이들을 놓고 기존 회원 간에도 엇갈리는 반응이 나타났다. '지나치게 차분했던 골프장이 밝아지고 활력이 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달갑지 않은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사뭇 달라진 골프장 분위기에 기존 회원들이 당혹스러워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골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골프장 내 복장 변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자기 표현에 당당한 MZ세대의 당연한 선택"이라는 옹호론이 있는가 하면, "회원제 골프장에 게스트로 참석할 경우에는 복장 규정을 어느 정도 지켜줘야 할 것 같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골프장 운영 주체들은 대체로 영 골퍼의 등장을 반가는 분위기다. 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골프 인구가 늘어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요 몇년 사이 리모델링을 한 클럽하우스들만 봐도 과거에는 남성들의 라커룸 수가 여성수보다 월등히 많았으나 현재는 비슷하다. 젊은 골퍼들이 늘면서 불편 사항들이 곧바로 피드백 되는 등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라웨이(라운딩+런웨이) 즐기는 영 골퍼…트렌디한 신흥 브랜드 고속 성장 "전통 강자 비켜"

2030 영 골퍼들에게 골프장은 단순히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트렌디한 골프웨어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핫플레이스다.

여기에 신규 브랜드에 개방적인 인식을 지닌 MZ세대의 특징으로 인해, 최근 몇년 사이 동대문 등에서 시작된 신진 골프 브랜드들이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해당 브랜드들은 유통 방식이나 마케팅 방식에도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SNS 마케팅에 주력하고, 톱스타 대신 인플루언서를 내세운다. 짧아진 유행 주기를 적극 반영, 반응이 시큰둥하다 싶으면 디자인을 확 바꾼다.

패션업계 전통 강자였던 대기업들이 전개하는 골프 브랜드들은 이 같은 속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긴 시간 이어져온 생산 방식과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 채널을 통한 매출 증대 노력도 재미를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때 골프웨어를 상징했던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무늬는 이제 올드패션에 가깝다. 몸매를 드러내는 딱 맞는 핏과 모노톤에 이어 최근엔 트레이닝복을 연상시키는 골프웨어까지 등장했다. 레깅스 등 애슬레저룩을 확장한 새 스타일도 종종 눈에 띈다.

영 골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어뉴골프'는 과감한 디자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 지난해 1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온라인 채널에서 급성장한 요가복 브랜드 '스컬피그'의 경우 지난 3월 첫 골프웨어 겸용 라인 '에어라이트 시리즈'를 출시, 애슬레저룩에서 골프웨어로 영역을 확장하는 요즘 업계 트렌드를 보여줬다.

특히 골프 인플루언서 800여명이 활동중인 어반에이트는 요즘 골프웨어의 유통 트렌드와 성장 과정을 잘 보여주는 곳. 5만8000여명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어반에이트를 통해 다수의 인플루언서가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이들이 입고 사용한 골프웨어나 용품들이 매출 급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영 골퍼와 신진 브랜드의 급성장은 기존 브랜드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골프웨어 브랜드 '마스터바니에디션'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지난해 10월 목표했던 연 매출 215억원을 조기달성했다.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골프웨어 브랜드 '왁'은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인 강희재를 활용한 광고 마케팅을 진행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2030 세대는 새로운 유통채널을 통해 고가 제품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신규 브랜드에 대한 거리낌도 없는 편"이라면서 "이들의 화려한 골프장 패션이 3040 골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골프웨어 업계 흐름마저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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