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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경질로 1막 내린 아시안컵 후폭풍, '모래알' 태극호를 다시 '원팀'으로 돌려놓자

노주환 기자

입력 2024-02-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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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경질로 1막 내린 아시안컵 후폭풍, '모래알' 태극호를 다시 '…
16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한축구협회(KFA) 임원회의가 열렸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죄하는 정몽규 회장. 신문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4.02.16/

1주일 몰아쳤던 광풍이 클린스만 경질로 한풀 꺾였다. 큰 충격을 받은 대한축구협회와 태극전사들은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A대표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최근 큰 실망을 안긴 A대표팀은 다시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원팀' 모드로 돌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A대표팀 사령탑 클린스만 감독을 중도 경질했다. 최근 4강에서 멈춘 카타르아시안컵 성적과 A대표팀 내에서 불거진 선수들의 불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더이상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8일 웃으면서 귀국했다가 팬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던 클린스만 감독은 이틀 후 미국으로 떠났고, 한 차례 화상 회의에 참석한 후 한국과 최악의 작별을 했다.

한국 축구는 '뜨거운' 홍역을 앓았다. 요르단과의 준결승전서 졸전 끝에 0대2로 지면서 시작된 거대한 소용돌이는 클린스만 경질로 큰 산 하나를 넘었다. 그 과정에서 축구팬과 미디어는 물론이고 정치권에 연예계까지 가세해 클린스만과 축구협회를 향해 '물러나라'는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번엔 욕먹을 만했다'는 정서가 대세다. 게다가 요르단전 전날 선수단 내부에서 주장 손흥민(32)과 영건 이강인(23)의 몸싸움 사건까지 있었다는 폭로가 터졌다. 탁구를 놓고 벌어진 두 선수의 싸움은 '멱살과 주먹질'을 놓고 진실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의 결정타가 됐고, 대표팀을 향한 여론과 민심에 치명타를 날렸다.

이제 하나씩 사태를 수습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치유 로드맵'을 밟아가야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클린스만 감독을 도려냈다. 클린스만과 그의 코치진의 중도 계약 해지로 발생할 100억원(추정) 상당의 위약금은 정 회장과 협회가 슬기롭게 풀어가면 된다. 위약금 말고도 바로 잡아야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 작업을 위해선 일단 뜨거운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가 대혼란에서 허우적거릴 때 세계 축구의 짜여진 시계는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다음달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전이 벌어지고, K리그 개막, 친선 A매치, 파리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전 등이 줄줄이 열린다. 64년 만의 우승을 기원했던 카타르아시안컵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이미 역사의 한 줄이 돼버렸다. 이번 어수선한 일련의 사태로 아시안컵 리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반드시 시간을 내서 꼼꼼히 돌아본 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른 정몽규 회장은 값진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A대표팀 감독 선임은 매우 기술적인 파트다. A매치를 직접 두발로 뛰어보지 않은 비축구인이 깊숙히 관여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섣불리 선임에 관여했다가 이번처럼 실패하면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은 대표팀 경기를 직접 해본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대표팀 감독의 전권을 쥔 위원장은 클린스만 체제에서 모래알이 된 태극전사들을 빠른 시일내 원팀으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를 사령탑으로 모셔올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빠듯하며 여러 상황이 좋지 않다. 그래도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한동안 우선 순위에서 배제됐던 국내 지도자도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제 국내 지도자가 학연 지연 혈연에 휘둘린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외국인 지도자가 갖지 못한 장점도 봐야 한다.

몸싸움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번 아시안컵에 나간 태극전사들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나라'를 대표해 뛰지만 결과와 내용이 안 좋을 때 온몸으로 비난을 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태극전사들의 숙명과도 같다. 태극전사들은 우리나라가 배출한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매 주말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국내파들은 K리그에서 한국축구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혈기왕성하고 자존심 센 젊은이들이 한데 모인 집단에서 365일 그라운드 안팎에서 '원팀'이 돼라고 주문하는 게 아니다. '세대 갈등' '라인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걸 부정하고 없애자는 게 아니라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프로답게 그라운드에선 '원팀'으로 상대와 싸워야 한다. 돌이켜보면 탁구로 싸웠더라도 그라운드에서 하나로 뭉쳐 요르단을 잡고 결승에 올랐더라면 한국 축구의 지난 1주일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진짜 프로페셔널한 월드클래스였다면 요르단에 지지 말았어야 한다. 손흥민 이강인에 대한 협회 차원의 징계 등은 추후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그건 차기 감독의 몫이다. 손흥민은 태극마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강인은 앞길이 구만리다. 이강인의 사람 됨됨이를 이번 사건으로 논하는 건 지나칠 수 있다. 그의 행동을 변호하자는 게 아니라 실수할 수 있으며, 그걸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처럼 이강인 정도의 유망주가 수두룩한 축구 선진국에선 논란을 일으켰던 벤제마 아넬카 같은 선수들을 장시간 퇴출하거나 차출하지 않아도 대표팀이 멀쩡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선수 하나를 배출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선수가 잘못 하면 나무라고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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