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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왜 EPL 레전드들은 '쓰러진 손흥민'에 비판적인가,

박찬준 기자

입력 2021-04-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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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PL 레전드들은 '쓰러진 손흥민'에 비판적인가,
로이터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손흥민 논란이 멈출줄 모른다.



지난 12일이었다.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스타디움에서 토트넘과 맨유의 20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1라운드가 펼쳐졌다. 토트넘 입장에서는 4위 진입을 위해 무조건 잡아야 하는 경기. 양 팀에서 모두 감독생활을 한 조제 무리뉴라는 연결고리까지 있어 이날 경기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경기는 3대1 맨유의 승리. 손흥민이 전반 40분 선제골을 넣었지만, 무리뉴식 수비축구는 이날도 무너지며 3골이나 내줬다. 맨유는 2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고, 토트넘은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경기 후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전반 36분 사건 때문이었다. 폴 포그바의 킬패스를 받은 에딘손 카바니가 토트넘 골망을 갈랐다. 뜨겁게 포효하는 세리머니도 나왔다. 손흥민이 얼굴을 감싸쥐고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상황, 토트넘 선수들이 주심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직전 패스에서 토미 맥토미니가 손흥민의 얼굴을 오른팔로 가격한 장면이 포착됐다. 비디오판독(VAR)이 가동됐고, 곧바로 맥토미니의 파울이 선언되며 맨유의 골이 지워졌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과 카바니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경기 후 솔샤르 감독은 손흥민을 저격했다. 그는 "속임수를 쓰면 안된다. 내 아들(Son)이 그랬다면 굶길 것"이라며 "우리는 속지 않았다. 주심이 속았다"고 했다. 손흥민이 주심을 속여 VAR 골 취소를 이끌어냈다는 뜻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의 아버지가 솔샤르 감독 보다 나은 사람이라 다행"이라며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먹여살려야 한다"고 응수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인종차별 문제로 비화됐다. 손흥민을 향해 맨유 팬들이 맹비난이 쏟아냈고, 그 발언 중에는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겨있었다. 토트넘 구단은 '소셜 미디어 보이콧'까지 언급하며, 대응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손흥민의 액션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화면을 다시 한번 보면 이 정도 논란이 된 것 자체가 신기한 사건이다. 맥토미니가 분명히 손흥민의 얼굴을 가격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프로경기심판기구(PGMOL)는 경기 후 '맥토미니 동작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조심성 없는 반칙'이라며 이 판정을 '정심'으로 인정했다. 스카이스포츠, BBC 역시 의심할 여지없는 파울이라고 했다. 실제 이 영상을 국내 심판 관계자들에게 보여줬더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심'이라고 했다. 열이면 열 같은 해석이었다.

주목할 것은 'EPL 레전드'들의 반응이다. 손흥민 논란의 시작은 'EPL 레전드'의 입에서 출발했다. 스카이스포츠에 출연한 로이 킨과 마이카 리차즈는 이구동성으로 맥토미니가 아닌 손흥민의 행동을 비난했다. 킨은 "정말 놀랐다. 이것이 파울이라면 우린 모두 집에 가야한다. 손흥민 같은 선수가 저렇게 나뒹굴다니 당황스럽다"고 했고, 리차즈도 "당황스럽다. 이것은 축구가 아니다"고 화답했다.

이어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EPL 레전드'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로비 새비지는 "절대 파울일 수가 없다. 이 논쟁은 끝났다"며 "손흥민은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리액션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도 "손흥민은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으면 안됐다. 어리석었고, 선수라면 더 남자다워야 한다. 내가 선수였을때는 이런 걸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토트넘 출신의 저메인 제나스 조차 "전혀 파울 상황이 아니다. 당연히 상대가 뛰어나갈때 할 수 있는 동작인만큼 고의성이 없다"고 했다.

왜 이런 반응이 이어지고 있을까. 일단 영국 축구의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EPL 출범 후 대륙식 축구가 자리잡으며 과거 같은 '킥앤드러시'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영국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은 '템포'다. 빠르게 상대진영에 도달하는 하이 템포의 경기에 열광하고, 이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한다. 실제 EPL은 APT(실제 플레이 시간)가 가장 높은 리그다. 주심이 휘슬을 자주 불지 않다보니, 몸싸움에도 관대할 수 밖에 없다. 럭비를 방불케 하는 EPL만의 스타일 속 킨, 패트릭 비에이라 등과 같은 투쟁적인 선수들이 각광을 받았다. EPL이 가장 피지컬적인 리그로 불리는 이유다.

아그본라허가 언급한 것처럼 과거 영국 축구를 경험했던 이들 EPL 레전드들 입장에서 맥토미니의 가격은 가격도 아닌 셈이다. "주먹으로 친 것도 아니고"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킨은 자신을 다치게 한 선수를 이후 다시 만나 일부러 가격해 부상을 입힌 이력을 자랑스럽게 밝힐 정도다.

더 큰 속내는 따로 있다. 'VAR에 대한 반감'이다. EPL은 올 시즌 VAR을 도입했다. 도입 전부터 많은 찬반 논란을 낳았던 VAR은 실행 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특히 'EPL 레전드'들의 반감이 컸다. 웨인 루니 더비 카운티 감독은 "축구는 VAR 도입 전이 더 재밌었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VAR 자체가 논란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VAR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곱지 않은게 팩트다. 빠른 흐름을 미덕으로 축구를 해온 'EPL 레전드'들 입장에서는 VAR 확인을 위해 주심이 경기 흐름을 끊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볼때 예전과 비교해)가벼운 가격'에 쓰러진 손흥민이 VAR로 이어지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손흥민을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

그래서 이번 논란이 안타깝다. 리얄 토마스 스카이스포츠 기자는 개인 SNS에 '손흥민-맥토미니 사건에 대한 반응에 정말로 놀랐다. 너무 명백하다. 맥토미니의 가격은 부주의한 반칙이었고, 이런 장면은 득점이 나올 시에 심각한 누락 사건로 분류되기에 VAR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다. 이번 판정은 너무도 명백한 정심이다. 하지만 바뀌고 있는 시대를 부정하며 '라떼는 말야'라고 개인적 속내를 드러내는 'EPL 레전드'들의 욕심에 손흥민만 상처를 받게 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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