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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제3의 희생자 막아야" 故이선균 죽음에 동료들이 절규한 이유 [종합]

정유나 기자

입력 2024-01-1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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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제3의 희생자 막아야" 故이선균 죽음에 동료들이 절규한 이유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배우 김의성, 봉준호 감독, 가수 윤종신 등 참석자들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4.01.12/

[스포츠조선닷컴 정유나 기자] "(이선균 사건)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진 사건을 경찰과 언론에 의한 '인격 살인'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이 같이 밝혔다. 故이선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문화예술인들이 용기있게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배우 최덕문의 사회로 진행된 가운데, 봉준호 감독,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이원태 감독, 배우 김의성, 한국영화감독조합 장항준 감독, 여성영화인모임 소속 곽신애 대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장원석 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대회의는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이선균 관련 수사·보도 과정에 관한 문제 제기 필요성이 거론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성됐다.

문화예술인들이 성명을 통해 요구한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수사가 적법했는지, 국민의 알 권리가 맞는지, 현행법상 인권 보호를 위한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밝히라고 경찰과 언론, 국회와 정부에 요구했다.

이선균 사건은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보였다.

'연예인 마약 사건'이라는 명칭 자체만으로 대중의 관심이 큰 사건임에도 구체적인 단서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가 잡음이 많았다. 또한 유흥업소 실장 김 모 씨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뤄졌는데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전에 정보가 새어나갔다. 이후 이선균의 마약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오면서 물증 없이 실장의 말에만 의존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특히 사생활 관련 정보가 담긴 녹취까지 공개돼 논란이 크게 일었다. 여기에 언론 보도 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들도 자극적으로 이슈 몰이에 나섰다. 이선균의 죽음이 사실상 '인격 살인'이었다고 불리는 이유다.

이에 문화예술인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먼저 성명서를 읽은 김의성은 "고인은 지난해 10월 23일 입건된 때로부터 2개월여의 기간 동안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됐다"면서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인격 살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유명을 달리한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고 연대회의 발족과 성명 발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나선 봉준호 감독은 수사 당국에 요구 사항을 전했다. 그는 "고인의 수사에 관한 정보가 최초 유출된 때부터 극단적 선택이 있기까지 2개월여 동안 경찰의 수사 보안에 한치의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고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에서 마약 음성 판정을 받은 뒤 KBS 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됐는데, 어떤 경위로 이것이 제공됐는지 면밀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고인의 경찰 출석 정보를 공개해 고인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게 적법한지 명확히 밝혀 달라"며 "수사당국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윤종신은 언론 및 미디어를 향해 자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고인을 포토라인에 세울 것을 경찰측에 무리하게 요청한 사실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KBS를 포함한 모든 언론 및 미디어는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 내용을 조속히 삭제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 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행태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느냐.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연대회의는 정부와 국회에도 형사 사건 공개 금지와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령을 제·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원태 감독은 "설령 수사당국의 절차가 적법했다고 해도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건에 침묵하면 안 된다"면서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제2의 이선균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선균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사건을 계기로 속칭 이선균 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yn201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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