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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며느리가 지킨 약속...故 표재명 교수의 키에르케고어와 따뜻한 가족 이야기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이재훈 기자

입력 2021-11-17 09:22

 며느리가 지킨 약속...故 표재명 교수의 키에르케고어와 따뜻한 가족 이…


"돌아가신 아버님이 덴마크 유학 시절 보내주신 엽서를 모아 아름다운 책 한 권 만들어 볼까요?"



시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며느리(엮은이 박정원, 이화여대 연구교수)가 엽서꾸러미를 들고 출판사를 찾는다.

엽서의 주인공은 키에르케고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故 표재명 교수로서, 엮은이의 시아버지이기도 하다.

표 교수는 1978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갔다. 키에르케고어의 고향이자 주 활동무대였던 코펜하겐에서 꼬박 1년을 머물면서 현지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담긴 엽서를 한국의 가족에게 보낸다. 아내, 큰아들, 딸, 작은아들 네 식구에게 보낸 이 엽서들에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지은이의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다. 2016년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지은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 큰아들 부부는 이 엽서들을 모아 5주기 즈음에 책 한 권을 펴내기로 했다. 하지만 2019년 큰아들마저 세상을 떠났다. 박 교수는 남편과 했던 약속을 지켜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故 표재명 교수는 경기중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 미국 세인트 올래프 대학 키에르케고어 도서관 방문 교수, 일본 지바대학 문학부 철학과 윤리학 교실 초청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고려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퇴임했다. 저서로는 '잘사는 작은 나라' '키에르케고어의 단독자 개념'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 '철학적 사색에의 길' '철학적 단편' '들의 백합, 공중의 새' '야스퍼스, 철학적 사유의 작은 학교' '개인적 지식-후기비판적 철학을 향하여'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 '철학의 부스러기' '18 ·19세기 독일철학, 피히테 에서 니체까지' 등이 있다.

엮은이인 박정원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 학과에서 교육학석사 학위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결대학교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의 출간을 즈음해 위드 코로나 시대에 진입했다. 팬데믹으로 지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은이가 평생 연구한 키에르케고어의 철학이 어쩌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팬데믹으로 건강의 소중함이 극에 달한 현시대를 건강이 신이 되고 의학이 종교가 되었다고 진단한 사람도 있다. 인간이 코로나에 걸린 사람 수에 포함되느냐 여부로 또는 백신을 맞은 수에 포함되는지에 따라 분류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한 인간이 단순한 숫자로 취급되기보다 주체적인 '단독자'로 서기를 강조한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평생 키에르케고어 철학을 연구한 지은이가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들에는 올곧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키에르케고어 철학의 단단한 사상을 바탕으로 남편과 아버지로의 애틋한 마음을 쌓아 올린 지은이. 특히 두 아들과 딸에게 보낸 엽서들 속에는 세 자녀가 주체적인 인격체로 자라기를 소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넘쳐난다가득하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낯선 땅에서 겪는 일상의 신비함과 설렘 그리고 사랑과 그리움의 마음도 곳곳에 가득하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장인 chapter 1 '코펜하겐에서 만난 키에르케고어'는 지은이가 열암학술상을 받은 저서 '키에르케고어 연구(지성의 샘, 1985)'엔 실려 있었으나 이 책의 절판 이후 20여 년 만에 새롭게 펴낸 책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치우, 2014)'엔 편집 구성상 아쉽게도 제외되었던 편지글이다. 덴마크에서 엽서와 편지를 보낼 당시 키에르케고어 삶의 자취를 보여주는 여행기 형식. chapter 2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는 지은이가 덴마크 유학 시절 아내와 큰아들, 딸, 작은 아들에게 각각 보낸 엽서들이 실려 있다. 40여 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품은 엽서들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녹아 있는 따스한 마음, 그리고 40대 중후반의 아버지가 가족에게 보내는 여러 가지 관심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chapter 3 '우리 땅에서 남긴 이야기'에서는 지은이가 덴마크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그 즈음에 각종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 중에서 음악, 미술, 키에르케고어, 책, 종교, 생명의 의미, 나라에 대한 생각 등이 담긴 글을 골라 실었다. chapter 4 '하늘에 띄우는 편지'는 지은이를 추념하는 가족과 제자들의 글이 실려 있다. chapter 5 '표재명의 삶과 저서'는 지은이의 연보와 저서, 역서들을 사진과 함께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이재훈 기자 sysyph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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