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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악덕 제작자 착취+3개월 시한부 선고에도.."그러라 그래" [SC리뷰] ('대화의 희열3')

김수현 기자

입력 2021-07-02 00:52

수정 2021-07-0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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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악덕 제작자 착취+3개월 시한부 선고에도.."그러라 그래"  (…


[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가수 양희은이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1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3'에서는 '한국 포크송 대모' 양희은과의 두 번째 대화가 그려졌다.

양희은은 어마어마한 빚으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해 송창식이 노래하던 살롱에서 다짜고짜 무대를 내어달라고 했고, 송창식은 선뜻 10분을 내주었다고.

양희은은 송창식을 대학 졸업식에 부르기 위해 '결혼한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축가를 부르기 위해 와준 송창식은 기타와 축의금도 들고 왔다고.

우리나라 1960~70년대 통키타의 메카인 클럽 '오비스 캐빈' 오디션에 단번에 합격한 양희은은 "페이가 최고였다. 직장인처럼 월급이 나왔다. 나는 햇병아리 가수니까 오프닝과 엔딩에 무대를 했다"라고 했다. 이어 "엔딩에는 만취한 사람들이 많다. 온갖 욕과 술주정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진짜 괴롭다. 욕하고 툭툭치는 남자들. 험한 꼴도 많이 봤다"라며 "그런데 거기서 각별한 인연을 만났다. 사람이 많으니 합석을 많이 하는데, 내 친구가 외국인 신부님과 합석을 했다. 내 친구가 내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날 도와주고 싶다 하더라. 그래서 내가 친구한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화를 냈다. 그 이후로 몇 달을 연락이 와서 다 거절했다. 그런데 희망이 없더라. 친구들이 돼지저금통까지 털어 도와줬지만 끝도 없었다"라고 당시 참담했던 상황을 밝혔다.

그는 "그래서 신부님을 찾아갔다. 25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셨다. '이제부터 웃어라. 그게 우리가 받을 이자다. 그리고 나중에 미스양 처럼 어려운 젊은이를 만나서 도와주면 더 좋겠지'라고 하더라"라고 감동 사연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날 밤에 채권자들을 다 불러 모아서 돈 갚고 차용증을 다 찢었다. 무섭게 앓아 누었다. 열이 40도가 됐다. 펄펄 열이 끓었다. 우리 엄마는 참 민망해 하셨다. 어쩔 줄 몰라하셨다. 표현도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빚더미에는 탈출했지만 250만 원을 갚아야 했던 양희은은 전설의 제작자 '킹 프로덕션'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수많은 스타의 음반을 제작한 킹 레코드의 킹박에 대해 양희은은 "불독 같은 외모에 무식하지만 사람들을 기절시킬 정도의 촉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양희은은 "계약금 조로 250만 원을 받아 신부님께 드렸는데 그게 볼모가 돼서 그 이후 숱하게 앨범을 내는 동안 돈 한 푼 못받고 녹음을 했다. 악랄했다"라고 했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250만 원은 충분히 넘고도 남는 수익을 냈지만 소용 없었다. 양희은은 "막 싸우고 했지만 약속 하고나서 사라졌다"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킹박은 돌연 레코드사를 폐업하고 재산을 처분,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후 뉴욕 한식당에서 만났다는 양희은은 뻔뻔하게 무대를 권하는 킹박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하지만 킹박은 암투병을 하는 양희은을 이용해 '양희은 석 달 시한부 인생' '양희은 LP 재고 정리'이라는 플랜카드를 걸고 장사를 또 했다.

양희은은 킹박의 병간호까지 했다. 그는 "결혼 후 미국에서 사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가봤더니 뉴욕 길거리에서 뇌졸중으로 킹박이 쓰러져 팔, 다리, 혀가 마비 됐다더라. 미국에 아무 연고가 없어서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우리 남편은 생전 처음 보는 남자를 씻기고 보살폈다"라고 말해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화내고 싸우고 원망해놓고 킹박을 다 받아줬던 양희은은 "귀엽다 뿐이지 애정은 없다. 도둑놈이다. '귀여운 도둑'이다. 차라리 귀여운 도둑놈이 낫다"라고 쿨하게 말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양희은에서 신세를 지면서 뻔뻔하게 영화까지 보게 해달라 요구했던 킹박. 양희은은 "그러다 결국 킹박은 걸인들의 숙소에서 죽었다. 나중에 딸에게 연락이 왔다.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같이 해줄 수 있냐더라. '너무 고맙고, 우리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냐.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빈다'라고 했다. 여름이 다 갔는데 연락이 없었다. 내가 연락을 해봤는데 이미 장례를 치렀다더라"라고 털어놓았다.

양희은은 "빚을 청산하고부터는 여유가 좀 생겼다. 외국 배낭여행을 떠났다"라고 자신만을 위해 했던 첫 소비를 밝혔다. 그는 "14개월 정도 갔다 왔다. 로마에서 친구 넷이 뭉쳤다. 친구들과 버스킹을 했다. 사람들이 다 이렇게 멈춰 서서 보더라"라고 추억을 되새겼다.

한국에 돌아와 임신한 동생 양희경의 검진을 따라 갔다가 검사를 받게 됐다. 양희은은 "말기 암 환자의 전형적인 얼굴 색깔이었다더라. 말기 난소암이었다. 수술하면서 하루에 7~8kg가 빠졌다. 종양이 그렇게 커질 때까지 몰랐다. 의사 말로는 9개월 아기만한 사이즈였다더라. 난 그게 뱃살인줄 알았는데 종양이었던 거다"라며 심각했던 상황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사가 3개월 시한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의사가 경험이 많다고 같이 싸워보자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다"고 했다. 양희은은 "선생님이 화가 나서 두 달 반 후에 연예인 협회에 전화를 해서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 '너 같은 환자는 처음 본다'라고 하시더라. 결국 의선생님을 이길 수 없어서 검진이라도 꼬박꼬박 받았다"라고 특별한 인연에 대해 언급했다.

이 모든 일들을 서른이라는 나이에 겪었던 양희은. 그는 수술 후 3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두 번째 종양으로 인해 수술을 하기도 했다. 양희은은 "아이는 이제 못낳게 됐다. 의사 선생님이 정말 아쉬워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이런데서 벗어나는 구나' 했다. 육아 부모노릇에서 벗어나는 게 그게 되게 기분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양희은을 대표하는 작품 '여성시대'에 대해서는 시한부 엄마가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 사연을 이야기 했다. 유방암 말기로 투병하며 6살 아들에 대한 마음을 편지로 옮겨 마음을 전했던 사연자, 당시 실제 사연은 많은 청취자들을 울렸다.

양희은은 "그분을 응원하기 위해 음성사서함을 만들었다. 곳곳에서 음성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제 30주년 기념 음반은 그 분을 위해 바쳤다. 주변에서는 다 말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분을 너무 잘 안다. 소녀가장이셨다. 공단에서 일을 하다 희제를 낳고, 그게 가장 큰 행복이라 했다. 나중에 돌아가시기 전에 목소리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땅의 모든 누이들에게 노래를 바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후배들과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시작한 양희은은 "윤종신 씨와 작업 했는데 2~3일 만에 나왔다. 자기가 자기 노래에 취해서 다니더라"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자뻑'이 있는 게 좋다. 그런데 그런게 없다"라고 덧붙였다. 윤종신 뿐만 아니라 AKMU, 강승원, 김반장, 성시경과도 작업했다.

양희은은 후배들이 준 곡은 그들이 디렉팅하게 한다고. 양희은은 "그걸 제가 하면 곤란하다. 제가 하면 제 한계를 못 벗어난다"라고 했고, 유희열은 "그 말 지키셔야 한다. 제가 디렉팅 볼 때 가만히 계셔야 한다"라고 농담했다.

유희열은 "20년 전의 뾰족한 느낌과 달리 지금은 감싸주시는 것 같다"라 했고 양희은은 "이제는 놓아진다. '다 괜찮아, 그러라 그래'라고 한다"라 답했다. 양희은이 쓴 책인 '그러라 그래'가 그랬다. 양희은은 "내 소관이 아닌 실패가 있지 않냐. 그런 시련은 인생이 베풀어주는 거다. 결핍만큼 강한 추진력이 없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shy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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