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암 투병, 가족에도 숨겨" 예수정이 전한 모친 故정애란의 열정→김혜자가 하차 결심한 이유 ('전원일기2021')[SC리뷰]

조윤선 기자

입력 2021-06-26 01:02

수정 2021-06-26 06:50

more
"암 투병, 가족에도 숨겨" 예수정이 전한 모친 故정애란의 열정→김혜자가…


[스포츠조선 조윤선 기자] 故정애란 배우의 딸 예수정이 어머니의 남달랐던 '전원일기' 사랑을 전했다.



25일 방송된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 플렉스-전원일기 2021' 2부 '봄날은 간다' 편에서는 故정애란 배우를 추억하고, 종영의 숨겨진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는 故정애란의 딸인 배우 예수정이 출연해 '전원일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예수정은 "어머니는 '전원일기' 녹화 이틀 전이면 시장을 다니셨다. 동료들과 같이 먹기 위해 도시락을 싸가는 게 중요했다"며 "내가 이 나이가 되니까 이해가 된다. 후배들이랑 같이 밥 먹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를. 그래서 '녹화 이틀 전인가보다' 하면 직접 나가서 재료 사서 오시고 도시락 싸갖고 가는 걸 소풍 가는 것처럼 행복해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그게 애정이셨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정애란은 2002년 '전원일기' 종영까지 폐암 투병 중에도 녹화에 참여할 정도로 '전원일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을 하기 위해 폐암 투병 사실을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었다고. 예수정은 "당시 내가 가족들과 독일에 있을 때였는데도 내게도 폐암 걸렸다고 말 안 하셨다. 시어머니께서 신문에서 폐암 소식을 보고 (저한테) 국제 전화를 해서 알게 됐다"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해야 하니까 혼자 보호자 없이 2박 3일씩 병원에 입원하셨을 정도로 강한 분이었다. 처음에는 제작팀, 동료분도 아무도 몰랐을 거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방송 말미에는 시야가 흐려서 사물을 분간하는 게 쉽지 않은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정애란은 자신의 역할만큼은 완벽하게 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혜자는 "그때는 우리 위에 연기자분들이 별로 없으셨다. 위에 정애란 선생님 한 분 계셨던 거다. 누가 (연기를) 한다고 다 똑같지 않다. 어떤 눈을 갖고, 어떻게 대사를 하느냐. 그런 연기자분이 있으니까 빛이 나는 거다. 그분은 사람 칭찬도 잘했다"며 추억했다.

'전원일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삶이 버텨주는 게 소원이었다는 정애란은 '전원일기' 종영 후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예수정은 "배경이 가족이고 '전원일기'여서 다행이다. 우리 자식들이 못 해 드린 걸 '전원일기' 식구들이 잘해주셨다"며 미소 지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전원일기' 종영의 숨겨진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1980년 10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던 '전원일기'는 90년대 중반 무렵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혜자는 "택시 타면 '진짜 전원일기 최고죠' 이러다가 '근데 그거 요새 무슨 요일에 방송하죠?'라고 한다. 안 보는 거다. 그러니까 그런 건 너무 마음 아픈 거다"라며 "지금 보는 분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야 하는데 방송은 헛방송하니까. '그냥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죠'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배우는 그럴 때가 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헛시간 보내면 안 된다"라며 속상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일용이 부인' 역을 맡았던 김혜정은 "김정수 선생님은 굉장히 '전원일기' 구심점으로 수레바퀴를 잘 운영하셨던 작가 선생님인데 그 작가 선생님이 그만두시고 나서 (드라마가) 휘청거리고 극을 구성하는 플롯이 그냥 무너져버렸다"고 토로했다.

김혜자도 시간이 흐를수록 '전원일기'의 아버지, 어머니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바라던 부모님 상과 멀어져갔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며 "그냥 흰 가발 쓰는 것만 큰일이었다. 그건 배우라고 할 수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고 밝혔다.

작가와 감독의 잦은 교체로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면서 캐릭터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둘째 며느리' 역이었던 박순천은 "감독도 엄청 많이 바뀌고 작가도 엄청 많이 바뀌었는데 바뀔 때마다 몸살을 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작가, 감독이 새로 왔다고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없지 않냐. 근데 말투 같은 게 틀린 거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고두심도 "나중에는 작가 선생님들이 너무 바뀌니까 속상해서 '야, 네 대사는 네가 써서 와라. 이제 그럴 때 되지 않았냐'고 서로가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유인촌은 "그 뒤에 하시는 감독, 작가님들이 참 많이 힘들었을 거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딱 정형화돼 있는데 사람이 바뀌면 조금씩 바뀌니까. 새로 들어온 사람은 뭔가 새로 해봐야 되는데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거다"라며 "우린 '전원일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다. 자연사할 때까지 우리는 이 자리 지켜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몇십 년간 출연료가 크게 오르지 않았어도 자부심을 가지고 임했던 '전원일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극에 달하면서 배우들도 지쳐갔다고. 김수미는 "그때 몇몇 분은 이미 이제 못 하겠다고 빼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조금 지쳐갔다. 다른 배역이 안 들어왔다. '당신은 일용엄니요'하고 제쳐놓더라"며 "다른 거를 해도 또 안 되더라. 어떤 때는 솔직히 하기 싫었다"고 고백했다.

극의 중심이었던 김혜자는 하차 결심을 하고 제작진에게 "극 중에서 죽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맨날 못되게 굴었다. (극 중에서) 죽게 해달라고 했다. 영애(막내딸)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내가 죽으면 아빠가 홀아비고, 자기 부인이 죽었으니까 얼마나 서글프겠냐. 재혼하라는 말도 많을 거고, 얘기가 좀 풍성해질 거 같았다"며 "나는 하나도 안 서운해할 테니까 '전원일기' 위해서 날 사고 난 거로 할 수 없냐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끝까지 드라마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김혜자는 "거기에는 '전원일기'로 월급 타듯이 사는 분들도 있지 않냐.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배우로서 너무 화가 나고, 가발 쓴 값을 받는 거 같지만 그분들을 위해서 조금은 더 해야지'라면서 나를 많이 다독였다"고 말했다.

'개똥 아빠' 역을 맡았던 이창환은 "얼굴 알려진 사람 몇 제외하고는 수입이라는 것을 거의 기대할 수도 없는 거고, 나 같은 경우는 '전원일기' 하면서 다달이 월급 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20년 동안 그걸 한 거니까 소중한 거다"라고 밝혔다. 김용건도 "생활은 해야 하지 않냐. 이게 나중에 지나고 나서야 20년이란 세월을 왔지만, 처음에는 끝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도 사실 있었다"며 "내가 생활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전했다.

하지만 농촌 드라마였던 '전원일기'는 2000년대에 유행한 트렌디 드라마들에 밀려 소외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방영 22년 만인 2002년에 막을 내렸다. 최불암은 "솔직하게 섭섭했다. 대가족이 다 없으니까 대가족 제도의 드라마가 무너졌다"며 "삶의 큰 그릇이 담긴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사랑만 가지고 먹고 살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게 사람 아니냐"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혜자는 "우리도 살아가면서 정말 싫은데 이별하는 거 많지 않냐. '전원일기'와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별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supremez@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