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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파이프라인'으로 힐링"…유하 감독, '말죽거리'→'비열한거리' 느와르 벗은 이유

이승미 기자

입력 2021-05-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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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라인'으로 힐링"…유하 감독, '말죽거리'→'비열한거리' 느와르…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비장미와 무게감 대신, 코미디와 유쾌함을 더한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58)에게 이 영화는 힐링, 그 자체 였다.



26일 개봉하는 범죄 오락 영화 '파이프라인'(곰픽쳐스 제작)을 연출한 유하 감독이 26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988년 시인으로 등단해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연출을 맡아 감독으로 데뷔, 이후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강남 1970'(2014) 등을 통해 관객의 지지를 받아온 유하 감독. 그가 '강남 1970' 이후 7년만에 선보이는 신작 '파이프라인'으로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다.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 그들이 펼치는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다. 그동안 현실감 넘치는 액션과 그 속에 녹여낸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로 사랑받아온 유하 감독은 '파이프라인'으로 첫 범죄 오락 장르의 메가폰을 잡았다. 한층 가볍고 통쾌한 이번 영화로 새로운 유하 감독의 스타일을 보여준다.이날 유하 감독은 그동안 선보였던 비장미 넘치는 느와르 액션 영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묻자 "내가 영화를 시작하고 심각한 느와르 영화를 3부작('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1970')이나 하게 될지는 내 자신도 몰랐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B급 정서가 담긴 컬트 영화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느와르 영화를 많이 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B급 정서가 담긴 가성비 있는 블랙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입을 열었다.

한층 가벼운 장르이니 만큼 촬영하면서 스스로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는 유하 감독은 "아무래도 감독이 영화를 찍게 되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촬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살인을 하거나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영화를 찍다보면 상당히 우울해 진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밝고 배우들끼리 케미도 좋았고 좀 살아 있는 걸 느꼈다. 작품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즐거운 연출 과정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힐링이 됐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유하 감독 표 느와르. 이에 앞으로 느와르 연출 계획은 없냐고 묻자 "느와르도 다시 할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다. 사실 코미디 장르는 계속 하려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한번 한 걸로 만족한다. 오히려 향후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멜로 소재, 남녀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이든 사람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의미가 조금 퇴색되고 보니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도유 범죄라는 색다른 소재를 다룬 '파이프라인'. 하지만 땅굴을 배경으로 하는 케이퍼 무비라는 점에서 언론시사회에서부터 지난 해 개봉한 '도굴'과 유사점이 지적되기도 하는 작품. 이에 대해 유하 감독은 "지금까지 저는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해왔는데, '파이프라인'은 다른 작가가 굉장히 오래 전에 쓴 시나리오였다. 제가 우연히 투자사를 통해서 시나리오를 받게 됐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블랙 코미디 장르와 결합이 돼 있어 마음에 들었고 각색 작업을 시작한게 2016년도의 일이다. 첫 시나리오는 복수극이었는데 그걸 제가 비루한 청춘들이 상황을 전복하는 스토리로 바꿨다. 그 시간이 좀 걸렸다. 작년에 작년에도 비슷한 영화('도굴')가 있었던 것 같더라. 사실 '파이프라인'을 좀 더 일찍 개봉하고 싶었으나 코로나19의 상황도 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꼬 솔직히 말했다.

유하 감독은 극중 가장 중요한 도유 범죄 크루들의 캐릭터라이징에 대해 설명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지 않았나. 솟아날 구멍이 없는 20~30대 청춘들이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에서 휴머니즘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전환되는 과정 보여주고 싶었고 캐릭터 역시 이 부분을 강조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사실 핀돌이(서인국) 같은 경우도 굉장히 이기적이고 명품만 밝히고 죄의식 없이 도둑질을 하고 도둑질한 돈을 쉽게 쓰는, 아주 물질주의에 충만한 젊은이였지 않는가. 그런데 땅굴에 들어와서 또래 사람들을 만나고 추구하는 가치가 바뀌게 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어쩌면 뻔해보일 수 있지만 상업영화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인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고 덧붙여 설명했다.도유 범죄 크루와 대척점에 있는 빌런인 건우(이수혁)에 대해서는 "내 전작인 '강남1970'이 천민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부동산에 비유해 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천민 자본주의를 기름이라는 소재에 투영했다. 건우는 수천명의 인간이 죽어도 돈만 벌면 된다는 자본주의적 기업 논리를 상징하는 싸이코패스적인 악당으로 설정한 것"이라며 "아주 잔인한 전형적인 악당이 아닌 귀공자 속 겉모습에 악마의 무습이 숨겨진, 한편으로는 몽상가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유하 감독은 이런 캐릭터들을 연기한 주요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기회가 드물었던 재능있는 배우들'을 기용하려 애썼다"고 강조한 유하 감독은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펀딩이 되고 여유있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게 지금 영화의 현실이다. 저는 알려진 것과 달리, 영화를 하면서 늘 캐스팅이 정말 어려웠다. 제 영화를 촬영한 후에 크게 된 배우들이 많았지, 찍을 때 편하게 찍은 적은 많지 않았다"라며 "제가 조금있으면 예순이라는 나이가 되고 중견감독이 되는데, 앞으로 내가 영화계에 할 수 있는게 뭔가라는 생각을하게 됐다. '배우 기근'이라는 말이 없어지도록 배우들의 저변을 넓히는데 이바지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 재능에 비해서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배우들과 함께 해서 그 배우들의 포텐을 터뜨려 보고 싶었다. 난 앞으로도 이런 식의 작업을 추구할 것 같다. 유명 배우를 마냥 기다리다기보다는 조금 예산을 줄이더라도 다양한 배우를 큰 배우로 성장시키는 게 제 영화를 만드는 취지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앞선 자신의 연출작을 예를 들며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씨 같은 경우는 사실 당시에도 굉장히 스타였다. 권상우씨가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의 절정에 있을 때 만났다. 사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권상우씨의 인기에 힘 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그 뒤의 작품들은 그런 경우가 적었다.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씨도 마찬가지였다. '비열한 거리' 이후 인기를 얻게 된 경우다"라며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제가 선택한 배우들은 스타성을 떠나서, 만나 후에 제 마음을 움직이는 게 한 뭔가가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느낌에 관련된 부분이다. 조인성씨도 그랬고, 이번에 만난 서인국씨도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고 말했다.'파이프라인'의 주인공 서인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더했다. "서인국이라는 배우랑 작업을 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제 스타일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머리 속에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솔직히 입을 연 유하 감독은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직접 만나게 됐다. 만났을 때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굉장히 섹시하게 느껴졌다. 뇌리 속에 굉장히 깊이 남게 됐다. 오히려 드라마보다 영화에 맞는 마스크라는 생각이 들더라. 왜 그런지 분석하긴 힘들지만 그냥 직감적으로 큰 스크린에 더 잘 맞는 배우, 더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함께 영화를 촬영하면서 서인국에게 더욱 매료됐다는 유하 감독은 "이 친구가 굉장히 머리도 좋고 끼가 다분하다. 몇몇 배우들은 현장에서 자신이 준비해온 컨셉과 다른 연기 주문을하면 피드백이 늦어지거나 주문 자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서인국 배우는 달랐다. 모험을 좋아하는 배우더라. 당황스러운 디렉션이나 전혀 반대의 디렉션을 받아도 바로 '해볼게요'라고 하더라. 모험을 즐기는 배우라는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저도 더 의욕이 생겼다. 지금보다 앞으로 보여줄게 더 많은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빌런 건우 역의 이수혁에 대해서는 "이수혁이라는 배우도 제겐 이미지가 확 구축된 배우는 아니었다. 저는 연출을 하면서 이 배우의 가능성을 높일까라는 고민을 하는 편인데, 앞으로 이수혁이라는 배우는 멜로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앞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꽃미남 배우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던 유하 감독. 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제가 그동안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동안 꽃미남 배우들과 많이 적읍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 농담을 하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사실 저는 배우들을 잘 모른다.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서 더 모른다. 지금도 드라마 보다는 시나 소설을 더 많이 즐긴다. 저는 직접 배우를 만나고 나서 결정하는 스타일인데 만나고 나면 딱 꽂히는 배우들이있다. 그런 배우들과 함께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들이 택하지 않는 배우를 택하기도 한다. 편견이 없는게 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케이퍼 무비의 표피를 띄고 있는 '파이프라인'은 장르적 특성상 클리셰를 피하기 어려운 작품. 이에 새로운 걸 추구해야 한다는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케이퍼 무비 특유의 장르적 재미를 전해줘야 한다는 감독으로서의 고민이 컸을 작품. 이 균형감에 대해 묻자 유하 감독은 "사실 케이퍼 무비만을 만들려고 했으면 이 영화는 만들지 않았을 거다. 그동안 케이퍼 무비, 하이스트 무비는 굉장히 많지 않았나. 외국에도 많았고 한국에도 케이퍼 무비에 있어서 최동훈이라는 거장 감독이 있지 않나. 제가 거기에 영화 한 편 보태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그래서 이번에는 케이퍼 무비의 장르를 뒤트는 B급 감성을 더하려고 했다. 이 영화는 장르를 따라가다가 후반에 장르를 뒤트는 면이 있다.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신다면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실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 크레딧에 포함된 보너스 영상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크레딧에는 배우 음문석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 포함됐다. 이 영상에는 출연 배우들이 촬영 현장에서 자유롭게 장난을 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담겼다.유하 감독은 "사실 음문석 씨가 저보다 연출을 잘 한다. 저도 못가본 칸 영화제도 가봤다"며 웃었다. 음문석은 실제로 2017년 자신이 출연한 단편 영화 '아와어'와 첫 연출작 '미행'으로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어 유하 감독은 "음문석 배우가 영화 촬영 내내 뭔가를 일기 형식으로 촬영하더라. 뮤직비디오처럼 담아내더라. 굉장히 익살스럽고 해학스럽게 현장을 풀어놓은 영상이었다. 디렉터는 음문석이지만 내 영화에 덧붙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영화에 포함시킨 건 음문석을 향한 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한편, '파이프라인'에는 서인국, 이수혁, 음문석, 유승목, 태항호, 배다빈, 배유람 등이 출연한다. 오늘(26일) 개봉한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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