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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강백호-정우영과 한 팀에?…'투수 왕국'이 만든 타자, 다시 서는 마운드

이종서 기자

입력 2021-11-17 02:31

수정 2021-11-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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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강백호-정우영과 한 팀에?…'투수 왕국'이 만든 타자, 다시 서는 …
정재원. 사진제공=키움 히어로즈

[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투수 왕국' 고등학교에 온 신입생 투수는 자리를 얻기 쉽지 않았다. 경기에 출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정재원(19·키움 히어로즈)은 고교 시절 투수로 뛰다가 1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정재원의 2년 선배는 강백호(KT)가, 1년 선배로는 정우영(LG)이 있었다.

강백호는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투·타 모두 만능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3 시절 강백호는 타자 타율 4할3푼4리 3홈런, 투수로는 12경기 31⅔이닝을 던져 2승2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했다.

입단 이후 3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한 정우영 역시 고교 시절부터 빼어난 성적을 거뒀던 에이스 투수다. 이 밖에 2022년 1차 지명으로 키움의 선택을 받은 대졸 주승우도 강백호의 고교 동기다.

고1을 마친 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정재원은 "좋은 투수들이 많아서 경기에 나서려면 1루수 나갈 수밖에 없었다"라며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정재원은 빠르게 적응했다. "무서운 게 없었다"라는 말처럼 홈런도 치는 등 타자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상승세도 잠시. 곧바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정재원은 "성적이 나오다보니 다들 3학년 때 겪는다는 슬럼프가 2학년 때 왔다. 3학년 전반기까지 정말 부진했다"고 돌아봤다.

반등이 찾아오자 이번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1루수와 외야수를 하면서 폭을 넓혀가던 중 수비에서 부상이 이어졌다. 그는 "감독님께서 얼마다 못 치든 편하게 내보내 줄 테니 편하게 치라고 하셨다.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후반기엔 3안타 경기도 했다"라며 "타격 사이클이 올라올 때쯤에 홈 승부를 하다가 손목을 다쳤다"고 밝혔다.

프로 스카우트에게 눈도장을 찍기 바쁜 고3에 찾아온 부상에 "드래프트 즈음에 대학은 생각도 못 했고 독립야구단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낙담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키움이 손을 내밀었다.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67순위)로 정재원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TV를 켜니 제 이름이 불렸다. 바로 아버지께 전화했는데 처음엔 믿지 않으셨다. 지명됐다는 사실을 아시고 아버지도 눈물을 보이셨다"고 웃었다.

입단한 뒤 정재원은 1군 콜업 없이 2군에서 시간을 보냈다. 2군 성적도 썩 좋지 않았다. 첫 해 65경기에서 타율 1할6푼5리 3홈런을 기록한 그는 올 시즌에는 25경기에서 타율 1할1푼9리에 머물렀다.

아쉬운 모습이 이어지면 구단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다시 원래의 보직을 찾게 해준다는 것.

정재원은 투수 전향 제안을 단숨에 수락했다. 그는 "바로 하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계속 투수를 해왔고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열망이 컸다. 잘 풀리지 않아서 야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투수로 다시 뛰고 싶었다"라며 "만약 올해 방출되면, 군대에 다녀와서 다시 도전해보고 잘 안되면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고 그동안의 고민을 내비쳤다.

다시 서는 마운드. 마무리캠프에서 투수 훈련을 받고 있는 정재원은 "원래 제구로 승부하는 투수였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를 던졌는데 슬라이더에 타자들이 많이 속았다. 지금은 투수 시절의 감을 기억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때의 느낌을 되찾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그는 "투수로서의 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투수로 전향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순발력이나 공 던지는 감각을 기르려 한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하고 싶었던 해서 너무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KBO리그 '대스타'가 된 선배와의 맞대결도 기대했다. 그는 "서울고 선배인 KT의 강백호 형을 상대해보고 싶다. 지금 프로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 중 한 명이지 않나. 어느 공이든 좋으니 아웃 카운트를 잡아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재원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그러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며 "마운드 위에 서게 된다면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돌고 돌아서 진짜 하고 싶었던 자리에 서게 된 거니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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