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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독립구단→4119일만의 첫승' 33세 인간승리. 방출 아픔속 재도전 "난 녹슬지 않았다" [인터뷰]

김영록 기자

입력 2021-11-16 11:15

수정 2021-1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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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독립구단→4119일만의 첫승' 33세 인간승리. 방출 아픔속 재…
김건국.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마운드 위에서 울면서 던졌다. 눈물이 나서 포수(나균안) 사인이 안 보였던 기억이 난다."



계약금 1억 3000만원을 받았던 잊혀진 유망주가 11년만에 1군 마운드로 돌아온 기분은 어떨까. 당시를 회상하는 김건국(33)의 목소리도 감회에 젖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10월말 김건국에게 보류선수 제외를 알렸다. 성민규 단장은 '팀을 구할 때까지 상동연습장에서 운동해도 좋다'고 허락했지만, '남의 집'이 되고 나면 그 시선이 부담스럽기 마련. 김건국은 이승학 감독의 배려로 부산공고 야구팀에서 훈련중이다.

올해 퓨처스리그 성적은 18경기 3승 2패 2홀드. 39⅓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했다. 반면 1군에선 13경기 22이닝 6.55에 그쳤다. 그는 "2군에선 구속도 잘 나오고 기록도 좋았지만, 1군에서의 모습이 좋지 않았다. 내가 결과를 못낸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오랜 고난을 이겨낸 오뚝이 같은 선수다.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야구선수가 됐다. 야구명문 덕수고 출신으로, 민병헌 김문호 김세현과 함께 뛰었다. 2006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지만, 2007년 단 1경기 1이닝 투구 후 이듬해 방출됐다.

군 전역 후 야인 생활이 시작됐다. 김건국은 "24시간 365일 쉬는날 없이 일하던 때"라며 웃었다.

"야구 레슨 일이 자주 있으면 좋았겠지만…주로 일용직을 했고, 뮤지컬 공연장에서도 일했다. 어리고 운동한 몸이니까, 인력사무소 가면 바로 일이 나오더라."

2012년말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트라이아웃에 합격하며 김건국의 야구선수 재도전이 시작됐다. 150㎞ 직구를 인상깊게 본 NC 다이노스 입단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프로 생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NC 입단 첫해 KT로 2차 드래프트가 됐고, 이름도 김용성에서 김건국으로 바꿨다. 2017년에는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오태곤-장시환-배제성이 얽힌 트레이드의 한 조각이 바로 김건국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11년만에 1군 마운드에 복귀했다. 2018년 9월 6일이었다. 야구선수로서 아내에게 바친 첫 선물이었다.

"1군에서 단 1경기라도 뛰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단 1이닝이었지만 내겐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1승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경기 끝나고 감사한 분들께 한분한분 전화를 돌렸다.""

한달 뒤인 10월 13일에는 선발등판, 5이닝 1실점 역투하며 생애 첫 선발승도 따냈다. 가을야구 싸움에서 아쉽게 탈락하면서 전날 갑작스럽게 주어진 기회. 1군 데뷔 4119일만의 승리. 올해 4월 김대우(롯데·4374일)가 갱신하기 전까지 이 부문 최장 기록이다. 김건국의 눈물이 녹아든 숫자다.

양상문 감독 시절 '글러브 패대기' 사건도 있었다. 김건국은 "순간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홧김에 저지른 실수다. 감독님께는 바로 사과드렸다"면서 "그날 근육 파열로 말소되면서 뜻하지 않게 팬들의 오해를 샀다"며 민망해했다.

2019년 37경기, 2020년 32경기에 나서며 롯데 불펜의 한 축을 맡았다. 하지만 올해는 13경기에 그쳤고, 시즌 종료와 함께 롯데를 떠나게 됐다.

멀티이닝 연투를 한 뒤 결연하게 "팔이 부러져도 던지겠다. 던질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던 김건국. 이젠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여전히 야구의 꿈을 꾸고 있다.

"(민)병헌이가 '난 몸이 좋지 않지만, 넌 오래 뛰었으면 좋겠다. FA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 않냐'고 하더라. 난 언제나 준비돼있다. 구속이 안 나오면 '이제 안되나 보다' 포기하겠는데, 아직도 145㎞ 이상 던질 수 있다. 어떻게 돌아온 프로무대인가. 내 팔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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