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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떠나는 장수 외인 로맥 "한국에서의 5년, 모든 게 감사했다"[인천 인터뷰]

박상경 기자

입력 2021-11-03 14:22

한국 떠나는 장수 외인 로맥 "한국에서의 5년, 모든 게 감사했다"
◇인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인천=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제이미 로맥(36·SSG 랜더스)은 KBO리그, 한국에서의 경험에 감사함을 드러냈다.



2017년 SK 와이번스(현 SSG)에 입단한 로맥은 올 시즌까지 한국에서 5시즌 간 활약했다. KBO리그 통산 626경기 타율 2할7푼3리, 155홈런 409홈런의 기록을 남겼다. 5시즌 모두 20홈런을 기록했고, 베테랑으로 선수단을 뭉쳤다. 2019년 창원NC파크에서 열렸던 올스타전에선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인 맥아더 장군 복장을 하고 타석에 나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인천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는 등, 경기장 안팎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다.

한국을 떠나기 앞서 3일 랜더스필드에서 취재진과 만난 로맥은 "한국에 오게 된 걸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를 건냈다.

-유니폼 차림으로 인터뷰에 나서다 평복 차림으로 자리에 앉은 자리 소감은.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야구 선수로 살아왔다. 유니폼을 벗고 셔츠를 입은 것은 야구 인생을 마치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것 같다.

-은퇴 결정 배경은.

▶작년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멘탈적으로 힘든 게 많았다. 둘째를 갖고 8개월 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아내에게 아들 둘을 맡겨 놓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올 시즌을 시작할 때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서도 야구 관련 일을 할 것인지. 제2의 인생 준비는.

▶선수 생활 때보다는 여행을 덜 하는 부분을 생각 중이다. 일단은 아이를 돌봐주는 남편 역할에 충실한 생각이다.

-5년 동안 한팀에서 뛰었는데,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특히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딱 한 명을 집기 보다 모든 선수에게 감사하다. 내가 커리어 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이해해줬다. 박정권, 나주환, 김강민 등 베테랑 그룹들이 적응을 많이 도와줬다. 베테랑 그룹이 많이 생각난다.

-한국 생활 중 기억에 남는 날은.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점차로 앞선 9회말 1루에 서 있는데 김광현이 불펜을 뛰어 나올 때 굉장히 놀랐고 소름 돋았다. 그때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잘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개월 간 긴 시즌 굉장히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스페셜한 팀이었다.

-맥아더 장군 복장을 하고 나섰던 2019년 올스타전도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그것도 특별한 순간 중 하나였다. 올스타 투표를 굉장히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가족들도 창원에 와줘 기억에 남는다. 영상과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를 계기로 '이런 게 팬 서비스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맥아더 장군 코스튬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땐 홍보, 마케팅팀에서 하라고 강요를 해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했는데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

-5시즌 간 뛴 KBO리그는.

▶한국에 오게 된 걸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게 다른 야구를 눈뜨게 해준 곳이다. 미국에선 암묵적 룰로 개성을 발현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에선 구장 분위기도 너무 즐거웠다. 코로나19 때 KBO리그가 미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미국 선수들에게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젠 미국 야구도 KBO리그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KBO리그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한국 투수들의 실력이 정말 좋아진 것 같다. 앞으로도 발전해 갈 것이다. 개선해야 발 부분이 있다면 멘탈 아닌가 싶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성공 이유는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도 '과정에 집중하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결과는 놓아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보낸 5년이 앞으로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여기서 보낸 5년은 내 커리어 최고의 순간이었다. 야구 뿐만 아니라 인천에서 쌓은 우정에 너무 감사하다.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 인생을 변화시킨 순간이었다.

-나머지 9구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투수와 타자가 있다면.

▶더스틴 니퍼트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선수였다. 이승엽도 기억에 남는다. 역사적인 선수다. 기아의 최형우도 엄청난 타자라고 생각한다. 한 명을 더 꼽자면 2019년 강백호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1군 무대에서 뛰는 걸 보며 굉장히 놀랐다. 강백호가 스트레스 없이 자신감 있게, 순진하게 뛰며 야구를 사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계속 좋은 실력을 보여줄 것으로 본다.

-한국에 왔을 때 세운 목표를 다 이뤘나. 이루지 못한 기록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한국에 올 때 '내가 안착한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5시즌을 뛰며 포스트시즌에 3번 나섰다. 항상 이기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세 번째로 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선수가 되고자 했다. 이런 목표를 다 이뤘고 후회는 없다. 계속 건강한 몸이었다면 외국인 최다 홈런 기록을 깼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개인적인 목표 때문에 내년에 돌아올 수는 없었다. 타이론 우즈에 이은 최다 홈런 2위를 기록한 것도 영광스럽다.

-지도자나 스포츠 행정가에 대한 생각은.

▶결국 그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다. 결정을 하기엔 좀 이른 것 같다. 야구가 인생이었고, 아직 그 열정이 남아 있다. 다음 야구 세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 하나를 꼽는다면.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 히어로즈전에서 브리검을 상대로 3점 홈런을 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3점차로 팀이 뒤진 상태에서 실책으로 내 타석이 돌아왔다. 그 홈런으로 동점이 됐다. 내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홈런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경기 상황이 재밌게 전개됐던 기억도 있다.

-새 외국인 선수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함과 진정성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회를 가진 부분에 감사하면 한국 문화에 감사하고 팀원을 존중하며 간절함 속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두가지를 갖고 있다면 나머지는 잘 따라올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투수 세명을 꼽자면.

▶양현종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한국에 와서 1년 반 정도는 잘 쳤는데 그 이후로는 공략을 잘 못했다. 직구가 정말 좋은 투수다. 몸쪽 높은 코스로 항상 공략을 당했다. 19년, 20년엔 거의 친 기억이 없다. 메이저리그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웃음). 조상우도 꼽고 싶다. 150~155㎞의 힘있는 직구를 던지는 투수여서 직구를 노렸는데 계속 슬라이더만 던져 대처가 잘 안됐다. 지금와서는 왜 직구만 노렸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직구가 워낙 좋아 그 부분이 대처가 안되면 공략도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정우람이다. 85마일을 던지는데 100마일처럼 느껴진다(웃음). 심판들이 몸쪽은 더 잡아주는 느낌도 들었다. 배트를 들고 아무것도 못하고 들어온 적도 많았다. 몸쪽을 노리고 들어가면 바깥쪽 체인지업에 당했다. 항상 나보다 한 수 위였고, 잘 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 사

▶많이 그리울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인데 아마 그 습관은 없어질 것이다. 아기들 기저귀 갈아주느라 샤워나 사우나 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웃음).

-SSG에서 내년에 기대할 만한 선수가 있다면.

▶올해 투수들 부상이 많았다. 부상만 없었다면 우승도 노려볼 만한 팀이었다. 박종훈 문승원이 복귀한다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한유섬이 부상에서 돌아와 올해 엄청난 성적을 냈는데,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만한 선수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준 팬들께 감사하다. 경기장에 걸린 유니폼, 팬들이 보내준 아이들 선물, 편지 모두 감사하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감사하다. 평생 이 감사함을 간직하도록 하겠다. 송도에 처음 왔을 때 1~2년 땐 사진,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후엔 대부분 '안녕 로맥'하며 인사만 하고 지나가더라. 내가 어느 순간부터 지역사회에 녹아 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천은 제2의 고향이 됐다.

인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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