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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선]노메달은 당연한 결과, 김경문호엔 '이것'이 없었다

박상경 기자

입력 2021-08-07 23:53

수정 2021-08-08 06:30

노메달은 당연한 결과, 김경문호엔 '이것'이 없었다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가 7일 요코하마 야구장에서 열렸다. 대표팀 차우찬과 선수들이 팀의 패색이 짙어진 9회말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요코하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08.07/

[도쿄(일본)=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또 한 번의 영광은 없었다.



김경문호의 도쿄올림픽 도전은 '요코하마 참사'로 마무리됐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신화를 쓰면서 금빛 질주를 했던 김경문호는 이번 대회 7경기서 단 3승(4패)을 얻는데 그쳤다. 일본, 미국과의 준결승 2경기에 이어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결정전에서도 덜미를 잡힌 3연패 과정, 특히 도미니카전 막판 5실점으로 무너진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본과 함께 전원 프로 출신으로 엔트리를 구성한 한국 야구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 그러나 현장에서 지켜본 김경문호, 한국 야구엔 메달을 따낸 3팀엔 있었던 특별함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준비했나

대표팀 구성 때마다 크고 작은 논란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 김경문호 구성에는 적잖은 이들이 물음표를 달았다. KBO리그 개인 성적 상위권에 포진한 일부 선수들이 제외된 반면, 대표팀 소집 직전까지 부진했던 차우찬(34·LG 트윈스)이나 일본행 직전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이 발견된 최주환(33·SSG 랜더스)을 그대로 데려온 부분은 의문점을 자아낸다. 현장 총사령관인 김 감독과 그를 지원하는 기술위원회가 과연 냉정한 구성을 했는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변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정 숙소 음주파문에 휩싸인 박민우(NC 다이노스), 한현희(키움 히어로즈)가 중도 사퇴하면서 애초에 생각했던 구성이 틀어졌다. 그러나 이들을 대신해 갑작스럽게 선발된 오승환(39·삼성 라이온즈)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김진욱(19·롯데 자이언츠)은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확실한 대체 자원의 모습까진 부족했다. 이들 외에도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이 과연 현 시점에서 최고의 기량, 최상의 컨디션을 갖춘 선수들이었는지도 되짚어볼 만하다.

금메달을 차지한 일본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했다. 최종명단 발표 직후 부상-부진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선수 교체에 나섰다. 절치부심 끝에 선수를 선발한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은 실수를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런 차이는 결국 13년 만에 양국의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는 결말로 드러났다.

▶갈팡질팡 운영, 게임 플랜이 없었다

김 감독의 운영도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이스라엘과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했던 원태인(21·삼성)은 이후 불펜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발 투수가 부진 시 불펜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국제 대회 단기전에서 흔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원태인의 부족한 경험을 고려할 때 이 결정은 오히려 독이 됐다. 흔치 않은 불펜 등판, 생애 첫 올림픽의 중압감을 극복하지 쉽지 않았다. 초반 좋은 타격감을 보이던 김혜성(23·키움)을 벤치에 앉히고 황재균(34·KT 위즈)을 활용한 부분이나, 타격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양의지(34·NC) 오재일(35·삼성)의 출전을 고집한 점, 그나마 구위가 괜찮았던 박세웅(26·롯데)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점도 의문점이다.

이러다보니 예선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팀 밸런스는 갈수록 더 흔들렸다. 타순-야수 구성이 일정한 로테이션 없이 바뀌고, 마운드 역시 교체 타이밍이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됐다. 부담감은 결국 나머지 선수들에게 전가됐다. 4번-2번-6번 등 타순을 이리저리 오간 강백호(22·KT)나 3번에 고정된 이정후(23·키움)은 해결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다. 마운드에선 조상우(27·키움)가 7경기 중 6경기에 마운드에 올라 146구를 던져야 했다.

메달을 따낸 3팀은 확실한 게임 플랜을 들고 승부를 치렀다. 완벽한 준비로 금메달을 목에 건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이크 소시아 감독 지휘 하에 번트-시프트-전략적 타순 조정으로 은메달의 성과를 만들었다. 한국 야구가 '한수 아래' 정도로 여겼던 도미니카공화국조차 백전노장 라울 발데스를 활용한 동메달전에서 열세에도 에이스 C.C.메르세데스를 끝까지 아껴 결국 승부 카드로 활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상대 향한 존중과 열정이 부족했다

단기전인 국제 대회에서 쉬운 팀은 없다. 이른바 '참사'로 명명된 도하, 타이중, 고척에서의 결과가 말해주는 뼈아픈 교훈. 그러나 구성-몸값 면에선 일본에 이어 2위였던 한국 야구는 이번에도 이런 교훈을 잊은 채 '디펜딩 챔피언'의 자신감만을 강조했다. 주장 김현수가 결집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일부 선수의 자세는 과연 태극마크의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을 만했다.

이번 대회 최강팀인 일본은 매 경기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로 찬사를 받았다. 특히 승부를 마친 뒤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목례를 하면서 '강자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했다. 승자의 여유만으로 폄훼하기엔 여러 울림을 전해주는 장면이었다.

종주국 미국도 이번만큼은 오만함을 쏙 뺀 채 대회에 임했다.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를 19시즌 동안 이끌었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미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상대를 치밀히 연구하고 적절한 작전을 구사하면서 은메달의 성과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국제 무대에 선 미국 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 소시아 감독 뿐만 아니라 미국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에 임하는 열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한국과 동메달전에서 맞닥뜨린 도미니카공화국도 경기에 임하는 자세나 플레이 모두 동메달을 얻을 자격이 충분했다. 특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은 마지막 타자였던 김현수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한국 야구가 받아든 노메달 성적표는 단순히 '불운'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결과물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쿄(일본)=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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