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야구보다 공부가 쉬웠던 청년, 이젠 '연습생 신화'를 꿈꾼다[창원 인터뷰]

박상경 기자

입력 2021-06-26 19:58

수정 2021-06-27 10:00

야구보다 공부가 쉬웠던 청년, 이젠 '연습생 신화'를 꿈꾼다
◇창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창원=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26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펼쳐진 한화 이글스-NC 다이노스 간의 퓨처스(2군)리그 경기.



등번호 '06'번을 단 한화의 육성 선수 장지승(23)의 이날 역할은 경기 진행 요원이었다. 경기장 곳곳에 진행요원이 배치된 1군 경기와 달리 양팀 선수들이 역할을 배분하는 퓨처스리그에선 흔한 장면. 기약 없는 퓨처스 생활, 그라운드 안이 아닌 바깥에서 뛰는 시간은 선수에게 고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지승은 경기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동료들의 배트, 장비를 들고 더그아웃과 그라운드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한화는 장지승의 정식 선수 전환을 발표했다.

장지승은 경기가 끝난 뒤에야 최원호 퓨처스 감독 및 코치진, 동료들의 축하 박수를 받은 뒤에야 정식 선수 등록 사실을 알았다. 경기 직후 만난 장지승의 얼굴엔 웃음기 대신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장지승은 "현재 우리 팀 외야수가 5명이다.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고 있는데, 오늘도 그런 과정인 줄 알았다"며 "상대팀(NC) 포수가 대학교 동기였다.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워서 표정이 그랬다"고 미소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오늘 경기 전까지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휴대폰도 버스에 있으니 알 길이 없었다"며 "경기 후 감독, 코치님들이 '축하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지금도 그저 멍하고 얼떨떨하다"고 덧붙였다. 또 "입단 후 목표가 정식 선수 전환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육성 동기 선수 모두 외야수다. 그동안 함께 열심히 운동하며 선의의 경쟁을 했다. 그 친구들과 경쟁하며 열심히 운동 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한화 정민철 단장은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최원호 감독 간 소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정식 선수 전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외야 수비에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장타력을 갖춘 중장거리형 타자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장지승은 "타격에서 내 강점을 살리기 위해 감독님, 코치님 말씀을 신경 쓰며 훈련 중"이라며 "수비에서도 송구 정확도, 타구 판단 능력 등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수비가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 동산고와 성균관대를 거친 장지승은 2021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10개 구단 지명을 받지 못했다. 올 초 한화의 테스트 제의를 받고 야구 선수의 꿈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육성 선수라는 기약 없는 신분에서의 출발이었다. 대학 시절 우타 중장거리 외야수로 주목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출발. 하지만 장지승은 한화 입단 후 퓨처스리그 37경기 타율 3할1푼1리(135타수 42안타), 7홈런 3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00의 뛰어난 활약을 발판으로 정식 선수의 꿈을 이뤘다.

장지승은 대학 시절 '운동 선수는 공부에 관심 없다'는 편견을 깬 선수이기도 하다.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4년 간 평점 3점대 후반을 유지했고, 학기 중 평점은 만점(4.5)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상위 10%에게만 주어지는 교직 이수까지 경험했고, 졸업 후 드래프트 지명 실패 뒤 교사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야구였다.

장지승은 "대학 2학년 때 부상 뒤 잠시 공부에 매달린 적이 있다. 야구는 해도 늘지 않았는데 공부는 좋아지는 게 눈에 보여 많이 흔들렸다"며 "선배 형들이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도 컸고, 공부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야구를 끝까지 해봤으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했는데 지명을 못 받아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드래프트 끝나고 한 달 동안 청소 알바를 했다. '이제는 사회에 나가야 하니 뭐라도 경험을 해봐야겠다' 싶어 친구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 면접도 봤다. 그러다 테스트 연락을 받았다"며 "운동은 나이 먹으면 못 하지 않나. 인생에 있어 후회할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테스트에 임했는데 합격해 너무 기뻤다. 지금은 야구를 할 만큼 하고, 공부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야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테스트 때도 엄청나게 응원해주셨고, 지금도 퓨처스 문자 중계까지 다 챙겨보신다.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정식 선수 전환이) 조금이나마 보답이 됐으면 좋겠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연습생 신화'는 이글스 역사를 떠올릴 때 자주 회자되는 말. 연습생에서 독수리군단의 레전드로 거듭난 장종훈 한용덕을 비롯해 여러 선수들이 뒤를 이었다. 장지승은 "어제까진 정식 선수가 목표였다. 이젠 팀에 도움을 주고 영향력이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창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