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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책도 안타, 내가 오히려 미안" 마운드 위 해탈자, 텅 빈 마음 채우는 카르페디엠[SC핫플레이어]

정현석 기자

입력 2021-06-21 05:34

수정 2021-06-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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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책도 안타, 내가 오히려 미안" 마운드 위 해탈자, 텅 빈 마음 채우…
20일 사직 롯데전에 앞서 인터뷰를 하는 백정현.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부산=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현 시점에서 6월 MVP를 뽑는다면?



삼성 베테랑 좌완 백정현(34)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6월의 백정현은 무결점 투수였다. 4경기 2승무패, 26⅔이닝 단 1실점으로 평균자책점 0.34.

삼성 허삼영 감독은 19일 선발 7이닝 1실점으로 팀에 9대1 대승을 안긴 백정현에 대해 "기출루는 많은데 득점권에서 실점하지 않는 신기한 투수"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능력이 있는 선수"라며 "평소 표현이 없다. 업다운 기복의 폭이 적은 건 투수에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과연 백정현은 마운드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20일 사직 롯데전에 앞서 그를 만났다.

사령탑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현재 그 어떤 상황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 무엇도 무표정 사나이의 마음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잘 하려고 할 때는 잘 안됐는데 올해는 '몸만 건강하게 한 시즌을 치르자'는 마음으로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다보니 운 좋게 결과가 좋네요. 기대 자체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없어요."

극강의 위기탈출 비법을 물었다.

"경기를 하다보면 첫 타자가 출루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 다음타자가 중요하니까 그 타자에게 집중해요. 내가 던지는 공이고 선택한 공이니까 맞는 거에 대한 결과는 생각하지 않아요. 구속 보다는 연습 때부터 원하는 코스에 던지기 위해 제구에 신경을 쓰고 있죠. 패턴이 정해져 있으면 상대가 노리고 들어올텐데 그때 그때 느끼는 대로 던지다보니 역으로도 들어가고…"

큰 깨달음을 얻은 선수에게서 느껴지는 초월의 경지.

문득 궁금했다. 좌완 기근 속에 대표팀 승선 욕심은 없었을까. 예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네, 한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저는 지금 성적이 좋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고 있을 뿐이죠. 좌완 중에 잘하는 선수가 많으니까요. 제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수치에 대한 목표. 물어보나 마나다.

"목표는 하나도 없고요. 건강하게 던지는 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팀이 상위권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데 모두 부상 없이 잘 해서 높은 곳 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10승이요? 저는 관심 없는데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결국 오늘 경기를 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야수들이 쳐주고 막아주고 하다보니 승리가 된거 뿐이고요."

그래서일까. 백정현은 마운드 위에서 표현이 없다. 호수비도, 실책에도 무덤덤 하다.

"경기 일부분이니까요. 내가 미스할 수도 있는거고요. 실책도 안타라 생각해요. 야수가 실책한 뒤에 제가 못 막아주면 오히려 미안해요. 그 미안한 느낌이 확대가 되잖아요. 사실 좋은 수비나 실책이나 맨날 반복되는 일이잖아요. 반복되는 일의 결과에 따라 감정이 흔들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맞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일까. 백정현이 아깝게 승리를 놓친 13일 대구 NC전. 구원등판한 이재익의 프로데뷔 첫 승에 백정현은 기쁨을 표현했다. 이기고픈 마음은 인지상정.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저는 승리에 대한 욕심이 없으니까요. 고생한 재익이가 승리하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마운드 위의 해탈자. 무념무상 백정현이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비운 마음을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카르페디엠으로 채우고 있다.

스스로 얼마나 대단한 피칭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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