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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시선]예정된 경질과 '프런트 야구' 화두, 정답 없지만 길은 있다

박상경 기자

입력 2021-05-12 19:27

수정 2021-05-13 07:00

예정된 경질과 '프런트 야구' 화두, 정답 없지만 길은 있다
◇롯데 성민규 단장과 허재혁 팀장.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롯데 자이언츠의 리더십 교체로 '프런트 야구'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의 리더십 교체가 발단이 됐다. 롯데는 허문회 전 감독을 경질하는 배경에 대해 성적 부진이 아닌 '방향성의 차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롯데는 지난해부터 내외부 FA 및 트레이드 자원 활용뿐만 아니라 강로한 고승민의 포지션 변경, 외야수 전준우의 1루수 변신 등 여러 팀 개선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허 전 감독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파열음이 생겼다. 베테랑과 현장 판단 중심의 야구를 추구해 온 허 전 감독의 경질은 시간문제였을 뿐, 예고된 수순이었다. 롯데는 허 전 감독을 경질하면서 당장의 성적이 아닌 장기적인 육성에 무게를 싣는 쪽을 택했다. 구단-현장 간의 간극을 좁히는 대신 리더십 교체를 단행한 것은 사실상 전면적인 '프런트 야구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롯데는 허 전 감독 체제에서 펼치지 못했던 팀 개선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프로세스로 대변되는 팀의 방향성을 설계해 온 성민규 단장을 비롯해 선수단 컨디셔닝 파트 전반을 기획하고 이끌어 온 허재혁 스포츠사이언스팀장, 성 단장 체제에서 신설된 R&D팀(Research & Development)이 중심이 돼 팀을 꾸려간다. 퓨처스(2군) 사령탑 시절 이들과 협업해 온 래리 서튼 감독이 현장 운영을 담당한다.

프런트 중심의 야구가 KBO리그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단장이 중심이 돼 구단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데이터-육성 파트에서 추린 자료를 토대로 현장 감독과 의견을 조율해 팀을 꾸려가는 빅리그식 운영은 수 년 전 뿌리를 내려 보편화 됐다. 경기 중 순간적으로 내려지는 더그아웃의 판단은 감독에게 맡기되, 전체적인 밑그림은 프런트가 설정해 놓은 방향에 맞춰진다.

예전처럼 감독이 전권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프런트-현장이 협업하는 체계가 구축되면서 현장-프런트 야구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로는 수치화될 수 없는 현장만의 감각이나 결정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프런트-현장 간 논의가 데이터를 통한 다양한 선택지 마련을 넘어 선수 기용-경기 운영까지 넘나드는 모습을 경계하기도 한다. 지난해 시즌 도중 손 혁 전 감독이 키움 히어로즈에서 물러날 당시 비슷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여전히 프런트-현장의 역할 분담이나 힘의 균형에 대한 물음표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KBO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든 팀은 NC 다이노스다. 리그 참가 전인 2011년 창단 직후부터 데이터팀을 꾸린 NC는 초창기 현장 스태프와 불협화음을 내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모기업 NC소프트가 개발한 전력분석시스템인 디라커(D-Locker)를 구축해 선수 개인이 원하는 데이터, 동영상까지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런트와 현장이 치열하게 소통하며 간극을 좁혔고, 결국 창단 9년만인 지난해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만년 꼴찌' 멍에를 벗은 KT 위즈도 마찬가지. 2015년 리그 참가 후 4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KT가 반등의 문을 연 계기는 프런트-현장의 소통과 협업이었다. 현역 시절 스타 출신인 이숭용 단장-이강철 감독 조합이 결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숭용 단장은 자존심 대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쪽을 택했고, 이강철 감독 역시 귀를 열고 소통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건전한 긴장 관계 속에서도 소통하며 방향성을 잡았고, 간극을 좁히면서 결국 도약이라는 성과를 일궜다.

NC 이동욱 감독은 '공감'을 성공 열쇠로 꼽았다. 이 감독은 "귀가 열려 있는 게 우선이다. 상대의 입장을 듣고 이해할 준비가 돼 있어야 공감대도 만들어질 수 있다. 입과 입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충돌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어떤 방향이 맞고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정해진 것은 없다. 그걸 어떻게 매니징하느냐가 감독과 단장의 역할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던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프런트는 팀을 구성하고, 감독은 그 팀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며 "프런트가 팀의 구성을 관리하는 주체로 가되 감독이 경기 운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구에 정답은 없고,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할 뿐이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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