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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인터뷰]꼬박 1135일 걸린 홈런…"나는 백업 포수로 남고싶지 않다"

나유리 기자

입력 2021-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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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1135일 걸린 홈런…"나는 백업 포수로 남고싶지 않다"
2021 KBO리그 KIA타이거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렸다. 두산 장승현이 7회초 1사 1,2루에서 좌중월 3점 홈런을 치고 홈인하고 있다. 광주=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05.08/

[광주=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제가 홈런을 쳤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두산 베어스 장승현이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친 날. 경기가 끝나고 그는 웃음이 묻어나지만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터뷰실에 들어섰다. 꼬박 1135일이 걸렸다. 2013년 두산 신인으로 입단했지만, 오랜 2군 생활과 경찰 야구단 복무 등으로 2018년에야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2018년 3월 31일 KT 위즈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2021년 5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쏘아올렸다. 출전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 타격에서 대단한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던 장승현의 감격스러운 첫 홈런이었다.

7회초 KIA 필승조 장현식을 상대로 8-5를 만드는 3점 홈런을 쳤고, 이 점수는 두산의 결승 점수가 됐다. 장승현은 홈런 상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직 홈런을 쳤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그는 "(홈런 상황이)그냥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경기 내내 최원준 뿐이었다. 이날 선발 투수로 등판했던 최원준은 데뷔 이후 KIA를 상대로 통산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할만큼 상대 전적에서 강했다. 하지만 프레스턴 터커에게 연타석 홈런을 허용하는 등 이날은 5⅓이닝 5실점 '노 디시전'으로 부진 끝에 내려갔다.

선발 포수로 최원준과 배터리 호흡을 맞췄던 장승현은 94년생 동갑내기인 친구에게 미안했다. 장승현은 "저 때문인 것 같았다. 미안해서 어떻게든 승리 투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꾸 찬스가 나에게 왔는데 그때마다 더 집중한 것 같다. 원준이 승을 챙겨주고 싶어서 공도 더 잘보였다"고 이야기했다. 원래 전날(7일) 선발 등판이 예정됐었던 최원준은 경기 시작 직전 미세 먼지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신체 리듬이 꼬였다. 장승현도 "어제 몸을 풀고 오늘 또 풀어서 데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공에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며 아쉬워했다. 승리는 챙겨주지 못했지만 장승현을 비롯한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최원준의 패전도 지워질 수 있었다.

최근 장승현이 꾸준히 선발 포수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주전 포수 박세혁이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면서부터였다. 김태형 감독은 "장승현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했다. 누구보다 선수 스스로가 알고 있다. '백업'이라는 단어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고,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장승현은 "감독님이 계속 믿고 내보내주시니까 그거에 보답하고 싶다. 감독님이 얼마전에 '앞으로도 백업 선수로 남고싶냐'고 이야기 하셨던 게 인상 깊었다"면서 "경기에 나갈 수 있을때 인상깊은 선수가 되고싶다. 나는 원래 수비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감독님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방망이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지금 이 시기에 확실한 포수가 되고 싶다"며 포부를 불태웠다. 장승현의 입단 후 두산에는 양의지, 박세혁으로 이어지는 좋은 포수들이 계보를 이었다. 늘 세번째, 네번째 포수로 분류됐었지만 '영원한 백업'은 없다. 선배들의 플레이는 장승현에게도 많은 자극이 됐다.

장승현의 아버지는 태평양-현대에서 포수로 뛰었던 장광호 전 코치다. 아버지 역시 포수 출신이기 때문에 아들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장승현은 "요즘 경기에 자주 나가니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면서 "홈런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제대로 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백업으로 남고싶지 않다는 그의 다부진 각오가 더욱 희망차게 들렸다.

광주=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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