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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팬 '짜요'를 '비셩(必勝)'으로 바꾼" 韓'닥공 삼총사'의 힘[부산세계탁구선수권]

전영지 기자

입력 2024-02-25 14:19

수정 2024-02-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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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팬 '짜요'를 '비셩(必勝)'으로 바꾼" 韓'닥공 삼총사'의 힘
역대 최강 닥공 삼총사 임종훈-이상수-장우진 사진제공=부산세계탁구선수권 조직위

"소름 끼쳤다."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 남자단체전 4강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을 지켜본 유승민 부산세계탁구선수권 공동조직위원장(대한탁구협회장·IOC위원)의 한줄평이다.

주세혁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탁구 대표팀은 이날 '세계 최강' 중국을 상대로 장우진(28·세계 14위)과 이상수(33·삼성생명·세계 27위)가 2매치를 가져오는 기적같은 승부에도 매치스코어 2대3으로 역전패했다.

이번 대회 일본과의 8강전 포함 단 한 매치도 뺏기지 않은 왕하오 감독의 중국을 상대로 안방에서 '톱랭커' 장우진이 1단식에서 세계 2위 왕추친을 잡았고, 3단식에서 이상수가 '올림픽 2연속 챔피언' 마롱을 잡아냈다. '중국 탁구의 심장' 마롱이 2010년 모스크바 대회 단체전에서 패한 후 무려 14년만에 기록한 충격패. 16년 만의 결승행이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이었다. 2, 4단식에서 '세계 1위 철벽' 판젠동이 임종훈(26·한국거래소·세계18위), 장우진을 모두 잡으며 흐름을 되돌렸고, 5단식 왕추친이 임종훈을 꺾었다. 한끗차로 중국 상대 단체전 첫승과 안방 결승행을 놓쳤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말도 부족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명승부였다. 역대 최강의 톱스핀을 장착한 '닥공 삼총사'가 꺾이지 않는 '공격'으로 만리장성에 균열을 냈다. .

중국 원정팬들의 '광클'로 골드석 48만원을 호가하는 준결승, 결승전 티켓 4000석이 일찌감치 동난 상황. 한·중 응원전도 뜨거웠다. 결승행을 낙관하며 "짜요(加油,힘내)"를 외치던 중국팬들의 구호가 마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비셩(必勝,이겨야만해!)"으로 바뀌었다. 벡스코를 메운 안방 팬들은 '닥공 삼총사'장우진, 임종훈, 이상수의 눈부신 투혼에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한국에겐 2008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만의 첫 결승행 기대감이, 중국에겐 직전 청두대회까지 이어온 10연패 기록이 부산에서 멈춰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한 경기였다. 5단식을 앞두고 현장선 '중국이 한국에 져 동메달을 확정할 경우 기자회견을 안할 수도 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경기 직후 '캡틴' 이상수는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많은 팬들이 응원 와주셔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팬들 덕분에 힘이 났다. 아쉽지만 좋은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장우진은 "한동안 중국선수들에게 계속 져서 가슴속에 한이 있었는데 쉽게 진다는 인식을 깨뜨렸다. 하지만 패해서 아쉽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세계선수권에 많은 팬들이 와주신 덕분에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팬이 없으면 선수는 없다. 앞으로도 희망을 보여드리는 탁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임종훈은 "형들이 너무 잘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났다. 앞으로도 탁구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주세혁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기대가 됐지만 이 정도로 잘할 줄 몰랐는데 팀워크로 똘똘 뭉쳐 좋은 경기를 했다"면서 "파리올림픽에도 최선을 다해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만리장성을 넘어본 대한민국 탁구 레전드들도 후배들의 보기드문 분투를 칭찬했다. 2004년 왕하오를 꺾고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을 딴 유승민 위원장은 "경기를 보면서 2001년 오사카 대회(은메달) 생각이 났다. 당시 김택수 선수( 현 미래에셋증권 총감독)가 중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었다. 이후 20년 넘게 중국이 전세계 어느 팀과 붙어도 이런 경기를 한 적이 없었다. 소름 끼쳤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소름이 끼친 진짜 이유는,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잘했는데도 결국은 흔들리지 않는 중국 탁구였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빈틈은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이 빈틈을 파고들어야 할지 깊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 '탁구여제' 현정화 집행위원장 역시 "중국과의 경기,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팀과의 경기에서 10여년 전을 다 떠올려봐도 이런 팽팽한 경기를 본 적이 없다. 드디어 우리가 이기는 역사를 쓰나, 그런 생각도 할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이어 현 위원장은 "하지만 결국 중국의 벽을 못넘었다. 중국을 이기려면 딱 한 가지다. 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 중국은 잘하는 선수 뒤에 잘하는 선수, 그뒤에 또 잘하는 선수가 계속 나온다. 한마음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24일 밤 진행된 여자단체전 결승서도 중국은 일본과 풀매치 접전을 펼쳤다. 한국과의 4강전, 판젠동처럼 '세계 1위' 쑨잉샤가 '2매치'를 잡는 활약을 펼치며 3대2로 역전승, 6연패를 지켜냈다. 부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남자탁구대표팀 동메달 기자회견 전문]

-경기 소감

▶(주세혁 감독)기대가 된다고 했었다. 우리팀 선수들이 너무 컨디션 좋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저도 기대가 됐다. 양팀 좋은 경기 했다. 우리 팀 역시 이정도로 잘할 줄 몰랐는데 팀워크로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 했다. 마지막에 기대가 있었는데 상대를 몰아붙이고 긴장시킬 기회에서 더 못한 게 아쉽다. 경기력이 좋았기 때문에 올림픽 때도 최선을 다해 도전하겠다.

▶(주장 이상수)팬들의 응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경기다. 팬 앞에서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계속 이렇게 하다보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장우진)2대3으로 져서 아쉽다. 하지만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인 만큼 좋은 경기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고 기분 좋다. 우리가 한동안 중국에 쉽게 졌는데 많은 팬들, 국민들이 이젠 안된다는 인식이 많았다. 쉽게 진다는 인식을 깨드렸다. 좋은 경기 내용이었다.

▶(임종훈)형들이 너무 잘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났는데 아쉽기보다 아깝다. 다음에 좀더 잘해서 오늘처럼 실수하지 않고 아쉽지 않게 후련하게 경기 마칠 수 있도록 준비를 더 잘해보겠다.

-청두 대회 때도 동메달을 땄지만 경기력이 좋아졌다. 2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파리올림픽 앞두고 어떤 점 보완해야 할까.

▶(주세혁 감독)2022년 부임했을 때 도쿄올림픽 직후였다.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첫번째는 자신감 심어주는 데 집중했다. 2002년 청두에서 장우진 빼고 조승민, 조대성, 안재현 등 처음 뛰는 선수들로 구성했고 4강에 만족했다. 임종훈 이상수 베테랑 선수, 경험이 많은 선수라서 제가 작전 변화를 줬을 때 따라와주고 잘 실행해줬다. 그것이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상수 선수, 베테랑으로서 그동안 마롱, 판젠동과 많은 경기 했는데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많았다. 오늘 홈팬들 앞에서 마음 굳게 먹고 경기했을 것같다. 어떤 마음으로 나섰는지. 오늘 경기가 본인 탁구 인생경기 몇 번째에 들어갈지.

▶(이상수)일단 마인드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이었다. 스타일상 누구랑 질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어떻게 이길까 생각했고 마롱선수와 어떻게 이길까 준비하고 연습했다. 좋은 경기를 했다. 오늘 경기가 제 커리어에서 두세 번째 안에 들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팬들 앞에서 이런 경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 경험이다. 좋은 경험, 좋은 추억이 될 것같다.

-장우진 선수, 어제 경기할 때 햄스트링 문제 이야기했는데 1단식 끝나고 휘청하더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1단식에 임했고, 4단식 판젠동과의 대결에서 체력 영향 있었는지.

▶왼쪽 햄스트링인데 크게 문제는 없지만 흥분한 나머지 정신을 잃어 그렇게 된 것이다. 왕추친과 하기 전에 그동안 쉽게 진 경기가 없어서 어떻게 이길까를 연구했고, 결국엔 경기 들어가서 내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이길 수 있는 심리가 됐다. 4번 매치는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는데 판젠동 선수가 제가 싫어하는 걸 잘 묶어서 제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세계 1위는 다르다고 느꼈다

-장우진, 왕추친 선수가 4게임 '네트'를 준 후 테이블 위에 쓰러져서 좌절하는 모습 보셨는지, 어떤 생각 했는지, 중국 선수 상대로 이겼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포인트에서 정확하게 봤는데 왕추친 선수와는 다른 중국선수들에 비해 친분도 있고 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중국을 상대로 1번을 나가는데 부담은 있지만 경기를 하면 할수록 오늘은 정말 이길 수 있겠다고 느꼈던 것 같다. 홈에서 하다보니 왕추친 선수가 실수가 많아졌다. 홈 이점이 좋았다. 왕추친 선수가 원래 경기력보다 오늘은 잘하지 못했다. 운이 좋았다.

-이상수 선수. 마롱선수를 2012년 코리아오픈에서 이겼던 기억이 있다. 12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안방에서 또 이겼다. 20대 초반에 이겼을 때와 베테랑이 돼 이겼을 때의 기분이 어떻게 다른지.

▶2012년 16강에서 마롱 선수를 이긴 기억이 난다. 항상 마롱 선수는 똑같이 플레이한다. 제가 잘 치면 잘됐다. 제가 실수를 하면 쉽게 지는 경향도 있었지만 저만 잘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3번에서 노장끼리 붙었는데 처음 이겼을 때도 좋았지만 한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선수들이랑 같이 중국을 이기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긴 게 오늘이 더 기쁘다. 중국선수들도 언제든지 사람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 준비 잘하면 좋은 경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중국에게 유일하게 2매치를 따낸 국가다. 한국 탁구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

▶(주세혁 감독)한국탁구가 언제나 홈경기에서 잘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 홈경기에서 강한 이점이 있다. 국민적인 관심도 있고 경기장에서 기도 살려주시고 한국 팬들이 응원해주신 게 가장 큰힘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단합이 잘돼서 그 기운이 선수들에게 와서 2매치를 따고 좋은 경기를 했다.

- 이상수 선수는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딴 후 동메달을 7회 연속 땄다. 선후배와도 따고 아내 박영숙 선수와도 땄다. 결승진출 못해 아쉬움 없는지 최고참으로 자기관리법, 올림픽 목표는?

▶처음 나갔던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 따고 계속 동메달 땄다. 계속 아깝게 지는 것같아서 아쉽고 한이 남아 있지만 동메달들도 값진 동메달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4년만에 세계선수권 단체전에 나왔는데 아내가 혼자 독박육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아내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오래 할 수 없었을 것같다. 힘들 때 두 아이(아들 은우, 딸 채아)의 영상을 보며 기운을 냈다. 얼마나 더 탁구할지 모르지만 제가 하고 있는 건 변할 게 없다. 제가 할 일, 체력적인 면 기술적인 면을 잘 준비하다보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파리올림픽 5달 남았다.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성과 기대하는지.

▶(주세혁 감독)오늘 경기 이후로 세계선수권 멤버는 해산한다. 6월18일 이후 올림픽에 나갈 3명의 선수가 결정된다. 현재로선 후보선수 전체를 함께 성장시켜야 한다. 누가 3명 안에 들어갈지 모른다. 복식 조합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을 못땄기 때문에 파리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는 것이 내 마지막 임무다. 단체전은 복식이 있기 때문에 복식에 훈련 비중을 많이 둬야할 것같다.

▶(이상수)올림픽 엔트리는 6월 18일 이후 결정된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모두가 좋은 동료이자 경쟁자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실력을 높이다보면 누가 나가도 메달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쟁하면서 실력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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