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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설계'에 대한 심판,코치,기록원,기자의 토론

김남형 기자

입력 2012-02-14 14:26

수정 2012-02-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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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설계'에 대한 심판,코치,기록원,기자의 토론
이같은 열정적인 응원의 손길이 한순간에 비난의 주먹질로 바뀔 수도 있다. 프로야구가 불법 베팅사이트와 관련된 의혹에 휩싸였다. 스포츠조선 DB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프로배구 관련 승부조작 브로커가 야구와 농구를 언급했다는 설이 흘러나왔을 뿐,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승부조작 의혹과 관련해 "솔직히 지금으로선 어떤 정보도, 말할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만약 프로야구 승부조작이 가능하다면, 대체 어떤 형태로 이뤄질까. 야구란 종목의 특성상 승패조작은 쉽지 않다. 대신 '게임 설계'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불법 베팅사이트 운영자들이 별별 게임을 다 만들어낸다는 얘기도 있다.

이참에 지난해 야구계 관계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승부조작에 대한 토론을 소개한다. 프로축구에서 한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야구쪽에서도 루머가 있긴 했다. 기자가 현역 KBO 심판원, KBO 기록원과 부산의 한 식당에서 나눴던 얘기, 현역 코치와 서울의 순대국밥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눴던 대화, 현역 선수와 라커룸에서 잠시 언급했던 내용 3가지를 재구성했다. 14일 오전 관계자들과 통화한 내용도 뒷부분에 포함됐다.

▶(기자) 승부조작 때문에 떠들썩하다. 프로야구는 괜찮은가. 프로야구의 경우 만약 승부조작 사건이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이 여타 종목에 비해 몇 배 클것 같다.

▶(A코치) 그런 소문, 나도 들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야구는 승패 조작이 어려운 경기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선발투수를 매수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선발투수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부진하면 벤치에서 감독이 놔두겠는가. 지도자들은 선발투수가 이상하게 던지면 눈치챌 수 있다. 투수를 바꿔버릴 것이다. 결국엔 승패 조작을 하려면 한팀 투수 전체나 혹은 심판까지 포섭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기자) 이런 루머가 돌면 어쩔 수 없이 심판부도 의혹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KBO 심판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B심판) 축구에서 문제가 된 선수들이 돈을 어느 정도 받았을까. 대부분 수백만원 수준이라고 들었다. 개인마다 만족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프로야구 1군 심판원은 연봉을 꽤 받는다.

▶(기자) 300만원도 있고 500만원도 있고, 브로커 역할까지 겸했던 선수는 1000만원 이상이었다고 한다. 얼핏 보기엔 '대박'과는 거리가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런 '게임 설계'를 몇시즌 동안 계속해왔다면 결국 '판돈'은 상당히 커질 수 있는 것 아닌가.

▶(C기록원) 흠, 그럴 수도 있겠다. 얼마쯤 될까. 500만원이라 치고 20경기 정도 사기를 치면 1억원이 되는가. 그래도 상식 수준에서 이해 안 된다. 로또처럼 인생 대박도 아닌데 그런 불법적인 일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겠다는 프로야구 심판은 없을 것이다.

▶(기자) 승패 조작은 힘들어도 개별 플레이에 대한 '설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 불법 베팅사이트에선 '1회 첫타자 볼넷 여부', '1회 초구의 스트라이크 여부' 등 잘게 쪼갠 세세한 플레이를 놓고 도박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A코치) 볼넷은 약간 애매할 것 같다. 일부러 볼넷을 주겠다고 외곽으로 던지는데 타자가 쳐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기껏 설계한 게임이 허사가 되는 것 아니겠나.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는 가능도 할 것 같다. 투수가 일부러 공을 빼거나 심판이 한가운데 직구를 일부러 안 잡아주거나 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B심판) 만약에 누군가 포섭됐다면 그리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요즘 전경기를 중계해주고 세세한 부분까지 화면에 잡히는데 엉뚱한 판정을 하기란 어렵다. 눈에 띄는 오심이 잦아지면 그 자체로 심판은 내부 징계를 받게 된다.

▶(기자) 조금 황당하지만 이런 루머까지 있다. 불법 사이트에서 야구 경기를 놓고 실시간 베팅까지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정 항목으로 베팅이 많이 이뤄지면 야구장 중앙지정석에 있는 브로커가 마운드에 있는 포섭된 투수에게 손짓으로 사인을 낸다는 것이다.

▶(A코치) 그 정도로?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겠다. 현장에서 뛰는 코치 입장에선 가능성이 적은 얘기다. 예를 들면, 요즘은 사인 훔치기 문제 때문에 선수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런 것까지 상대방이 체크한다. 투수가 벤치나 현장 전력분석원도 아닌 엉뚱한 쪽을 자꾸 쳐다본다고? 그게 가능할까. 그랬다가는 당장 사인 훔치기 문제부터 제기될텐데.

▶(C기록원) 불법 베팅사이트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와 달리 희한한 게임을 많이 만들어서 회원들을 유혹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합법 토토에서는 없는 게임을 만들고 도박성이 강한 요소를 만들어놓아야 사람들을 끌테니까. 분명히 거기에 야구도 대상종목으로 들어있다고 하니 그런 게임을 하는 이용자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게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연루된 선수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100%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D선수) 솔직히 말하면, 선수들중 누군가가 브로커로부터 그런 유혹을 받을 개연성은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라면 혹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단 선수들 사이에 '누가 누가 불법 베팅과 관련된 그런 일을 하는 것 같더라' 하는 정도의 소문을 듣지는 못했다.

▶(기자) 구체적인 선수 이름은 없지만 이런 루머는 한번 나오면 생명력이 길다. 프로야구는 인기가 높지만 그만큼 타깃이 될 가능성도 높다. 같은 음주운전 사건이 발생해도 야구선수일 때 더 큰 화제로 부각되지 않는가.

▶(A코치) 이런 문제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죄의식 없이 달려든 선수가 실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가 확인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기자) 여러 루트를 통해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다양한 게임이 '설계'돼 불법 사이트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양팀중 어느 쪽에서 먼저 볼넷이 나올까. 하루 4경기 가운데 가장 먼저 볼넷이 나오는 쪽은, 한경기를 4회와 7회로 끊어서 점수차 맞히기 등등이다. 프로농구에서도 첫 반칙을 누가 하느냐, 첫 3점슛은 누가 넣나, 특정 기준치를 두고 양팀 스코어 합계의 언더-오버 맞히기 등이다. 평소 3점슛 쏠 일이 없던 선수가 갑자기 난사해서 넣으면 당연히 배당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강남의 사우나에선 조폭들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불법 사이트를 관리한다는 얘기도 있다.

▶(E심판) 이참에 조사해봐야하지 않을까. 만약 연루된 선수가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다. 혹은 조사해서 문제가 없이 깨끗하다면 오히려 프로야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후기

설마 하면서도 100%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축구나 배구 역시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야구단 프런트는 대부분 전훈캠프에 가있는 선수들이 동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때는 상대적으로 잠잠했다가 왜 이제서야 프로야구 얘기가 흘러나오는 지 궁금하다는 관계자도 있었다.

중요한 건 현장 관계자들이 인정하듯, 실제 연루된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뒷말이 남지 않도록 반드시 털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으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역전극'이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혹시 이 게임도?' 하는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 불법 베팅사이트 연관설이 사실로 드러나면 빠른 처벌이 필요할 것이라고 야구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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