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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우 기자의 제철 미식기행=준치회>

김형우 기자

입력 2017-05-08 12:26

<김형우 기자의 제철 미식기행=준치회>
준치회 무침

송홧가루가 날리는 철이다. 도시에서는 세워둔 차에 노란 가루가 내려 앉아 천덕꾸러기 신세라지만 해송이 밀집한 전남 신안 등지의 염전에서는 송홧가루가 또 다른 대접을 받는다. 천일염전에 송홧가루가 날려 와 쌓이는 열흘 남짓 사이 몸에 좋다는 명품 송화소금을 만들기 때문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이 무렵은 우리의 서남해안으로 미식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시즌이다. 만물이 활착하는 시기로, 음식의 간을 내는 맛난 송화소금부터 다양한 식재료가 넘쳐난다. 특히 산란철을 맞은 광어, 도미, 갑오징어, 준치 등 다양한 어족이 몰려들어 제철미식거리에 당당히 제 이름을 올려놓는다.

그중 5월 준치는 예로부터 별미 중 으뜸으로 꼽혀왔다. 본래 보리 벨 때가 준치 철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수온 상승 등으로 그 철이 약간 앞당겨 졌으니 지금이 제철이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도 준치를 시어(時漁), 한글로 '준치'라고 적고 있다. 준치의 출몰 시기가 항상 음력 4, 5월로 정해져 있기에 '시(時)'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준치는 청어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이다. 성어의 몸길이가 50㎝ 남짓으로 제법 큰데, 몸이 길쭉 납작하고 배는 은백색이다.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는 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슨 뜻일까. 납작 길쭉한 준치는 본래 잔가시가 많다. 때문에 맛은 있으되 먹기가 까다로운 생선이다. 하지만 바로 이 잔가시가 '몸짱' 준치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비결에 다름없다. 준치는 먹기야 불편 하지만 이 잔가시 덕분에 선도를 잃어도 팽팽한 모습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신안, 목포 등 산지에서는 준치를 주로 회무침으로 먹는다. 바로 회를 친 싱싱한 준치를 맛깔스런 초고추장, 야채 등과 버무려 접시에 수북이 담아 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목포에서 준치회를 잘한다고 소문난 선경횟집에서는 매실식초로 풍미를 낸다. 이를 통해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가 하면 준치 특유의 비린내까지 잡는다. 여기에 사과를 갈아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소주 등을 추가해 무침 소스도 만든다.

준치 살은 무척 부드럽다. 광어나, 숭어 등의 쫄깃함과는 달리 슬슬 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더불어 미나리, 오이, 양파 등 함께 버무린 야채는 아삭한 봄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포를 뜨고 남은 뼈로 끓인 매운탕 국물도 구수하고 시원하니 준치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릴 게 없다.

특히 준치회는 안주로도 좋지만 갓 지은 따끈한 쌀밥과도 곧잘 어울린다. 밥 따로 회 따로 노는 불협화가 없어 쓱쓱 비벼먹는 게 일품이다.

준치회는 모양이 좀 다르다. 일반 횟감처럼 납작하게 포를 뜨지 않고 길게 채를 썬다. 전어회와 비슷한데, 잔가시 때문이다. 요령껏 가시를 피해 포를 뜬다 해도 워낙 연한 살 속에 가시가 많이 박혀 있어 조금의 질감은 남는다. 이 또한 준치회 특유의 미각이다.

준치는 예나 지금이나 미식가들 사이 별미로 통했다. 조선 최고의 미식가로 꼽히는 허균은 전라도 함열 귀양살이 중에도 '준치'를 들먹였다고 한다.

"이 지방에 준치가 많이 난다고들 해서 여기로 유배 오기를 바랐는데, 금년 봄에는 나지 않으니 운수가 사납다."

목포 미식가들은 "여수서 '서대회' 하듯, 목포서는 '준치회'가 으뜸"이라며 오뉴월 목포의 최고 별미거리가 준치회라고 자랑한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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