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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떠억, 메밀~무욱"...맛과 추억을 파는 소리

입력 2017-01-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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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떠억, 메밀~무욱"...맛과 추억을 파는 소리
[촬영 류효림]

“메밀~무욱...찹쌀~떠억...망개~떠억”
맞춤법에 어긋나는 이 글자만 봐도 상인의 구성진 목소리가 생각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추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랠 무렵, 창가 너머로 찹쌀떡과 메밀묵을 파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녁을 먹은 지 좀 지난 터라 슬슬 배가 고파질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 소리의 리듬은 더욱 반갑고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입니다. 하나 사서 맛을 본 찹쌀떡이나 메밀묵의 맛은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가게에서 사 먹는 맛과 비교하면 뭔가 다릅니다.


급속히 현대화된 주택가에 편의점이나 마트는 물론 온갖 배달 업체, 다양한 먹거리 업소들이 즐비해지고, 주거형태로는 아파트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이 소리는 점점 듣기 어려워졌습니다.

찹쌀떡과 메밀묵, 망개떡을 파는 상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맛을 사기보다는 추억을 사려는 손님들'이 꾸준히 있는 덕택일 겁니다.
추억의 간식, 그리고 한 상인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 맛을 되새기거나 혹은 상상하며 저를 한번 쫓아오시죠.


먼저 찹쌀떡이나 망개떡이 만들어지는 곳을 찾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떡공장으로 갔습니다. 공장 안에 둘러앉은 아주머니들은 연신 떡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 특유의 주제인 이웃 이야기, 가족 이야기, 교육 이야기 등을 끊임없이 이어갑니다. 하지만 일하는 손 역시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망갯닢으로 떡을 감싸고 있습니다. 오후 5시 전후로 상인들이 떡을 받으러 오기 때문입니다.



신림동 떡공장의 심재완(53) 대표에 따르면 외식업계 불황으로 이 업종도 떡을 받아가는 상인들이 줄어들어 현재는 20여 명 정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한참을 기다려 떡을 받으러 온 한 상인을 만났습니다. '떡장수' 남성현(42) 씨. 남 씨의 원래 직업은 배우입니다. 20년 가까이 극단생활을 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조연이나 단역배우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떡을 받아들고 장승배기, 여의도 때로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찹쌀떡과 망개떡을 팔고 있습니다. 메밀묵은 유통기한이 짧아 요즘엔 거의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새 준비를 끝낸 남 씨는, “출발하시죠.”라고 말하며 저를 인도합니다.




그의 판매 복장은 개량한복입니다. “떡이나 먹거리 파는 분들이 교련복 입은 모습을 많이 봤는데요?"라는 질문에 "교련복을 입어본 적도 있지만, 불쾌감을 표시하는 손님들이 좀 있어 3년 전부터 한복을 입기 시작했어요. 한복은 거부감도 거의 없고, 품이 넉넉해 겨울철 따뜻한 옷을 껴입기도 편하죠.”라고 말합니다.
남씨가 먼저 찾은 곳은 해 저문 여의도 식당가입니다. 업소마다 직장인들의 술자리로 북적입니다. 가게마다 남 씨는 찹쌀떡과 망개떡을 들고 찾아갑니다. 떡을 구매한 손님들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아무래도 5-60대 구매자가 많습니다. 떡을 사면서 추억도 함께 사는 듯한 표정입니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 씨를 놓치기에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내 “망개~떠억”이나 “찹쌀~떠억”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식당마다 일일이 손님을 찾아 밝은 얼굴로 대화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남 씨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가득합니다. 배우라는 직업 덕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건지...

여의도를 한 바퀴 돈 남 씨는 버스를 타고 장승배기역 인근의 주택가로 향합니다. 오후 7시께에 시작된 행상은 자정까지 이어집니다. 골목골목 울려 퍼지는 "찹쌀~떠억, 망개~떠억“ 소리에 호기심이 생긴 행인들은 따라 외쳐보기도 합니다. 한쪽에선 소리에 놀란 동네 강아지가 짖어대기도 하고요.



잠시 휴식을 취하던 남 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봅니다. 남씨가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는 도보와 대중교통을 합쳐 10km 정도라고 합니다.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일이 좋아 대중교통은 지하철보다는 버스만 이용합니다. 피곤할 터인데도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남 씨의 어깨가 처지지 않는 것을 보고 '떡장수의 가방에는 떡만 있는 것이 아닐 거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 씨와 동행을 마치며 구매한 떡을 주머니에 넣고 저도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골식당으로 가봅니다. 떡은 순식간에 지인들의 입안으로 사라집니다. 질문만이 남습니다. "어디서 샀어?"가 첫 질문입니다. 어디서 샀을까요?
늦은 밤 익숙한 소리가 들려올 때 잠옷 차림에 얼른 외투만 하나 걸치고 나가보면 알게 될 겁니다. 찹쌀떡이나 망개떡은 그렇게 사서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떡만 사서 먹는 게 아닌 기분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ryousanta@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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