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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세계유산 '동구릉'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김형우 기자

입력 2011-08-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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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세계유산 '동구릉'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경릉 정자각

<문화재 활용 기행>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한 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하늘은 높고 푸르다.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 지난여름 자칫 여기 된 심사를 가라앉힐 만한 여정으로 어떤 곳이 좋을까.

서울 근교 조선 왕릉을 추천한다. 그중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경기도 구리시 소재 '동구릉(東九陵)'은 '서을 도심 인근에 이처럼 광활한 자연-문화공간이 존재하고 있을까'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천혜의 휴식 공간이다. 런던의 하이드파크나, 뉴욕의 센트럴파크와는 비교 할 수 없는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몸과 마음의 찌든 때를 절로 씻어 주는가 하면, 청신한 향기 가득한 숲길을 거닐며 역사를 반추하는 시간은 여느 여행길에서는 맛볼 수 없는 품위를 느끼게 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온 가족이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의 터전, 조선 왕릉으로 떠나는 나들이는 근사한 '문화재 활용기행'의 전형이 된다. 동구릉(구리)=글·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처서도 지나고 추석이 코앞이다. 9월의 초입, 여행하기 좋은 때가 왔다. 하지만 막상 어디로 떠난다는 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가뜩이나 수도권에서의 주말 나들이란 행락차량의 대열에서 '기차놀이'를 하기 십상이다. 좀더 가깝고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오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면 흡족한 여정을 꾸릴 수 있겠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사적 제193호)'은 도심 속 나들이 코스로 빼어난 접근성에 역사문화기행까지 겸할 수 있어 좋다.

이곳은 조선을 세운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의 현릉, 21대 영조의 원릉 등 9개의 능이 모여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 동쪽 9개의 능'이란 뜻이다. 능이 새로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 등으로 부르던 것을 철종 6년(1855) 수릉(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효명세자<문조>와 신정왕후 조씨의 능)을 모신 후 제 이름을 얻었다.

조선 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특히 600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동구릉은 조선 초부터 후기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어 지난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쾌적한 나들이 공간에서 조선의 역사를 만난다

왕릉의 매력은 역사-문화 공간인 동시에 계절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선 왕릉 군락인 동구릉이 그중 백미다. 면적이 면적 191만 5891㎡(55만 3616평)으로 광활한 숲이며, 능(陵)에서 능으로 이어진 숲길의 곡선미가 특히 아름답다.

우선 동구릉 주차장-매표소를 지나면 커다란 홍살문이 나온다. 왕릉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시설로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의미다. 아홉 능마다 별도의 홍살문이 설치돼 있다.

동구릉 탐방은 오른쪽 방면 동선을 택하는 게 수월하다. 시계 바늘 진행의 반대 방향으로 돌며 수릉~현릉~건원릉~목릉~휘릉~원릉~경릉~혜릉~숭릉을 차례로 들르는 여정이다. 이들 왕릉 가운데 숭릉은 야생조수보호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왕릉은 크게 진입 공간(금천교~홍살문 앞), 제향 공간(홍살문~정자각, 비각), 능침 공간(석물, 능침<봉분>, 곡장)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내방객은 '진입~제향 공간'을 관람하게 된다.

첫 번째 탐방코스인 수릉으로 향한다.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에는 나들이객들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은 개울에서는 아이들 서넛이 물장구를 치며 늦더위 쫓기에 한창이다. 계류 주변은 다양한 수서생물도 살고 있어 생태적 경관요소 또한 갖췄다. 특히 능 주변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어 걸음을 뗄 때 마다 '서울 인근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싶은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조선 왕릉의 공간철학에는 신비감이 배어 있다. 능 지척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은밀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풍수의 기본으로 흔히 옛 마을의 배치와도 흡사하다. 큰 길 밖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제서야 왕릉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홍살문이 나타나는 식이다. 반면 능침이 들어선 사초지 위에 올라서면 좌청룡 우백호에 전방이 탁 트인 숲과 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왕릉을 구성하는 대표적 건축물은 정자각(丁字閣)이다. 왕릉 제례의 공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丁'자 모양이라 해서 정자각으로 부른다.

왕릉 나들이의 묘미는 잠들어 있는 주인공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뒷얘기도 한 몫을 한다. 특히 조선 왕릉은 불과 600년 미만의 가까운 과거사를 담고 있어 역사드라마 속의 실존 인물을 대하는 듯 더 실감이 난다.

수릉은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효명세자(훗날 문조로 추존)와 신정왕후 조씨를 합장한 능이다. 문조는 세자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해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며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때 문조로 추존됐다. 일찍이 홀로된 신정왕후는 철종에 이어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으로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하는 등 83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수릉을 돌아 나서면 현릉이 기다린다. 조선 5대 문종의 능으로 현덕왕후도 지척에 함께 모셔 두었다. 현릉은 문무인석이 잘 보존돼 있는데 석물의 과장된 표정이 익살스럽다.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가 잠든 목릉은 동구릉에서도 가장 넓다. 선조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자각을 중심으로 계비의 능은 오른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하고 있어 봉분 3기를 나란히 모셔 놓은 경릉과는 대조적이다. 목릉으로 진입하는 길옆으로는 소나무와 서어나무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정취를 더한다.

아홉 임금의 능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잠들어 있는 건원릉(健元陵). 동구릉의 안쪽에 자리한 왕릉은 높은 사초지와 억새 봉분이 대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 대신 억새를 심었다. 실록에 따르면 태종이 아버지 고향인 함경도 영흥에서 자라는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 초가을 산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 갖은 풍파를 뚫고 나라를 세운 무장의 기개를 엿보는 듯하다.

동구릉의 능침 주변 석물들은 비슷한 듯 다르다. 문무인상, 석양, 석호의 모양이 당대 조각가의 손끝에 조금씩 달리 표현되기 마련이다. 수릉과 현릉의 석양은 통통한데 반해 건원릉의 석양은 늘씬한 편이다. 석호의 모습과 표정도 제각각에 봉분을 빙 둘러싼 병풍석의 모양새도 각기 다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대하 역사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한 영조와 정순왕후. 그들이 잠들어 있는 '원릉'도 빼놓을 수 없는 탐방 코스다. 원릉에는 세 개의 비가 있으며, 비각도 다른 능에 비해 크다. 곡장(능을 둘러싼 담장) 뒤에 서서 전방을 응시하자면 과연 동구릉이 조선 최고의 명당임을 실감케 된다. 좌청룡 우백호에, 왕이 머물렀다는 왕숙천이 흐르고, 검단산이 시야에 펼쳐진다. 풍수의 기본이 잘 갖춰진 지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 40기 중, 9기가 동구릉에 자리한 가장 큰 이유 또한 이곳이 풍수지리상 명당이기 때문이다.

동구릉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 중 하나가 경릉이다. 조선 왕릉 유일의 3연릉으로, 봉분 3기를 한꺼번에 모셔 놓았다.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의 능으로 원비 효헌왕후, 계비 효정왕후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쉬운 표현으로 남편과 첫째-둘째 부인을 다정하게 함께 모셔 놓은 셈이다. 조선왕실의 전통 의례를 떠나 요즘 사람들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모양새이기도 하다.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를 모신 숭릉은 출입제한지역. 정자각이 조선왕릉 중 유일한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으로, 마침 능 주변 조경물에 대한 보수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숭릉 아래쪽 철새도래지 연못 또한 제한구역이다. 허가를 받고 들어 가봤더니 우거진 갈대 습지가 자연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렇게 왕릉만 연결해 동구릉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린다. 혹자들은 1~2시간 운운 하는데, 음미하며 다니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산책길 중간의 양묘장과 자생식물 감상, 자연학습장까지 둘러보며 다리쉼을 하자면 하루 나들이코스로 적당하다.

마침 월차를 내 동구릉을 찾게 됐다는 바리스타 이영진씨(여·31)는 "올여름 여행을 떠나려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평소 들르고 싶던 동구릉을 찾았다"면서 "역사 속 주인공을 만나는 기분도 든 데다 서울 근교에 이처럼 좋은 명소가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여행메모

▶가는 길=◇자동차(서울~내부순환도로~북부간선도로~구리시 방향 우회전 300m직진 유턴~500m 직진 좌회전~동구릉 주차장

◇전철(중앙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 2번, 6번이용) ◇버스(청량리서 88번, 202번, 강변역 1번, 1-1번, 92번)

▶관람 팁=◇이용 시간: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일. 화~일요일(하절기 오전 6시~오후 6시 30분, 동절기 오전 6시 30분~오후 5시 30분), 입장료 어린이 500 원, 어른 1000 원. (문의: 031-563-2909)

▶동구릉 관람 동선=매표소~재실~수릉~현릉~건원릉~목릉~휘릉~원릉~경릉~혜릉~숭릉(관람 제한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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