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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K리그를 수놓는 '포항 DNA', 그 실체를 찾아서

윤진만 기자

입력 2024-04-15 15:32

수정 2024-04-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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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K리그를 수놓는 '포항 DNA', 그 실체…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깜짝 선두 비결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에는 '포항 DNA'라고 하는 것이 있다. 감독이 바뀌고 주전급 8명이 빠져나간 큰 폭의 변화와 객관적 전력, 박태하 포항 감독의 족집게 전술만으론 포항의 돌풍을 온전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럴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포항은 포항이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포항 선수들 입에서도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대체 '포항 DNA'가 대체 뭐길래 포항을 7라운드 선두로 이끈 걸까? 다른 구단과 차별점을 뭘까?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현역 선수뿐 아니라 은퇴한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항 유스 출신인 베테랑 신광훈(37·포항)은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박태하 감독이 포항 코치를 지낼 때부터 19년 동안 포항에서 파리아스 감독, 황선홍 감독, 최진철 감독, 최순호 감독, 김기동 감독 시절을 모두 경험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포항 특유의 응집력만큼은 변함이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다양한 팀에서 뛰어봤는데, 포항에는 분명 포항만의 분위기가 있다. 감독님들께서 고참을 배려해주고, 고참이 중간에 있는 선수들을 끌고 간다. 중고참 할 것 없이 선수들끼리 단합이 잘 된다"고 말했다. 신광훈은 2006년 포항에서 프로데뷔해 전북, 서울, 강원 등을 거쳐 2021년 스틸야드로 돌아왔다. 포항에서만 246경기를 뛰었다.

2013년 포항의 리그 우승 멤버인 김원일(38) OFL 대표는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 있다. 모나고 튀는 행동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분위기상 훈련장에서 기행을 할 수 없다. 명문화된 규율이 있는 건 아니다. 선배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자연스레 후배들이나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따라가는 거다. 개성이 넘치는 선수들도 자연스레 팀 안으로 들여오려고 한다. 포철공고 출신이 아닌 내가 2010년 입단했을 때 한 40명 중 15명이 포철중-포철공고 선후배 동기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선수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했다. 포철중, 포철공고에서 프로팀과 결이 비슷한 소위 '포항 축구'를 익혀오기 때문에 신인들이 빠르게 팀에 녹아들 수 있다.

김 대표는 "포항은 '우리는 포항'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하다. 과거 포철 출신 코치님은 선수들에게 '포항이 그냥 만들어진 줄 아느냐. 선배들은 너네처럼 이렇게 대충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했다"고 일화를 들려줬다. '대충하지 않았던 선배' 중에는 '레전드' 박태하 현 포항 감독도 있다. 김 대표는 "박태하 감독님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무래도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광훈은 "볼 보이를 하다가 몇 개월만에 프로 선배들과 같이 뛰게 됐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지금은 포항의 젊은 선수들이 신광훈을 보며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을 터다. 이달 말 국군체육부대(김천 상무) 체육특기생으로 입대하는 포항 수비수 박찬용(28)은 "포항에 와서 팀 분위기가 이상하단 걸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늘 똑같은 분위기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고 했다.

'포항부심'(포항 자부심)에 단합심, 독기,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송라 클럽하우스의 독특한 환경가 합쳐지면 '포항 DNA'가 얼추 완성된다. 포항은 13일 서울과 '하나은행 K리그1 2024' 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 1분 손승범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뒤 하프라인 부근에 모였다. '우리가 지고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흥분해서 무너지면 그때 지는거다'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날 포항은 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4대2로 승리했다. 올 시즌 후반 추가시간에만 4골을 기록 중인 윙어 정재희(30)는 "올 시즌 포항은 누가 투입되도 어느정도의 경기력이 나온다"고 했다. 포항 선수들은 "박태하 감독의 축구는 재밌다. 믿고 따라가다보니 질 것 같지 않다. 곳곳에서 위닝 멘털리티를 느낀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광훈은 이호재(24) 정재희 등 조커들이 맹활약하는 이유가 선수 개개인이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덕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광훈은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포항 선수들이 너무 저평가됐다. 매번 '포항 위기다, 하위스플릿에 갈 거다'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우리 선수들 능력이 좋다. 지난시즌을 보라. 제카 고영준 하창래 그랜트 등이 좋은 활약을 펼쳐 좋은 대우를 받으며 떠났다"고 말했다. 박찬용은 "개인적으론 과소평가되는 게 기분이 좋다. '내가 한번 보여줄게'라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2013년 이후 11년만에 리그 우승을 노리는 포항의 DNA를 이루는 '마지막 퍼즐'이다.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시절에 공부한 전술적 아이디어를 팀에 접목해 포항을 더욱 단단한 팀으로 만들었다. 박찬용은 "감독님은 인간적이고 솔직 담백하다. 다가가기 편한 분이지만, 운동 태도에 대해선 엄격하다"고 말했다. 신광훈은 "마음이 맞는 선수와는 인사이드 패스 훈련만 해도 즐겁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우리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고 경기를 뛰는 게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초반 포항의 선전을 모두 선수 공으로 돌린다. 포항을 진정한 우승 후보로 뽑기 위해선 조금 더 검증이 필요해 보이지만, 분명한 건 포항이 당장 흔들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포항은 오는 20일, '포항은 영원히 강하다'라고 적힌 걸개 앞에서 김천 상무를 상대로 3연승을 노린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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