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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 후]A매치 뒤흔들었던 그때 그 소녀들

김가을 기자

입력 2018-12-3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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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뒤흔들었던 그때 그 소녀들


지난 9월, 대한민국 축구에 봄 바람이 불어왔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최강' 독일을 꺾고,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식었던 축구 열기가 불타 올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던 코스타리카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A매치 4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오픈 트레이닝데이에도 수 백명의 팬이 찾아와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여성팬, 특히 소녀팬의 급증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월드컵 등 큰 대회가 끝나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연령층이 확실히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A대표팀이 가는 곳에는 소녀팬들이 늘 함께했다. 유명 아이돌그룹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하는 열기였다.

사실 이들이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 결정적 계기였다. 지난 9월 칠레전에서 만난 이주희양(16)은 "손흥민(토트넘)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팬이 됐다"고 말했다. 송서경(15) 문수민양(15) 역시 "러시아월드컵을 보고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김민재(전북)를 좋아한다"고 호호 웃었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높아진 인기, 일각에서는 A대표팀에 쏠린 인기를 '한국 축구의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 역시 "A대표팀 경기를 보던 팬들께서 K리그에도 관심을 보여줄 지는 모를 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대표팀의 인기와 K리그의 관심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소녀팬들의 시선이 조금씩 K리그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벤투호의 2019년 아시안컵 출국 현장인 인천국제공항에는 어김 없이 소녀팬들이 몰렸다. 한국축구를 향한 소녀팬들의 열정이 진화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3개월 전 오직 손흥민 기성용(뉴캐슬) 등 유럽파 선수 일부만 외치던 소녀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K리그 선수들을 줄줄 꿰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김단아양은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시안게임이었다. 그 경기를 통해 손흥민 선수에 관심을 갖고, 토트넘 경기도 봤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K리그 팬이다. 부산을 응원한다. 비록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부산 홈경기는 자주 가지 못한다. 대신 부산이 수도권으로 원정경기를 올 때는 늘 응원을 간다. 구장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다른팀 경기장을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김윤지양(15)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축구를 보게 됐다. 전북 팬이다. 아시안컵에 이 용 김민재 등 전북 선수 일부가 출전하게 돼 응원하러 왔다. 전북 홈경기도 보러 가지만, 이렇게 공항에도 응원하러 온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관심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강민지양(18)은 "부산에 사는데 부산에서 국가대표가 나왔다고 해서 신기했다. 내 의지로 표를 끊어서 경기를 보러 갔다. 학생 할인을 받으니 프리미엄석도 크게 비싸지 않았다. 그 뒤로 계속 경기장을 찾고 있다. 사실 공항에는 혼자 왔는데, 여기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팬을 많이 만났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조해현양(15) 역시 "SNS를 통해 축구팬과 친구가 됐다. 여기 같이 얘기하고 있는 친구들도 다 SNS를 통해 알게 됐다. 서울에 사는 전북 팬을 알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A매치를 붉게 물들였던 그때 그 소녀들. 3개월이 흐른 지금은 A매치를 넘어 K리그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열혈 팬이 됐다. 이른바 선수 '개인 팬'이 축구 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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