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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감독VS선수 프로의 파트너십

전영지 기자

입력 2014-04-23 17:55

수정 2014-04-24 07:59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감독VS선수 프로의 파트너십
◇지난해 12월 성남시민프로축구단의 초대감독 박종환 감독이 자신을 선임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다.(I want work with you)"



'지메시' 지소연(23)이 지난해 12월 일본클럽선수권 현장에서 엠마 헤이스 첼시 레이디스 감독에게 건네받은 쪽지다. 지소연 영입을 희망하며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지 무리뉴 첼시 감독은 인터밀란에서 함께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리생제르맹)에 대해 "사람들이 즐라탄을 '함께 일하기' 어려운 선수라고 하는데, 나는 그말을 이해할 수 없다. 1년간 그의 코치로 일했다. 정말 멋진 한해였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축구 외신 기사에서 '함께 일하다(work with)'라는 표현은 흔하다. 서로를 통해 배우는, 수평적인 관계를 뜻한다. 프로선수와 감독은 '상하관계' '주종관계' '갑을관계'가 아닌 우승,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는 파트너이자 동업자다. 프로선수는 감독을 '보스(boss, 상사)'라고 칭한다. 축구는 그들에게 직업(job)이다. 그라운드는 회사이고, 선수들은 '직장'인 그라운드에 매일 출퇴근한다. 월급쟁이와 마찬가지로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거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연봉이 깎인다. 우수하고 모범적인 사원은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라간다. 회사에서 일을 잘 못했다고, 임원이 사무실에서 사원을 때리는 것은 '넌센스'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꿀밤이었든 귀싸대기였든, 미워서 때렸든, 사랑해서 때렸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동서고금의 상식이다. 지난 22일 선수폭행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박종환 전 성남FC 감독의 "미워서 때렸겠냐"는 항변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물론 빅리그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피끓는 청춘들과 열정적인 축구인들이 몸으로 부대끼는 그라운드에서 주먹다짐은 왕왕 일어난다. 만치니 감독도 맨시티 훈련장에서 발로텔리의 멱살을 잡았고, 최근엔 잉글랜드 리그원(3부리그) 포트베일의 주장 더그 로프트가 팀 동료 대니얼 존스에게 맞아 광대뼈가 파열됐다.

문제는 폭력사태에 대한 인식과 사후 조치에 대한 매뉴얼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여전히 일부 축구인들은 "열받다 보면 손이 올라갈 수도 있다", "라커룸에서 때렸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 "왜 하필 사장 앞에서…"라는 이야기를 사석에서 쉽게 한다. 포트베일 구단은 폭력사태 직후 '가해자'인 수비수 존스를 바로 해고했다. 피해자 로프트에 대한 법적, 의료적 지원을 약속했다. 박종환 감독의 폭행설 직후, 박 감독을 직접 선택한 구단주이자 인권변호사 출신 이재명 성남시장과 신문선 성남사장은 사후 처리를 놓고 전전긍긍했다. 폭력행위에 대한 구단의 매뉴얼, 벌금규정, 양형기준 등과 관련 명확한 원칙, 지침이 없었다. 성남시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구단에서 결정해 구단주에게 보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감독 선임은 단독으로 결정했던 구단주가, '사고' 이후 책임에는 한발을 뺐다. '사장과 감독의 불화설' '음해'라는 말이 흘러나올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 김성준 등 피해선수에 대한 보호책도 없었다. 상대적 약자인 선수가 폭력 사건 이후 겪을 심리적 충격에 대한 배려나 조치도 없었다. 가해자인 감독은 '꿀밤' 등 적극적인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을의 입장이 된 '피해자' 선수들은 자세를 낮췄다. 진실은 은폐됐다. 리그에 나쁜 소문이 돌까, 문제가 확대될까 입을 꾹 다물었다. 전화도 받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은 폭력행위에 대한 매뉴얼을 대폭 강화하고, 적극 개입해야 한다. '심판 판정에 불복하는 감독, 구단 관계자에 대한 '500만원 벌금룰'처럼, 폭력행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도 K-리그 전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참고로 대한체육회는 최근 폭력행위에 대한 선수위원회 규정을 개정했다. 스포츠 인권침해 행위의 경중에 따라 양형을 달리하는 새 기준을 확립했다. 지도자와 선수 모두 극히 경미한 폭력행위의 경우 6개월 미만의 자격정지 또는 경고, 경미한 폭력행위의 경우 6개월 이상 3년 미만 자격정지, 중대한 폭력행위의 경우 3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영구 제명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K-리그의 전구성원이 폭력에 대해 단호하게 '노(No)'하는 분위기, 감독과 선수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나아가는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올시즌 전남 돌풍을 이끌고 있는 하석주 감독은 "선수들의 기를 죽이는 말은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년 서울 원정에서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 적이 있다. 후반전 내내 정신없이 뛰어다니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고 오히려 내가 반성했다. 그런 방법으로는 어린 선수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 했다.

수원 주장 염기훈은 지난 9일 전남전 승리후 '분위기 반전'의 비결로 서정원 감독의 한마디를 언급했다. "정말 이것밖에 안되냐. 너희들에게 실망했다"는 한마디에 선수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감독님의 쓴소리가 크나큰 자극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프로의 파트너십은 진심어린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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