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박지성-퍼거슨 감독, 286일 만에 나눈 '사제의 정'

김진회 기자

입력 2013-02-24 16:36

more
박지성-퍼거슨 감독, 286일 만에 나눈 '사제의 정'
사진캡처=SBSESPN 방송화면

박지성(32)은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72)의 '애제자'였다. 2005년 여름, 퍼거슨 감독이 직접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 소속이던 박지성을 영입했다. 맨유가 지난 7시즌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4회), 리그컵(3회), 유럽챔피언스리그(1회) 등을 우승하는데 박지성의 덕도 톡톡히 봤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성실함과 프로 정신을 높게 샀다. 톰 클레버리 등 젊은 선수들에게 박지성을 롤모델로 삼으라는 추천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시즌 후반 기류가 바뀌었다. 박지성은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역할을 제한했다. 경기를 리드하고 있거나 뒤지고 있을 때 교체 출전시켜 수비적인 역할만 주문했다. 박지성은 버리는 선수로 취급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은 그 동안 퍼거슨 감독에게 출전에 대한 불만을 단 한 번도 표출한 적이 없었다. 불만사항이 생기면 감독을 찾아가 곧바로 드러내는 외국 선수들과 달랐다. 동료들은 벤치만 지키던 박지성에게 '퍼거슨 감독을 찾아가 얘기해보라'고 조언했다. 박지성은 어렵게 감독실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가진 면담에서 퍼거슨 감독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게 몸을 만들고 있으라." 그러나 현실은 퍼거슨 감독의 말과 달랐다.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결단이 필요했다. 아무리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하더라도 괜찮은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 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결국 박지성은 지난 여름 한국까지 찾아와 구애를 펼친 마크 휴즈 감독과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마음을 받아들여 퀸즈파크레인저스(QPR)로 둥지를 옮겼다.

사실 퍼거슨 감독의 청사진에는 더 이상 박지성의 모습은 없었다. 그래서 이적도 허락했다. 그렇지만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오해를 하지 않길 바랐다. 퍼거슨 감독은 떠나는 애제자를 위해 노력했다. 구단의 이익이 되는 이적료를 낮췄다. 박지성이 QPR에서 연봉을 더 받을 수 있게 신경썼다. 퍼거슨 감독은 미안함이 묻은 편지도 보냈다.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것 때문에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성 편지였다. 또 '내 손자는 가장 좋아하던 선수 박지성을 다른 팀으로 보내자 아직도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일화도 소개하며 자신이 겪은 마음고생도 내비치기도 했다.

박지성의 서운함은 맨유를 떠난지 286일 만에 완전히 없어졌다. 24일(한국시각) QPR-맨유전에서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이 악수를 나눴다. 퍼거슨 감독은 QPR의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뒤 맨유 벤치로 향하지 않고 QPR 벤치로 다가가 상대 코치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맨유 벤치로 돌아가기 전 뭔가 잊은 듯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박지성에게 악수를 건넸다. 박지성은 웃음을 지으며 퍼거슨 감독과 악수를 나눴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과 악수를 나눈 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맨유 벤치 쪽으로 향했다. 해리 레드냅 QPR 감독은 무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은 앉아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드냅 감독과 눈을 맞추지 않고 박지성과의 악수에 신경썼다. 박지성은 지난해 11월 25일 맨유전(1대3 패)에서 부상으로 결장한 바 있다. 사제의 악수에서 정(情)을 느낄 수 있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




Copyright sport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