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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호 닮은 조광래호 모험, 열매로 돌아오다

박재호 기자

입력 2011-06-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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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호 닮은 조광래호 모험, 열매로 돌아오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지난해 7월 취임 기자회견. 빠른 패스를 근간으로한 스피디한 축구를 구사하겠다고 했다. 스포츠조선 DB

1492년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사실은 바하마 제도와 쿠바)했지만 이는 완전히 처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서기 1000년경에 북유럽 사람들은 그린란드와 북대서양을 넘어 캐나다까지 진출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서양의 반대쪽에 동양이 있다는 것도 콜롬버스가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 곳에 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모험이었다. 말로 떠드는 것은 기억에 남고 말지만 실천에 옮기면 손에 쥘 수 있다.

콜롬버스의 첫 번째 업적은 두려움을 넘어 옮긴 발걸음이다. 당초 보름간의 항해만 하면 육지를 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망망대해는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선언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이었다. 콜럼버스는 "육지가 나오지 않으면 내 목을 쳐도 좋다"며 선언들을 안심시켰다. 그들은 끝내 뭍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옳다고 믿는 신념에의 확신이다. 콜럼버스가 황금과 향료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났고, 나중에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는 등 굴곡있는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 신대륙은 단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고지순의 가치였던 것은 분명하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을 콜럼버스에 비유한다면 억측일까.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축구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싶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정해성 수석코치 역시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고사했다.

급하게 외국인 감독을 알아봤지만 당장 적임자가 나올 리 만무였다. 많은 이들, 특히 축구협회 수뇌부는 당시 경남을 맡아 승승장구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이 물망에 오르자 처음에는 반대했다. 축구계 야당 출신이고, 낯가림이 있고, 무엇보다 옹고집이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A대표팀 사령탑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에 프로팀에서도 확실한 성과를 낸 조 감독에게 '독이 든 성배'가 오게된 과정이다.

취임 첫날 조 감독은 "스페인같은 패스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A4 용지에 직접 쓴 취임사를 돋보기를 쓴 채 읽어나가는 조 감독의 얼굴엔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반신 반의했다. 아니, 그냥 좋은 얘기만 나열하는 그저 그런 취임사로 여겼다.

나이지리아전 2대1 승리. 2골보다 선수들이 보여준 극단적인 패스 노력이 눈에 띄었다. 이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부침은 있었다. 아시안컵에서 3위에 그쳤다. 일본에 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 감독의 생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박자 빠른 축구에 의한 패스축구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이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하는 축구라고 해서 우리가 못할 거라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개개인은 최고가 아닐 지라도 팀은 최고의 향기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필자가 조 감독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아직도 열의에 차 몇번이고 탁자를 두드리던 조 감독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르비아와 가나전에서 대표팀은 연거푸 2대1로 이겼다. 세르비아와 가나 대표팀에는 주전 선수 2~3명이 빠졌다. 하지만 어느 팀도 A매치 마다 베스트 멤버가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나의 경우는 에시엔(29)이 빠졌다고는 해도 3년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에시엔은 가나 팀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에 온 선수들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들은 가나의 미래다. 또 청소년 대회에서 세계적으로도 실력을 입증한 유망주들이다.

경기 내용만 봐도 이들이 1.5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대표팀 내 기류가 점차 변하고 있다. 지난해 이청용이 말한 '만화 축구'는 사실 조 감독 축구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조 감독에 대한 일종의 푸념이었다. 이청용은 "감독님이 말하는 대로 다 움직이면 만화에나 나오는 축구"라고 했다. 그 '만화 축구', 한국 선수들은 결코 할 수 없었을것 만같았던 축구가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



전통적인 스트라이커는 없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원톱, 좌우에 위치한 선수 등 4명은 언제라도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2선의 미드필더로 자유롭게 침투를 감행한다.

기성용을 투사로 만든 것, 구자철과 지동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은 팀의 근간을 바꿔놓았다.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위해서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변신을 요구했고, 결국 선수도 살고 감독도 살고, 한국축구도 사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앞으로 조 감독 축구는 또 다른 도전들에 직면할 것이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예선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시아 축구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평준화되고 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 역시 남아공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역경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축구가 바른 길, 세계축구와 경쟁력을 놓고 싸울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 차례 더 대서양을 왕복 횡단했지만 결국 그가 원하던 황금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후 세대는 콜럼버스가 닦아 놓은 길로 도전과 응전을 거듭해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의 번영을 만들었다.

조 감독 시대에 한국축구가 큰 성과를 내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의 이 노력들은 한국축구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 축구는 바야흐로 '황금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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