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공연…원작 '라 트라비아타'에 없던 새 스토리를 쓰다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일제강점기의 경성(京城)이 새로운 대중문화의 코드로 인기를 끈 지 오래다. 경성이 영화, 연극, 방송드라마, 뮤지컬을 거쳐 드디어 오페라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서울시오페라단 박혜진 단장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등을 보고 떠올린 '경성' 아이디어를 연출가 이래이가 구체화한 '라 트라비아타·춘희'다. 새로운 스토리의 이 오페라는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춘희'는 베르디 오페라의 토대가 된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제목 '카멜리아 레이디'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동백꽃 여인'이라는 뜻이다.
독일과 한국에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이래이는 경성 배경 위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기생으로 위장한 채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강인한 여성, 연인 알프레도는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 대부호인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유교적 가치관이 확고한 인물로 등장한다. 연극평론가 조만수 교수가 드라마투르그를 맡아 시대 배경과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다.
공연 빈도가 워낙 높은 작품인 만큼, 주목할 만한 '라 트라비아타'의 레지테아터(연출가가 원작의 시대 및 인물 설정을 바꿔놓은 극) 연출만 해도 수십 편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옥과 한복을 등장시킨 '라 트라비아타'가 그 안에 포함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원작과 달라지면 조역들과 출연 무용수의 캐릭터도 달라져야 하며 이 밖에도 아귀를 맞춰야 하는 부분들이 무수히 생겨난다는 점이 문제다.
연출가는 '암살'과 '결투'라는 원작에 없는 설정을 택해 이런 문제들을 영리하게 해결했고, 집시와 투우사가 등장하는 2막의 파티 장면에서는 밀정들의 칼춤과 가면을 쓴 투사들의 춤을 등장시켰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이 비극적 결말에 이른다는 원작의 설정 대신,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부잣집 아들을 유혹하려던 '위장기생'이 계획에 없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들어섰다.
이날 관람 소감을 들려준 초심자 관객들은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들이 무대 위에 펼쳐져 극에 몰입하기 쉬웠다고 했다. 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극이 더 촘촘하고 치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진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광대한 무대를 출연진과 무대 세트로 가득 채우는 데도 성공했고, 한복디자이너 김영석의 의상은 무대에 찬란한 빛을 더했다. 배경이 된 '빠리호텔'의 2층 구조는 합창단과 무용수들의 동선을 더욱 다채롭게 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