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SC칸-인터뷰 종합] "내게 딱 맞는 작품"…봉준호 감독, 기차 타고 돼지 키워 만든 新인생작 `기생충`

조지영 기자

입력 2019-05-23 04:31

수정 2019-05-23 10:04

more
 "내게 딱 맞는 작품"…봉준호 감독, 기차 타고 돼지 키워 만든 新인생…


[칸(프랑스)=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쿨내 가득한 인사가 아니라 심야 상영에 모두가 힘들었잖아요. 무엇보다 배가 많이 고팠어요. 하하."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박사장(이선균)네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그린 가족희비극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22일(이하 현지시각) 오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에서 한국 매체를 상대로 열린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이 '기생충'에 대한 궁금증과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밝혔다.

'기생충'은 매 작품 통념을 깨는 동시에 허를 찌르는 상상력으로 관객들과 언론·평단을 사로잡은, 한국을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09) 이후 10년 만의 한국 컴백작이자 '옥자'(17) 이후 2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중. 지난 21일 공식 상영을 통해 첫 공개된 '기생충'은 이러한 기대를 증명하듯 폭발적인 반응과 호응으로 칸영화제를 사로잡았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잘 살려있으며 한국 사회 현실의 문제를 꿰뚫는 날카로운 메시지 또한 신랄하게 담겨있는 '기생충'. 영화가 시작된 초반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단 1초도 흔들리지 무섭게 몰아쳤다. 관객은 봉준호 감독이 던진 위트에 박장대소했고 또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서는 숨을 죽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손에 땀을 졌고 마지막엔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모두가 '기생충'이 상영되는 내내 웃고 울으며 온전히 영화 속에 매료된 칸의 뜨거운 밤이었다.

실제로 '기생충'은 상영관 불이 켜지기 전부터 1분 여간 박수가 지속됐고 이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진 뒤에는 7분간의 기립 박수로 폭발적인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에 봉준호 감독은 환한 미소와 함께 관객석을 향해 양팔을 들어 올려 손 인사를 하는 등 감사한 마음을 전했고 배우들 역시 박수가 이어진 약 8분여 시간 동안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수가 계속 이어지자 봉준호 감독은 "감사하다. 이제 밤이 늦었으니 집에 가자. 렛츠 고 홈(Let's go home)!"이라는 코멘트로 재치있게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공식 상영이 지나고 이튿날 한국 매체를 만난 봉준호 감독. 그는 전날 있었던 상영 분위기에 대해 "주변에서 문자로 연락을 많이 받았다. 공식 상영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큰 영화제에 와서 반응이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받으려고 한다. 놀랐던 지점은 해외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공식 상영이 끝난 뒤 해외쪽 배급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자기네 이야기라고 하더라. 영국의 한 배급사는 런던으로 고대로 가져가 리메이크를 하고 싶다고 했고 홍콩도 필리핀 가정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런 반응이 꼭 기쁘지만 않았다. 양극화에 관한 문제라서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영화에 대한 이슈나 공감은 즉각적이어서 연출자로서는 만족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은 공식 상영이 끝난 뒤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관객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는 "사실 박수가 계속 이어져서 서로가 다 뻘쭘하기도 했고 그 몇 분을 버티기엔 다들 너무 피곤하지 않았나? 물론 폭포 박수로 샤워를 한 듯한 당시의 순간은 너무 기뻤다. 그런데 1분, 2분이 넘어가면 다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또 때마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더라. 다들 피곤해보였고 그때 나는 진심으로 배가 너무 고팠다. 굳이 억지로 쿨내를 풍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다들 위트로 받아줘서 감사했다"고 웃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놨다. 그는 "'기생충'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13년이다. 이번에는 구상하게 된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 마치 나도 모르게 바지에 얼룩이 묻었는데 그걸 한참 뒤에 알게 된 것과 같은 경우다. 언제 얼룩이 묻은지 모르지만 이미 그 얼룩은 바지에 남아있지 않나? '기생충'이 그랬다. '설국열차' 막바지 '기생충'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때 '옥자'를 막 준비할 때였기도 했는데 두 작품 모두 엄청난 여정이었다. 그래서 '기생충'은 공간이 집약된 걸 하고 싶었던 충동이 있었다. 당시에는 부잣집과 가난한집을 수평적으로 전개했는데 결국 가난한집인 기택(송강호)의 집으로 출발하는 방향으로 전개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에 한국 신작을 선보인 것에 대해서도 "기차('설국열차')와 돼지('옥자')는 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여기고 있다. 후회는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국으로 컴백이라는 개념보다는 전작과 '기생충'은 규모의 차이가 더 컸던 작품인 것 같다. '옥자'와 '기생충'의 차이는 미국이냐? 한국이냐? 또 영어 대사가 있느냐? 한국 대사가 있느냐?라는 것보다 버젯, 규모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옥자가 총 제작비 620억정도 든 작품이었고 옥자의 CG 샷만 300샷이 넘었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 신경써야 했는데 이번엔 '옥자'보다 수월했다. 옥자 CG에 쏟은 에너지를 '기생충' 전반에 좀 더 섬세하게 파고든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예측할 수 없지만 이런 사이즈의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 '기생충' 같은 규모의 영화가 내 몸에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좋고 작품을 손에 넣고 조물거리는 느낌이 좋다"고 덧붙였다.

'기생충'이란 제목에 비하인드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원제는 데칼코마니었다. 아무래도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비하하는 느낌도 부정적인 느낌도 있지 않나? 그래서 제목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일단 관객에게 너무 부정적으로 다가갈까봐 두려움도 있었다. 다른 제목을 짓기 위해 제목을 열어놓기도 했지만 이렇다할 제목이 없었다. 여러가지 사안을 두고 고민했는데 역시 신랄하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살인의 추억' 때도 제목이 엄청 논란이었다. 살인을 추억한다는 어법 자체가 상당히 파문을 일으켰다. 게다가 그 당시 스릴러 영화를 꺼리던 시절인데 제목까지 살인이 나오니까 더욱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로케이션 촬영을 갈 때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 대신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쓰기도 했다. 제목은 한 편의 영화가 2시간여 동안 뿜어낸 작품의 모든 감정과 뉘앙스를 아우르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기생충'을 택하게 됐다"고 자신했다.

올해 칸영화제는 14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칸에서 열리며 개막작으로 짐 자무쉬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가, 마지막 상영작(올해부터 폐막작 대신 마지막 상영작으로 표기)은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더 스페셜스'가 선정됐다. 한국영화 진출작으로는 경쟁 부문에 '기생충', 미드나잇 스크리닝(비경쟁 부문)에 '악인전', 시네파운데이션(학생 경쟁) 부문에 '령희'(연제광 감독), 감독주간에 단편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정다희 감독) 등이 칸영화제를 통해 소개된다.

칸(프랑스)=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