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베테랑'의 1300만 흥행과 '내부자들'의 900만 장기 흥행에는 사회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투영돼 있다. 재벌 총수의 맷값 폭행과 보복 폭행 사건, 재벌 자제들의 마약 사건, 고위 관료의 별장 성접대 사건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하는 영화 속 설정과 에피소드는 관객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환기했다. 영화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결코 허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의가 위태롭다는 방증이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 언론, 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일 개봉을 앞둔 '검사외전'도 권력의 희생양이 된 검사가 사기꾼과 손잡고 살인 누명을 벗는 내용이다. 주인공 반대편에 선 악당은 '검찰' 간부 출신에 '조폭'을 뒷배로 둔 '비리 정치인'이다.
영화에서는 "쪽 팔리게 살지 말자"는 열혈 형사(베테랑)와 "복수극 한편 찍자"는 정치깡패(내부자들)의 활약을 통해 부패한 권력이 무너진다. 관객들은 영화에서나마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에 열광했다.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반격의 주인공이었다는 점도 관객들이 강하게 감정 이입한 이유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대리만족과 분노 해소 이상의 성취는 없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가니법'을 이끌어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재수사도 이뤄졌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부실 수사 논란과 함께 미제로 남을 뻔했지만, 2009년 영화 개봉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검찰은 곧바로 재수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한국으로 송환된 범인은 최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영화 '암살'도 여전히 현재적 과제인 친일파 청산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재야에 묻혀 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가 영화로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다. 하지만 '베테랑'과 '내부자들'의 경우,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