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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칵테일] 죄 없는 자가 그녀에게 돌을 던져라

김형중 기자

입력 2011-11-20 11:17

사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언뜻 봤을 때 글래머러스하고 어려 보이고 그 정도면 예쁘장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한 동호회에 있지만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저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을 뿐이다.



어느 날 그녀가 술자리의 화제에 올랐다. "M양 말이야. 남자 관계가 장난 아니래. 자기도 하고 사귀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남자를 가리지도 않는 데다가 흘리고 다니는 게 여간 아닌가봐. 남자들한테 연락 오면 덥석 만나고, 좀 호감 있으면 막 자고 그러나봐." "어머, 그래? 어쩜 그러고 다니냐."

마침 여자들끼리 있던 술자리라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고, 한순간에 그녀는 동호회에서 가장 문란하고 헤픈 여자가 되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문란하고 헤픈 여자'로 살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십대의 어느 계절, 당시 믿었던 애인의 배신으로 나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매일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을 마셨고, 소개팅, 미팅 가리지 않고 남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무 남자하고나 잤다. 어떤 남자든 상관없었다. 같은 회사 동료부터 헬스클럽에서 만난 남자, 연락만 하고 지냈던 대학 선배, 소개팅해서 만난 남자와 첫날부터 자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내게 호감을 보이고 "네가 좋아"라고 말해주는 남자라면 이 세상 모든 남자와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로웠다,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지구상에 나라는 존재만 오롯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기운일지언정 여자로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예쁘다고 말해주는 귀엣말, 자잘한 스킨십들이 좋았고, 하룻밤일지언정 내 몸을 좋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그날 하루, 외로움을 버티고 잠들 수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조용히 철이 들었다. 그들이 그날 밤 이후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외로움은 몸으로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채우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또 외로운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나와 함께 잤던 남자들, 그리고 문란하고 헤프게 굴던 나에게 화내고 충고하던 지인들도 모두 외롭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자기 자신의 외로움과 대면하게 된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는 진작 소울메이트를 찾아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오늘도 소개팅이나 선을 보러 다니고, 또 누군가는 술을 마시거나 동호회 등에서 취미생활을 영위한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죄랴, 외로움이 죄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헤어지고 난 뒤에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다가 또 금세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아무랑 자고 다니는 여자 혹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을 이겨보려고 그들은 오늘도 '헤픈 여자' '문란한 남자가 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죄 없는 자들만 그들에게 돌을 던지자. 외로워본 적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대고 싶은 적 없는 사람, 나에게 던지는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스킨십에 마음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 누군가에게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들만 그들을 욕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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