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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발언대] '오늘' 이정향 감독 "범죄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김표향 기자

입력 2011-11-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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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정향 감독 "범죄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영화 '오늘'로 9년 만에 복귀한 이정향 감독. 홍찬일기자hongil@sportschosun.com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요."



영화 '오늘'의 이정향 감독. 9년만에 복귀한 소감을 묻자 담백한 웃음이 돌아온다. 지나간 일을 돌이키면 자신의 실수만 자꾸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해보자'는 게 작품을 대하는 이감독의 신조다. 전작 '집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감독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던 영화 '오늘'. 오랜 시간의 숙성을 거쳐 세상에 나왔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을 터였다.

'오늘'은 반성 없는 용서, 강요된 용서의 위선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약혼자를 죽인 소년범을 용서한 다혜(송혜교)는 용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범죄피해자 유가족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섣부른 용서를 후회하고 있었고, 다혜는 자신이 용서한 소년범이 또다시 살인을 했다는 소식에 혼란과 절망에 빠져든다.

이처럼 묵직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감독은 치열한 '고민'과 '고립'의 시간들을 거쳤다. "제 생각과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책을 많이 읽으며 제 오류를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일본 르포나 다큐도 많이 보고, '한국의 연쇄살인'이란 책을 쓴 표창원 교수님의 도움도 받았고요. 나중에는 영화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일본에 가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이감독은 관련 사례들을 공부하면서 살인사건 피해 유가족들의 고통을 알게 됐다. 억울함을 풀 길도 없을뿐더러, 영화 속 다혜처럼 용서를 강요받기도 한다. 그리고 사법제도는 유가족들이 범죄자를 만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유가족보다 범죄자가 보호받는 현실은 영화에도 반영됐다. "마음속에 계속 차오르는 분노를 느끼면서 살다보면 삶이 나날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마음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분노를 주변으로 미뤄놓고 자신만을 위한 오늘을 살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삶이 달라지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목도 '오늘'이라고 지었고요."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주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탓에 영화의 어법이 다소 설교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감독도 "의욕이 앞서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은유나 완곡한 표현이 설득력이 있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과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설교조, 훈계조가 되기도 한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노파심이 생긴 것도 있고요. 하하."

이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은 송혜교의 절제된 연기와 만나 시너지를 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촬영은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마지막 촬영을 하고 쫑파티를 하는데, 내일부터 못 만나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더라고요. 독하고 모질게 해야 작품이 잘 나온다고 하는데 배우들, 스태프들과 갈등도 전혀 없었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감독은 마지막으로 범죄피해자 유가족들을 위한 위로를 잊지 않았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면서, 용서를 안 한 사람을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몰아가기도 하죠. 그런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본다면, '당신의 그 마음이 진짜라고, 당신에겐 용서를 안 할 자격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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