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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쓰러뜨린 스피디한 장신포워드, 왜

류동혁 기자

입력 2011-11-0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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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쓰러뜨린 스피디한 장신포워드, 왜
골리앗들의 첫 만남. 시즌 초반 그들은 라이벌이라기 보다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동부는 삼성을 102대85로 완파했다. KCC도 이겼다. KGC 역시 삼성을 대파했다. 역시 KCC도 이겼다. 동부의 9연승을 저지한 KT 역시 KCC를 25점 차로 완벽하게 이겼다. 삼성 역시 16점차로 완파했다.



앞에 언급한 경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동부와 KGC, 그리고 KT는 스피드와 높이를 겸비한 탄탄한 파워포워드들이 있는 팀이다. 동부는 김주성과 윤호영, KGC는 오세근과 양희종, KT는 송영진 박상오 김도수가 버티고 있다. 이들의 희생양이 된 KCC와 삼성은 최장신 토종센터인 하승진(2m21)과 역대 프로농구 최장신 용병센터 라모스(2m22)를 보유하고 있다.

시즌 초반 스피디한 파워포워드들이 골리앗들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농구는 기본적으로 높이싸움이다. 그런데 시즌 초반 역전현상의 이유가 뭘까. 당연히 의문이 든다.

▶팀승리 요소를 갖추지 못한 높이

사실 골리앗 센터들에게는 딜레마가 많다. 기본적으로 팀이 느려진다. 수비조직력이 좋지 않게 된다. 국내리그에서 많이 쓰는 더블팀에 의한 로테이션 수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공격에서는 장점이 많다. 골밑에서 1대1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팀은 필연적으로 더블팀이 들어온다. 때문에 외곽슛 찬스가 많이 생긴다.

하지만 골리앗 센터들은 팀동료들과 융화되기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팀승리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건은 수비와 조직력이다. 시즌 초반, 높이에 의한 공격의 장점보다 상대팀의 속공과 빈 공간에 의한 오픈찬스를 허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지난 2일 KGC는 KCC를 84대81로 눌렀다. 승부처에서 스크린을 받은 김태술의 미들슛이 연속으로 들어갔다. 하승진의 좁은 수비폭을 공략한 공격방법. 삼성 라모스와 팀동료들은 아직까지도 조화가 어색하다. 반면 김주성 오세근 윤호영 등 스피드를 겸비한 파워포워드들은 공수에서 팀 조직력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실질적인 팀 공헌도 측면에서 이들이 훨씬 낫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골리앗의 시즌 초반이다.

▶완전치 않은 골리앗

하승진은 9경기에서 평균 29분을 소화했다. 시즌 전 완전치 않은 컨디션을 감안하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당초 20~25분 정도를 예상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조금씩 코트에서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라모스는 3일 현재 8경기에서 평균 36분12초를 뛰었다. 대단한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력이다. 하승진은 아직 완전치 않다. 시즌 전 부상여파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컨디션을 올리고 있지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단조로운 공격루트와 여전히 부정확한 자유투 성공률(올 시즌 23개 시도 9개 성공. 39.1%)이 약점이다. KCC는 5승4패(5위). 하승진이 여전히 팀의 핵심이지만, 팀 승리의 원동력은 전태풍을 중심으로 한 공격과 허 재 감독의 조련에 의한 수비 조직력 때문이다. KCC의 올 시즌 가장 큰 강점은 허 감독이 그토록 강조한 거친 수비력이다.

라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성적(평균 18.4득점, 9.9리바운드)는 괜찮은 수치. 그러나 보이지 않는 팀 공헌도는 많이 떨어진다. 좁은 리바운드 영역과 느린 스피드로 상대팀의 속공을 많이 허용한다. 게다가 이승준 이규섭 김동욱 등과 조화로운 팀 플레이는 찾아볼 수 없다. '따로 국밥식' 플레이로 삼성은 2승6패, 9위로 처져 있다.

반면 동부, KT, KGC 등은 나란히 1, 2위에 랭크돼 있다. 이들 세 팀 보다 KCC나 삼성의 객관적인 전력이 처진다고 보긴 힘들다. 물론 동부, KT, KGC 등의 객관적인 전력은 훌륭하다. 그러나 KCC 역시 전태풍이 있고, 삼성 역시 포워드진이 풍부하다.

▶골리앗의 반전

조직력이 여전히 문제다. 그런데 골리앗 센터들이 존재하는 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유가 있다. 최근 4년 간 KCC는 2차례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했다. 높이와 스피드를 명확히 구분하며 경기 플랜을 짰기 때문이다. 하승진이 있을 때는 높이, 그렇지 않을 때는 스피드가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 이런 부분들이 여의치 않게 됐다. 추승균의 노쇠화, 강병현의 군 입대로 '스피드 모드'가 많이 약화됐다. 상대적으로 훌륭한 장신포워드들이 많이 나타난 부분도 있었다. 하승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시즌 초반 불완전한 하승진과 팀의 조화때문에 KCC의 조직력은 항상 좋지 않았다. '슬로 스타터'라는 별칭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겹치면서 하승진의 KCC는 스피드를 겸비한 포워드를 앞세운 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라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빠른 농구를 하겠다"고 말한 삼성 김상준 감독의 계획은 라모스의 등장으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오합지졸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삼성의 현재 경기력은 라모스 체제로 가기 위한 과도기다. 이것은 흡사 '도박'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다. 골리앗 센터를 중심으로 한 팀의 조직력이 완성되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2008년 KCC가 대표적인 예다. 시즌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던 KCC는 9위까지 처졌다. 결국 서장훈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했고, 추승균 강병현 임재현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만들었다. 여기에 부상으로 돌아온 하승진이 팀에 연착륙하면서 결국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골리앗의 매력은 범접할 수 없는 높이다. 아무도 1대1로 막긴 힘들다. 플레이오프 승부처와 같은 사생결단의 시점에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시즌 막바지 팀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올라온 시점. 힘과 힘의 맞대결에서 가장 확실한 득점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장신센터가 있는 팀들은 확실히 힘대결에서 미세한 우위를 보일 수밖에 없다.

KCC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도 하승진 때문이었다. 객관적인 전력 자체가 높아지는 셈이다. 김주성도 오세근도 박상오도 가질 수 없는 메리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규리그에서 극한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LG 오예데지의 조기교체는 아쉽다. 서장훈 문태영과의 조화만 이뤘다면, 플레이오프 우승도 넘볼 수 있는 LG의 객관적인 전력이기 때문이다. 팀 플레이에 능한 애런 헤인즈를 투입, 당장의 효과는 나타날 수 있지만, 우승을 넘볼 수 있는 객관적인 전력 자체는 약화됐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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