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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 만들어주신 분" 본즈의 충격과 슬픔, 스테로이드 전까지는 그랬다[스조산책 MLB]

노재형 기자

입력 2024-06-19 14:28

수정 2024-06-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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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 만들어주신 분" 본즈의 충격과 슬픔, 스테로이드 전까지는 그…
윌리 메이스와 배리 본즈. 사진=배리 본즈 SNS 캡처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 역사상 베이브 루스와 함께 '톱2' 전설로 꼽히는 윌리 메이스가 타계했다.



ESPN은 19일(이하 한국시각)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지고 가장 위대한 중견수로 살아온 윌리 메이스가 향년 93세를 일기로 베이 에이리어(Bay Area)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MLB.com은 '가장 위대한 자이언츠의 전설이자 야구선수인 윌리 메이스가 세상을 떠났다. 이번 주 온 야구계가 그를 추모하며 슬픔에 잠길 것'이라고 애도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의 전신 뉴욕 자이언츠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메이스는 1972년 5월 12일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 메츠로 옮길 때까지 22시즌을 자이언츠의 영웅으로 존재했다. 데뷔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고, 1955년에는 타율 0.345, 41홈런, 110타점을 때려 MVP에 등극했다.

1973년 뉴욕 메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따지면 그는 통산 3187안타와 0.304의 타율, 660홈런과 339도루, 20번의 올스타, 중견수로서 12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기록했다.

1954년 뉴욕 폴로그라운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연출한 '더 캐치(The Catch)' 역대 가장 아름답고 예술적인 외야 수비로 기억되고 있다. 1950년대 메이스는 같은 뉴욕을 연고로 했던 뉴욕 양키스 미키 맨틀, 브루클린 다저스 듀크 스나이더화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견수 3인방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기록이 더욱 빛나는 것은 키 5피트10인티(1m78)의 크지 않은 키에서 온갖 파워와 스피드를 뿜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각인된 그는 자격 첫 해인 1979년 94.7%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메이저리그 역사가들은 메이스를 호타준족을 본격화한 최초의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1922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켄 윌리엄스가 역사상 첫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

메이스는 1956년 36홈런, 40도루를 올리며 개인 첫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이듬해에도 35홈런, 38도루로 2년 연속 해당 기록을 이어갔다. 1969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홈런-300도루를 달성했다. 그는 2021년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별세 이후 생존해 있는 최고령 명예의 전당 회원이기도 했다.

메이스의 죽음에 미국 전역이 슬픔에 잠겼다. 특히 그를 '대부(代父)'로 모셔온 배리 본즈가 자신의 SNS에 심경을 전해 눈길을 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이라 이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당신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대부께 감사드리며 항상 당신과 함께 하겠다. 고히 잠드소서.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본즈는 이 글과 함께 둘이 함께 웃으며 포즈를 취한 사진을 걸었다. 메이스가 추구했던 파워와 스피드의 야구를 본즈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메이스와 본즈의 인연은 그의 부친 바비 본즈를 통해 연결된다. 메이스와 바비는 1968~197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본즈는 어린 시절 캔들스틱파크에 놀러가면 아버지 바비와 함께 늘 메이스를 만났다.

메이스는 은퇴 후 메츠 구단 타격 인스트럭터로 5년을 일하는 동안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의 한 카지노의 특별 고문을 겸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제명을 당한 이력이 있다. 1985년 복권된 메이스는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구단 사장 및 단장 특별보좌역으로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왔다. 그는 이후 자이언츠 구단을 떠난 적이 없다.

본즈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것은 1993년이다. 그리고 온갖 홈런 기록을 깨트린 뒤 2007년 은퇴했다. 본즈가 메이스를 '대부'로 모시고 전성기를 누린 것은 1990년대였다.

2003년 BALCO 사건이 터지고 연방대배심 위증 혐의로 온갖 구설수 올랐을 때 메이스는 적극적인 본즈의 편이었다. 메이스는 본즈 은퇴 후 "그를 명예의 전당에 뽑아달라"고 BBWAA(전미야구기자협회)에 읍소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본즈는 은퇴 후 10년 동안 BBWAA의 명예의 전당 투표서 75%를 넘지 못하고 끝내 자격을 상실했다. 굳이 스테로이드가 없어도 되는 선수였던 본즈가 메이스 입장에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날 메이스의 타계가 또 안타까운 것은 오는 21일 니그로리그를 조명하는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이 릭우드필드에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메이스는 메이저리그 입성 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구장을 홈으로 사용한 버밍햄 블랙바론스에서 1948년 한 시즌을 활약한 바 있다.

메이스는 지난 18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의 인터뷰에서 "꼭 현장에서 경기를 보겠다. 니그로리그 선수들을 추앙하는 여러분들과 블랙바론스 시절 동료들과 함께 할 것이다. 이를 기획해 주신 MLB와 샌프란시스코 구단, 세인트루이스 구단, 그리고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했었다. 생전 마지막 메시지었던 셈.

MLB.com은 '메이스는 그만의 독특한 기술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로 군림했다. 그는 글러브를 허리 높이에 두른 채, 플라이 타구를 낚아채기 위해 바구니로 받아내 듯 안정된 캐치를 했고,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베이스러닝을 했다. 전설 타이 콥은 메이스가 베이스러닝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찬사를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면 높은 톤의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 당시 뉴욕 스포츠기자들은 그를 The Say Hey Kid라고 불렀다'고 기억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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