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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최악의 선발투수야!" 그날 감독이 던진 한마디, 그 투수가 지금 PS 피안타율 1위-ERA 3위

노재형 기자

입력 2023-10-30 00:42

수정 2023-10-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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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최악의 선발투수야!" 그날 감독이 던진 한마디, 그 투수가 지금 P…
메릴 켈리가 29일(한국시각) 월드시리즈 2차전서 7회 투구를 마치고 양팔을 벌려 파이팅을 외치며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USATODAY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메릴 켈리가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각)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역사에 남을 호투를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끌자 그의 이력이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포스트시즌은 켈리의 생애 첫 메이저리그 가을야구다. 당연히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오른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7이닝 동안 24타자를 맞아 3안타 9탈삼진 1실점의 눈부신 피칭을 펼치며 9대1 승리를 이끌었다. 켈리를 앞세운 애리조나는 1차전 역전패의 수모를 하루 만에 되갚아주며 시리즈 전적 1승1패를 만들고 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켈리는 월드시리즈 역사에서 7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면서 볼넷 없이 탈삼진 9개 이상을 올린 5번째 투수다. 앞서 2017년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1차전서(7이닝 11K 1실점),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클리프 리가 뉴욕 양키스와의 1차전서(9이닝 10K 1실점), 2000년 양키스 로저 클레멘스가 뉴욕 메츠와의 2차전서(8이닝 9K 무실점), 1949년 브루클린 다저스 돈 뉴컴이 양키스와의 1차전서(8이닝 11K 1실점) 각각 해당 기록을 작성했다.

현지 매체들은 켈리가 KBO를 거쳐 2019년 애리조나에 입단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는 사실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켈리는 서른을 넘어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은 늦깎이 스타다.

그렇다면 켈리는 메이저리그에 입성하자마자 탄탄대로였을까. 그렇지 않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켈리에게 새 리그였을 뿐만 아니라 벽이 높은 도전의 무대였다. 그는 그해 전반기를 18경기에서 7승8패, 평균자책점 4.03으로 마쳤다. 순로롭게 적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난조가 길어지면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7월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부터 8월 30일 다저스전까지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91로 최악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당시에도 애리조나 사령탑은 현 토리 로불로 감독이었다. 2017년 애리조나 지휘봉을 잡아 3년째 되던 해.

로불로 감독은 이날 월드시리즈 2차전 승리 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려 했던 켈리의 노력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로불러 감독은 당시 켈리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지 않고 상담을 통한 충격 요법으로 심리적 반전을 이루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사연은 이렇다.

그해 8월 중순 켈리의 평균자책점은 5점대에 육박하고 있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6실점 이상 피칭을 4번이나 한 탓이었다. 8월 24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4⅓이닝 동안 8안타와 4볼넷을 허용하고 6실점했다.

로불로 감독은 켈리를 마이너리그로 보내거나 불펜 보직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선수와 먼저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로불러 감독은 SI에 "내가 (선수 문제를)해결하는 방법은 단칼에 잘라버리거나 도움을 끊어버리는 게 아니다. 난 그에게 주의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로불로 감독은 그해 8월 하순 어느 날 켈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내 생각을 얘기하겠다. 네가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않으면 난 문을 열고 널 내보낼 수밖에 없다. 난 지금 경고를 하고 있는 거야(I'm putting you on notice)"라고 전했다.

이어 "기록을 보니 넌 내셔널리그에서 최악의 선발투수야. 하지만 난 널 오랫동안 지키고 싶다. 로테이션에서 너의 자리가 유지되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네가 능력이 있다는 걸 나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격려의 메시지도 건넸다.

그러자 켈리는 "죄송합니다. 말씀대로 그건 모두 사실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군말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켈리는 이후 투구폼을 조정하고 제구력을 가다듬으며 달라지기기 시작했다. 그해 시즌 마지막 5경기에서 켈리는 4승1패, 평균자책점 2.18을 마크했다. 로불로 감독과의 면담이 켈리가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넌 최악의 선발투수"라는 무서운 한 마디가 켈리를 각성시킨 것이다.

로불로 감독은 "그는 순순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때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한다. 내가 먼저 말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켈리가 로불로 감독의 충고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켈리는 이번 포스트시즌서 투구이닝(24) 5위, 다승(3승) 공동 2위, 탈삼진(28) 3위이며, 15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 평균자책점(2.25) 3위, WHIP(0.83) 3위, 피안타율(0.145) 1위에 올라 있다. 포스트시즌 사이영상이 있다면 켈리가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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