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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오지환 백기투항' 이끌어낸 LG의 기다림과 예의, 그리고 '밀당'

정현석 기자

입력 2019-12-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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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백기투항' 이끌어낸 LG의 기다림과 예의, 그리고 '밀당'
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KBO리그 준PO 3차전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LG 선수들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오지환.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9.10.09/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유독 부정적 시선으로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선수가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LG 트윈스 유격수 오지환(29)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병역 특례 이후 소위 '안티'가 늘었다. 이후 악순환이 이어졌다. 기사가 올라오면 부정적 댓글이 도배를 했다. 참다 못한 오지환 측에서는 급기야 '악플러 고소' 경고까지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지환 관련 기사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 오지환에 반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클릭을 하고 부정적 댓글을 달았다. '반응'이 있자 기자들은 앞다퉈 더 많은 '오지환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댓글이 달렸고, 오지환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더 늘었다. 전형적인 악순환 고리였다.

올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많은 준척급 선수 중 공-수를 갖춘 유격수 자원이란 점에서 주목 받았다. 오지환이라 거취에 더 관심이 컸다.

시장은 예년 같지 않았다. 거액과 보상선수가 부담스러운 타 팀 입질이 없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 상 소속팀 LG트윈스가 협상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는 상황.

시장 상황이 꽁꽁 얼어붙은 와중에 오지환 측에서 6년 이상 계약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기사가 쏟아졌고, 부정적 시선은 극에 달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고 여론이 극단적으로 선수에게 불리하게 흘렀지만 정작 협상 당사자인 LG 차명석 단장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해 끝까지 예의를 갖추면서도 단호하고 일관된 스탠스를 유지했다.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그만큼 섭섭치 않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6년 계약은 무리"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전지훈련 답사 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달 7일에는 미국 출국이 예정돼 있었다. 장기전을 예고하는 대목. 오지환 측 입장에서는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행보였다.

결국 오지환 에이전트는 지난 5일 LG 구단을 찾아와 백지위임을 선언했다. 연봉협상이 아닌 FA 협상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례적인 행보였다. '백기투항' 처럼 보이지만 물론 LG가 처음 제시한 조건보다 못한 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니다.

백지위임에 대해 차명석 단장은 "오지환의 의견에 감사하고 구단은 최대한 존중과 예우를 하겠다"고 말했다.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우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먼저 구단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결국 LG는 기다림의 전략을 통해 오지환 잔류를 이끌어냈다.

태권도나 검도, 유도, 씨름 등 1대1 격기는 상대의 틈을 이용해 공격할 때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 마음과 상황을 읽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LG의 협상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 협상은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일방적 우위에 있다고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으며 얻은 승리는 훗날 반드시 화를 부른다. 경기는 승리를 위한 과정이지만 상호존중, 예의 속에 치러져야 한다. 시합이 아닌 '싸움'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지난해 롯데의 '노경은 케이스' 처럼 양측 모두 얻는 게 없는 파국이 온다.

대부분 경우 파국은 대단한 조건 문제가 아니다. 사소한 감정 문제다. 협상 우위를 확보한 LG가 내년 도약의 중심에 서야 할 오지환의 의욕을 미리 꺾어서 좋아질 건 없다. 선수 당사자는 물론, 구단과 팬도 원치 않는 그림이다. 그런 측면에서 차 단장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수에게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결과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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