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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인터뷰] '가족과 생이별' 페르난데스 "쿠바인의 피에 야구가 흐른다"

나유리 기자

입력 2019-02-21 09:33

수정 2019-02-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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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생이별' 페르난데스 "쿠바인의 피에 야구가 흐른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의 새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1)는 쿠바 출신이다.



이제는 국제 대회에서 쿠바 야구 대표팀의 위상이 조금 꺾였지만, 80~90년대 쿠바 아마추어 야구는 세계 최강이었다. 쿠바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야구공을 쥐고, 잡고, 던지고, 치면서 자라난다.

그렇게 성장한 쿠바의 야구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국과의 국교가 단절된 상황에서 쿠바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탈출이 유일한 통로였다.

페르난데스도 그런 선수 중 한명이다. 지난 2014년 한차례 쿠바 탈출을 시도했다가 무산됐던 그는 이듬해 아이티로 망명을 하면서 기어이 미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가 다시 정상화 됐고, 쿠바 정부와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야구 선수들에 대한 문을 활짝 열었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쿠바 출신 선수가 정부의 승인을 받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할 경우,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선수들은 여전히 불법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도착해 LA 다저스와 처음 계약을 맺은 페르난데스는 줄곧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지난해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태어나서 처음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36경기 타율 2할6푼7리(116타수 31안타) 2홈런 11타점. 비록 교체 선수로 얻은 기회였지만, 꿈같던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았다는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었다.

꿈을 이룬 후 페르난데스는 다시 현실을 돌아봤다. 1988년생인 그는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두살이다. 쿠바에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있다.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시급한 일이 있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했다.

메이저리그 3개 구단의 계약 제안을 단호히 뿌리치고 혈혈단신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페르난데스에게 아시아 무대, 그것도 두산에서의 새 출발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그는 이제 '야구의 나라' 쿠바 출신 선수라는 자부심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성공을 위해 달린다. 땀 흘리는 오늘은 자랑스러운 아빠로 돌아갈 내일을 향한 출발이다.

두산의 1차 캠프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구시가와구장에서 페르난데스를 만났다.

-캠프가 시작된 이후 두산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은 선수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무엇이었나.

▶대부분 새로운 팀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나.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시차나 훈련 시간이 달라서 조금 힘들었는데 이제는 잘 적응된 것 같다. 동료들과도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지만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최주환이나 오재원 등 여러 선수들과 장난 치는 모습을 봤다.

▶삐까츄(최주환), 까피탄(캡틴=오재원)이나 김재환, 박세혁 등등 모든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두산 선수들이 적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영어를 전혀 못한다고 들었다. 스페인어만 구사하다보니, 동료들과의 의사 소통도 더 힘들텐데.

▶어떻게 보면 이게 나에게 있어 새로운 배움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마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두산은 과거 유네스키 마야를 통역했던 스페인어 통역 직원을 페르난데스에게 붙였다) 미국에는 히스패닉 선수들이 정말 많아서 스페인어만 써도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현재 캠프에서 1루 수비 훈련을 주로 하고 있다. 가장 자신있는 포지션은?

▶원래 주 포지션은 2루다. 작년부터 팀 사정상 1루수로 출전해야 해서 지금은 1루가 가장 자신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1,2,3루를 다 봤기 때문에 팀이 필요하다면 어느 포지션이든 할 수 있다.

-한국 스프링캠프 스케줄은 힘든 편이다. 적응하기 괜찮나.

▶훈련 시간도 그렇고, 훈련량이 미국보다 많아서 힘들기는 하다. 그러나 딱히 불평을 할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낯선 나라, 낯선 리그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몇년 전부터 아시아에 진출하고 싶은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도전을 택했다. 두산에 오게 돼서 기쁜 마음 뿐이다. KBO리그에 쿠바 출신 선수는 내가 세번째인가?(2010년 한화에서 대체 선수로 뛰었던 프랜시슬리 부에노를 시작으로 마야, 아도니스 가르시아에 이어 네번째다)

-쿠바 출신 선수가 드물기 때문에 더욱 한국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다.

▶이제는 문이 많이 열려서 미국, 일본에 진출한 쿠바 선수가 정말 많아졌다. 쿠바인들에게 야구는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히 하는 거다. 쿠바인의 피에 야구가 섞여있는 것 같다. 나도 쿠바인으로서 한국에서 높은 수준의 야구를 보여주고 싶고,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

-만약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면,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올해도 메이저리그 구단 3곳에서 오퍼가 왔었다. 조건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두산과 계약했고, 이제는 한국에 왔기 때문에 여기서 집중하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물론 모든 야구선수들이 그렇듯이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니까 기회만 된다면 항상 꿈에 도전하고 싶다.

-가족들은 어디서 지내고 있나.

▶쿠바에 아내와 아이 그리고 가족들이 있다.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이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서 야구를 혼자 한다는 게 힘든 일이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나?) 쿠바에 한국 대사관이 없고,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경로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내가 쿠바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쿠바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고 인터넷이 잘되기 때문에 가족들과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고, 영상 통화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야구를 열심히 잘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제 스프링캠프가 끝나면, 서울에 처음 가게 된다. 두산팬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페르난데스라는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저버리지 마세요.(웃음) 항상 응원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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