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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상벌위원회의 허울만 좋은 '엄중경고'

이원만 기자

입력 2018-04-21 11:14

KBO 상벌위원회의 허울만 좋은 '엄중경고'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사인 훔치기 논란'에 관한 상벌위원회가 2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렸다. 최원현 위원장, 홍윤표, 차명석, 전용배, 조종규 위원이 KBO 상벌 내규를 살펴보고 있다. LG의 사인 훔치기 논란은 지난 18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불거졌다. LG 팀 더그아웃에 KIA 투수의 구종별 사인을 적어 붙여둔 것이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에 의해 밝혀졌다. 도곡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8.04.20/

'엄중경고'는 정말로 무거운 징계일까, 그럴 듯 하게만 들리는 빈소리는 아닐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어 지난 18일 광주 KIA전 때 '사인 커닝 페이퍼'를 더그아웃 통로에 부착한 LG 트윈스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했다. 당시 LG는 상대팀의 구종별 사인이 적힌 종이를 더그아웃 옆 통로에 게시했는데, 이게 공개 되면서 '사인 훔치기' 파문이 일어났다. 결국 다음 날 LG 스포츠 신문범 대표이사 명의로 공식 사과문이 나왔고, KBO도 이 건을 상벌위원회에 올렸다.

상벌위원회는 "사안이 무겁고 스포츠정신을 크게 훼손했다"며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KBO 리그 규정 제26조 2항에 명기된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LG 구단에 벌금 2000만원을 부과하고 양상문 단장에게도 책임을 물어 '엄중 경고'했다.

또한 해당 사안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 했지만, 일단 경기장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관리에 책임이 있는 류중일 감독에게도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했다. 한혁수, 유지현 LG 1, 3루 코치에게도 제재금 100만원이 각각 부과됐다. 주루 코치들에게도 벌금이 부과된 이유는 '커닝페이퍼' 작성에 관여했거나 혹은 이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벌금의 총 규모가 3200만원인데다 구단과 단장, 감독 코치 등에게 전부 징계를 내린 것 때문에 KBO 상벌위원회는 이를 '중징계 처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과연 이번 사안의 무게에 비춰볼 때 이 같은 징계 수위를 '무겁다'고 정의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상벌위원회는 이번 일에 대해 '스포츠정신을 훼손'했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기껏 제재금 징계에 그친 것은 난센스다. 프로리그 이전에 스포츠 자체가 갖고 있는 순수성의 가치를 해쳤다고 판단해놓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물질적 대안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건 근본 가치 판단의 문제다. 벌금을 전보다 많이 부과했다고 해서 중징계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벌금보다 해당 인사들에 대한 한시적인 업무 배제 등이 더 향후 재발 방지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중징계가 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징계를 받는 당사자나 이를 지켜보는 업계 관계자들이 '스포츠정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이번 징계 중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엄중 경고'라는 표현이다. 듣기에는 그럴 듯 해도, 사실 아무런 효력이 없는 공염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KBO 벌칙 내규에 '경고'나 혹은 '엄중 경고'라는 항목은 없다. 다시 말해 명문화 된 징계가 아니라 사실상 '정서적 요식 행위'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누적에 따른 페널티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고'와 '엄중경고'에 실질적 차이점이 없고, 이를 여러 차례 받는다고 해서 특별한 추가 징계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를 받는 대상자에게 실질적으로 경고가 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KBO관계자는 "엄중 경고를 받은 사람이 또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가중 처벌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엄중 경고 대상자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대다수 야구인은 "출장 제한이나 벌금이 아닌 '경고'는 그냥 '앞으로 조심하라'는 훈계 정도로 생각하고 넘긴다"고 밝혔다. 전혀 '엄중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엄중 경고'는 굳이 상벌위원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나올 수 있다. 이미 한화 이용규가 심판에 대한 욕설로 퇴장 당한 일에 관해 '엄중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무겁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해서 상벌위원회까지 열었다면 확실하고 실질적인 처분을 내려야 한다. 말뿐인 '엄중 경고'는 상벌위원회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

때문에 확고하고 엄중한 양형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엄중 경고'같은 공허한 단어를 걷어내고, 보다 힘있고 확실한 세부 벌칙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내부 규정'이라고 가리지 말고 아예 대중에 널리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부정 행위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기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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