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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개 완투패', 투수 강화법에 대한 논란

김남형 기자

입력 2011-06-27 13:21

수정 2011-06-27 13:21

'147개 완투패', 투수 강화법에 대한 논란
김광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지난 일주일간 프로야구 최대 이슈는 김광현의 '147개 완투패'였다. 김광현이 23일 KIA전에서 김상현에게 두번째 3점홈런을 허용한 장면이다. 스포츠조선 DB

'232개' 때문에 가끔씩 신문사로 항의전화가 오곤 했다. "아침 신문에 오자 났소. 예끼, 이보슈, 어떻게 한경기에 투수가 200개를 넘게 던지나?" 그럴때면 도저히 못 믿겠다면서 항의하는 독자에게 프로야구 연감을 복사해서 팩스로 보내준 일도 있다.



선동열 삼성 운영위원은 해태에서 뛰던 87년 5월16일 부산 롯데전에서 무려 232개를 던졌다. 프로야구 한경기 최다 투구수로 남아있다. 가끔씩 이같은 기록이 소개될 때, 그 엄청난 수치를 믿기 어려운 나머지 무작정 전화로 항의하는 팬들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선발투수의 적정 투구수란 개념이 보편화됐다. 보통 100개 남짓, 특정 기록이 걸려있을 때도 120개 정도를 넘기면 선발투수는 어깨 보호를 위해 강판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232개라니. 흐릿해진 기억과 함께, 232개라는 숫자는 화를 불러일으킬 만큼 얼토당토 않게 느껴질만 했다.

▶김광현의 147개 완투패

선동열 위원에게 87년에 대해 질문하면 웃음과 함께 "그땐 그런 시절이었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더블헤더때 첫경기를 마무리하고 두번째 경기 선발로 등판하던 시절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지난 일주일간 최대 이슈는 SK 김광현의 '147개 완투패'였다. 23일 광주 KIA전에서 김광현은 2대8로 패하는 경기에서 147개를 던졌다. 홈런 3개를 허용하면서 8실점. 접전도 아니고 불펜 전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선발투수가 흥을 잃은 경기에서 147개를 던지게 했다는 건 극히 드문 사례다. 경기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경우엔 이런 경기에선 승부가 기울었다고 판단될 경우 선발투수를 강판시킨다. 투수도 감정의 동물이다. 또한 미묘한 밸런스 차이로 구위에 큰 변화를 보인다. 어쩌다 연속안타를 허용하면서 패전이 확실시되면, 투수는 어느 순간 집중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막 던질 때가 있다.

그러다 더 많이 맞는다. 지난 17일 삼성 카도쿠라가 광주 KIA전에서 2⅔이닝 11실점으로 무너진 것도 비슷한 이유다. 투구폼이 흐트러지다 보면 부상이 올 수 있고, 다음 경기에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전의를 상실한 선발투수를 적정 시점에 강판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한경기를 김광현에게 투자해 그의 경기력을 회복시키고자 했다는 게 김성근 감독의 설명이다. 자꾸 세게만 던지는 것에 집착하면서 투구폼이 흔들리는 걸 깨닫게 하고, 스스로 힘 빼고 던지면서 밸런스를 잡도록 마운드에 내버려뒀다는 것이다.

▶최적 밸런스의 어려움

김광현의 피칭이 논란이 된 이유중 하나가 바로 '147개'라는 숫자였다. 깨우침의 효과에 앞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수치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김성근 감독이 이튿날 설명했던 '힘 빼고 던져야 한다'는 부분이다.

선동열 위원은 감독 시절 "투수가 자신의 몸에 맞는 최적의 유연한 투구폼으로 밸런스를 갖고 던지면 피로함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200개, 300개도 던질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피칭폼에 밸런스를 해치는 요소가 있을 경우엔 팔이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선 위원은 "사람이다보니, 밸런스가 흐트러져서 어디 한 곳이 아프면, 그걸 피하는 식으로 던지게 되고 결국엔 폼이 망가져서 더 피로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200개를 던져도 괜찮을 만큼 유연한 투구폼을 갖는다는 게 정말 힘들다는 점이다. 현역 시절의 '투수 선동열'은 한 세대에 나올까말까한 '이기적인 투구폼'의 소유자였다. "팔꿈치가 아파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선 위원은 은퇴한 투수들이 흔히 보이는 팔이 굽어있는 현상도 전혀 없다. 선 위원 본인이 밸런스를 강조하는 지도자임에도, 투수들의 투구수를 철저히 지켜줬다. 최적의 밸런스를 갖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아마도 김광현이 밸런스의 중요성을 그 경기에서 깨닫기를 원했을 것이다. 힘 빼고 던진다는 건 선동열 위원이 늘 강조했던 유연한 투구폼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투수 강화법에 대한 이견

'투수 강화법'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방식이 많이 다르다.

지난 2월, 라쿠텐 김병현이 오키나와 전훈캠프에서 이틀 연속 불펜피칭으로 100개 안팎의 공을 던졌다. 스스로도 "이렇게 던졌다면 메이저리그에선 난리 났을 것이다. 대학때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던져봤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만들어놓은 뒤 적절히 투구수를 늘려가면서 구위를 되찾는 방식을 택한다. 투구수를 철저히 관리한다. 미국 투수들 대부분이 워낙 힘이 좋기 때문에, 몸의 밸런스 보다는 상체만으로도 좋은 공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LG의 오키나와 캠프에 참가했던 사사키 가즈히로 인스트럭터는 다른 얘기를 했다. 사사키는 일본과 미국을 평정했던 최고 레벨의 마무리투수 출신. 사사키 인스트럭터는 "투수는 많이 던지는 게 중요하다. 동양인 투수들은 지나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둔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자꾸 던져서, 던지는데 필요한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커브를 잘 던지려면, 일단 자꾸 던져서 커브에 필요한 근육을 만들어놓은 뒤, 그후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주변 근육을 보완해주는 방식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몸의 기억'을 먼저 밑바탕에 깔아야한다는 의미다. 김성근 감독이 말한 '힘 빼고 던진다'는 것도, 결국엔 가장 좋은 밸런스로 던질 때의 '몸의 기억'을 되찾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김광현이 던진 다음날, 타구단에선 "현실에선 투수가 최적의 밸런스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렇게 내버려뒀다가 다칠 수도 있는 문제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쉽게 어느 한 쪽이 맞다고 결론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결국엔 선수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좋은 밸런스를 찾지 못한 채 마냥 투구수만 늘리면 부상 위험이 뒤따른다. 어느 한순간 밸런스를 찾고, 그걸 몸이 기억한다면, 김광현은 다시 에이스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김광현의 컴백 이후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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