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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현장]"침착하게 하나만!" 동생들 깨운 김연경의 마법같은 한마디, 기적의 역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가을 기자

입력 2021-08-04 13:29

수정 2021-08-05 05:37

"침착하게 하나만!" 동생들 깨운 김연경의 마법같은 한마디, 기적의 역전…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8강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가 4일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열렸다. 대표팀 김연경이 5세트 승리를 확정 짓는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누가 우리의 4강을 믿었을까 싶다."



2021년 8월 4일.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전 세계를 향해 기적을 쏘아 올렸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4강 진출 신화. 그 어려운 일은 태극낭자들이 해냈다. 핸드볼 '우생순' 신화의 재현이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4일 일본 도쿄의 아리아케아레나에서 열린 터키와의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2(17-25, 25-17, 28-26, 18-25, 15-13),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9년 만에 4강에 올랐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동메달) 이후 45년 만의 메달도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13위. 터키는 4위였다. 상대전적에서도 2승7패, 열세였다. 지난 6월 치른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도 세트스코어 1대3으로 졌다.

예상대로 되는 듯 했다. 한국은 1세트에 상대의 높이를 공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였다. 한국은 '캡틴'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2세트 들어 더욱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김연경과 김희진은 상대 코트에 스파이크를 꽂아넣었다. 25-17 승, 경기는 원점. 3세트도 듀스 끝에 28-26으로 가져왔다. 4세트를 내줬다. 세트스코어 2-2, 승부는 파이널 세트로 이어졌다.

기세를 올린 터키가 리드를 잡았다. 김연경이 후배들, 아니 동생들을 향해 외쳤다. "침착하게 하나만!" 마법같았다. 추격-동점-역전. 한국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대역전극, '우생순'의 기적을 만들었다. 신들린 듯한 김연경과 동생들의 플레이. 적장 지오바니 귀데티 터키 감독은 고개를 저으며 김연경을 바라봤다.

이제는 4강전이다. 김연경은 "진짜 그 누가 우리의 4강을 생각했을까 싶을 정도다. '원 팀'이 돼 4강에 가게 돼 기쁘다. 배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좋은 배구 보여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터키와 매치업이 결정됐을 때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VNL에서 한 번 해봤던 팀이다. 감독님께서 전술도 잘 짚어주셨다"고 했다.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던 김연경. 2012년 런던에 이어 다시 한 번 메달을 정조준한다. 김연경은 "런던 때는 4강의 의미를 잘 몰랐다. 이번에 더 크게 오는 것 같다. 그때도 열심히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자신있게 준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어제 잠을 잘 못잤다.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눈 뜨니 아침이었다. 10분? 1시간? 잔 것 같다"며 웃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토너먼트.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김연경의 올림픽, 동생들도 간절하다. 염혜선은 "이제 안 울거다. 마지막에 웃을 것"이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박정아 역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언니들과 정말 오래 같이 있었다. 외출과 외박도 없이 3개월을 함께 보냈다. 연경 언니의 마지막 올림픽이다. 잘 해보자는 분위기다. 분위기가 정말 좋다. 앞으로도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박은진도 "4강에 올라간 만큼 메달 욕심이 난다.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연경은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 한점이 중요하다. 간절함이 들어가야 한다. 잘 준비하겠다.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하겠다"고 말했다. 팀을 이끄는 라바리니 감독도 "매일 꿈을 꾸는 것 같다. 매일이 더 기쁘고, 행복하다. 누구도 깨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들의 손에 모든 것이 다 주어져 있다. 가능성을 열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갓'연경과 태극낭자들. 그들 '우생순' 신화의 막이 올랐다.

도쿄(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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