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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형 기자의 현장속으로] WBC 대표팀 귀국 동승기

2009-03-26 10:55

 스포츠조선은 이번 WBC 대표팀이 9일 밤 도쿄에서 미국 애리조나로 이동할 때, 그리고 25일 돌아올 때 전세기에 동승했습니다. 미국행 747 전세기에서의 동승기는 이미 지면을 통해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엔 돌아오는 비행기를 포함해 대표팀의 마지막 20시간을 곁에서 지켜본 소회를 소개해드립니다.

 일단 상황은 미국 시각 기준입니다. 23일 밤 11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에 우승을 내준 뒤 한국 기자들도 모두 탈진한 분위기였습니다. 최고의 성적을 남겼고, 한국 야구의 위대함을 알렸지만, 마지막 순간의 아쉬움은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습니다. 취재진이 이럴진대, 당사자인 선수단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새벽까지 기사를 마감한 뒤 24일 낮 귀국 전세기 동승을 위해 대표팀의 호텔로 찾아갔습니다. 별도 게이트를 이용할 예정이라 동승하는 각사 기자 7명도 호텔부터 함께 출발해야 했던 것이죠.

◇홍드로"수고했어요"
 '시구의 여왕'인 탤런트 홍수아가 25일 인천공항에서 한국야구대표팀 선수들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밝게 웃으며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공항=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무언가 아쉬운 LA의 마지막 모습

 오후 1시. 김인식 감독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호텔 옆문쪽에 선수들이 모여있는 게 눈에 띄어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직 아쉬운 패배의 기억이 남아있어서였을까요. 그냥 서로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란 인사가 오갈 뿐 딱히 무슨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그간 참았던 술자리를 열고 새벽까지 소주로 아쉬움을 달랬다는 코치도 있었습니다.

 샌디에이고부터 그랬는데, 이 호텔에 한국, 일본을 포함해 4강 국가가 모두 묵었습니다. 선수단이 버스에 오르기 직전, 호텔 로비쪽을 보니 일본 선수단이 자국 언론을 위해 공식 기자회견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다르빗슈 유의 얼굴이 보이고, 그 옆에는 오 사다하루 전 대표팀 감독도 서있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기구(NPB) 관계자가 KBO 관계자에게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청하더군요.

 한쪽 벽에선 이용규의 열혈팬이라는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습니다. 이용규와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도무지 만날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표팀 박정근 과장이 "걱정하지 말고, 만나게 해줄테니까 울지 말라"면서 등을 토닥거립니다.

 오후 2시 버스 두대에 나눠 탄 선수단이 출발하자 사이드카 10여대가 호위를 합니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미리 교통을 차단해놓은 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외곽순환도로쯤 될 듯한 프리웨이도 인터체인지마다 아예 차량 흐름을 막아버렸습니다. KBO의 한 관계자가 곁에서 "이게 바로 MLB의 힘인가. 진짜 대단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이상한 곳으로 버스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적한 철망 옆으로 차가 몇분 달리더니 활주로 옆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별도의 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활주로 끝부분에 747 JAL기 두대가 서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대표팀을 태우기 위한 비행기였죠. 1층짜리 간이 출국 심사대를 거쳐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국 직원들이 선수들 여권에 붙어있는 I-94 입출국 카드만 급히 회수할 뿐 별도의 심사나 대단한 보안검색 없이 일사천리로 탑승이 진행됐습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비행기 뜨자 모두 파김치

 오후 3시20분. 747 전세기가 LA 국제공항의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저 밑으로 LA의 도시가 점점 까마득해집니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선수들은 비행기 뒤쪽으로 하나둘 가더니 단복을 벗고 편안한 운동복이나 반바지로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쯤 지나 선수들이 타고 있는 비즈니스석 쪽으로 갔더니 대부분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모습입니다. 피곤이 쌓일대로 쌓였겠지요. 저쪽에 포수 박경완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면 좀 쉬어야할텐데"라고 말하자 박경완은 "무슨, 팀으로 바로 가야지"라며 웃었습니다.

 만약 한국이 우승했다면 이 비행기는 날아가는 파티장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봤습니다. "플레이오프 탈락팀과 한국시리즈 준우승 팀의 기분이 어떻게 다를 지 알것 같다"는 KBO 직원의 말을 흘려들으며 "다음 대표팀 감독을 위해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야"라는 말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국적기가 아니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11시간 정도 날아온 뒤 나리타공항에 내리자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이 면세점에 들를 시간이 30분 정도 주어졌습니다. 소속팀 감독에게 선물할 양주를 고르는 선수,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선수들이 보였는데, 비행기를 타던 시점과 비교하면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한국 도착

 지금부턴 한국시각입니다. 25일 밤 10시40분 정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70일 만에 집에 왔네"라고 했습니다. 우울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선수단은 그러나 환한 얼굴로 맞아주며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공항 직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대표팀이 움직이면 방대한 짐이 함께 따라다닙니다. 여기저기서 KBO 직원들이 짐을 수습하느라 바쁜 모습입니다. 대표팀이 탄 비행기만 도착한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서 한 대가 더 내렸나 봅니다. 몇몇 일반인들이 선수들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든 사진 한장 같이 찍기 위해 분주해집니다. 선수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짐찾는 곳 바로 앞에서 세관 검색대를 지나면 바로 입국장 출입문이죠. "자! 주장 앞으로 나오시고, 일단 문이 열리면 세명 정도씩 같이 나가서 밖에 있는 KBO 직원 안내에 따라 대기합니다. 여러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큰 목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 플래시 불빛 때문에 마치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맨 뒷줄에서 바깥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의 아쉬움 보다는 야구팬들의 즐거움이 훨씬 컸구나' 하고 말입니다.

 <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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