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의 퀵모션이 다르비슈의 퀵모션을 눌렀다. 18일(한국시각) 펫코파크에서 열린 한-일전은 딱 한번의 찬스에서 3점을 낸 한국이 승리했다. 그리고 승리는 이용규의 과감한 발놀림에서 시작됐다. 물론 그 배경에는 양팀 선발투수의 퀵모션 능력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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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초를 훔친 이용규의 재치
1회 선두 이용규가 좌전안타로 출루한 뒤 2번 정근우 타석 초구때 곧바로 2루 도루를 감행해 성공했다. 이용규는 경기전 "다르비슈는 주자가 1루에 있을 때보다 2루에 있을 때 퀵모션이 느려서 2-3루 도루가 오히려 쉽다"고 설명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출루하자 곧바로 2루로 냅다 뛰는 과단성을 보여줬다.
한국대표팀이 작성한 스카우팅리포트에 따르면, 다르비슈는 본래 퀵모션이 빠른 선수가 아니다. 주자 1루시 1.35~1.45초. 주자 2루시 1.40~1.50초 정도. 대체로 1.35초 안쪽으로 들어오면 수준급으로 본다는 게 한국 코치들의 평가라고 보면, 다르비슈는 견제의 달인은 분명 못된다.
게다가 아직 20대 중반인 다르비슈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작용하는 한국전에 난생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다. 따라서 1회 첫 타자에게 곧바로 안타를 맞은 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용규가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다르비슈가 던진 초구는 무려 96마일(154㎞)짜리 직구였다. 포수 조지마 겐지의 송구도 정확했다. 하지만 허를 찌른 스타트로 0.05초를 미리 훔친 이용규는 간발의 차이로 2루 베이스에 손이 먼저 닿았다.
도루로 무사 2루가 되자 다르비슈는 흔들렸다. 제 폼을 찾지 못했고, 특기인 슬라이더는 잘 꺾이지 않으며 3점을 내줬다.
▶견제의 달인, 닌자를 막다
반면 한국 선발 봉중근은 이날 퀵모션의 정수를 보여줬다. 본래 봉중근은 국내 제일의 퀵모션으로 유명하다. 봉중근은 빠른 주자가 나가면 퀵모션이 1.20초 정도 걸리고, 어지간한 주자들일 경우 1.30초를 끊는다.
이날 봉중근은 5회까지 매번 주자를 내보냈다. 하지만 일본측에선 왼손 봉중근의 퀵모션에 말려 특유의 기동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3회와 4회에 각 한차례씩 병살타가 나왔는데, 이 역시 봉중근이 타사 상대 이전에 주자와의 리드폭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입장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5회에 등장했다. 2사 상황에서 1루 주자는 이치로. 세타석 연속 내야 땅볼에 그친 이치로는 어떻게든 도루를 시도해보기 위해 1루에서 왔다갔다 했다. 마치 닌자가 목표물을 노리듯 납작 자세를 낮추고 매섭게 눈치를 봤다.
그때였다. 봉중근이 마치 왼주먹으로 꿀밤 주는 듯한 시늉을 하며 견제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이치로는 화들짝 놀라 1루에 슬라이딩으로 돌아갔다. 공은 던지지도 않았다. 이치로 역시 봉중근이 견제의 달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겁이 났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초중반까지 한국이 리드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퀵모션 싸움에서 봉중근이 우위를 점한 덕분이다. 한국 최고의 퀵모션이 일본, 나아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발을 잡았다.
< 샌디에이고(미국 캘리포니아주)=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