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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매거진] 남자복서 추락 원인 '5가지'

2007-07-30 09:25

휘청거리는 복싱
텅빈 링…주먹이 운다
 
1. KBC, 팬 이벤트없이 '팔짱만'
2. 선수배제 프로모터-매니저 중심 시스템
3. 종합격투기 무차별 공세에 속수무책
4. 높아진 소득수준…유망주 사라져
5. 걸출한 수퍼스타 없어 경기장 '썰렁'

 한국 유일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었던 지인진이 챔피언 벨트를 자진 반납하고 격투기 K-1 무대로 떠났다.

 충격이다. 1970~80년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은 국민들을 울고 웃겼던 '국가적 영웅'이었다. 한데 '지인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복싱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챔피언 벨트는 '영광의 상징'이 아니라 땀과 눈물만을 요구한 채 생활고를 겪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잘 나가던 복싱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피땀으로 딴 세계챔피언 벨트까지 미련없이 풀어던지는 이 기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복싱의 전반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자복싱은 7명의 무더기 세계챔피언을 배출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벼랑끝으로 내몰린 한국 프로복싱을 집중 조명해 봤다.

 

 1980년대 한국 프로복싱은 황금시대였다. 본고장 미국에 이어 세계 복싱시장의 2위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홍수환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등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세계챔피언을 탄생시키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프로복싱은 몰락했다. 전 세계챔프 최용수를 시작으로 '주먹왕'들이 생활고 때문에 종합격투기 K-1으로 전향하기에 이르렀다. 복싱이 몰락한 이유는 뭘까.

 

 ▶변화없는 한국권투위원회

 복싱이 몰락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KBC(한국권투위원회)는 팬들을 위한 변변한 이벤트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복싱의 몰락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는데 KBC는 잇단 프로모터들의 비리를 팔짱을 낀 채 지켜봤고, 여자프로복싱의 선수바꿔치기 사건 등 사고만 일으켰다. 프로복싱을 부흥시켜야 할 KBC가 오히려 인기하락의 원인이 됐다.

 

 ▶비리로 얼룩진 시스템

 프로복싱계에선 선수와 프로모터 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문성길 변정일 등 전 세계챔피언들은 프로모터와 법적소송까지 갔다. 선수 중심이 아닌 프로모터와 매니저 중심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국내의 유력한 한 프로모터는 "마음만 먹으면 선수 한 명 죽이고 살리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복서들은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K-1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용수는 한때 먹고 살기 위해서 트럭 운전을 하기도 했고, 한국의 마지막 세계챔피언이었던 지인진은 "세계타이틀 매치를 치르면서 연간 92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고 충격고백을 하기도 했다.

 

 ▶종합격투기의 공격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화끈한 스포츠를 원한다. 또 이벤트를 곁들인 스포테인먼트 종목을 선호한다.

 종합격투기는 이런 현상을 잘 파악하고 있다. 야수와 같은 파이터, 요염한 미녀, 화려한 조명 등 스포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며 빠르게 격투기 팬들을 흡수하고 있다. 반면 한국 프로복싱은 이런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당연히 종합격투기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유망주들

 '헝그리 복서'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한국에서 금지옥엽 같은 자식을 복싱계에 입문시키려는 부모는 흔치 않다. 복싱계의 한 지도자는 "솔직히 지금 시대에 어떤 부모가 복싱을 시키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당연히 선수층은 엷어지고, 유망주들은 보이지 않는다. 80년대 복싱 강국이었던 한국이 최근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잇따라 노메달의 수모를 겪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당연히 복싱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수퍼스타의 부재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이 1977년 파나마의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하며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한 말이다. 영웅이 된 홍수환의 이 말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1980년대엔 '장정구 파마'가 유행한 적이 있다. 15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장정구가 유행시킨 헤어스타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라이벌 유명우까지 등장해 '장정구와 유명우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는 주제를 둘러싼 논쟁이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걸출한 수퍼스타들의 등장은 복싱의 인기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얼마 전까지 지인진이 세계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팬들도 많다. <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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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복싱 세계챔피언

선 수

타이틀 보유기간

복싱기구

체  급

김기수

1966~1968년

WBA

주니어 미들급 

홍수환

1974~1976년

WBA

밴텀급

1977~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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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페더급

유제두

1975~1976년

W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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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균

1976~1977년

WBC

수퍼 밴텀급

김성준

1978~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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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플라이급

김상현

1979~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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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라이트급

박찬희

1979~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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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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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1981~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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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플라이급

김환진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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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플라이급

장정구

1983~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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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도

1983~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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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밴텀급

권순천

1983~1985년

IBF

플라이급

오만근

1984~1985년

IBF

페더급

서성인

1984~1985년

IBF

주니어 페더급

유환길

1984~1985년

IBF

주니어 라이트급

박종팔

1984~1988년

IBF

수퍼 미들급

1987~1988년

WBA

수퍼 미들급

김지원

1985~1986년

IBF

주니어 페더급

정기영

1985~1986년

IBF

페더급

유명우

1985~1991년

WBA

주니어 플라이급

1992~1993년

정종관

1985~1986년

IBF

플라이급

정비원

1986년

IBF

플라이급

신희섭

1986~1987년

IBF

플라이급

최점환

1986~1988년

IBF

주니어 플라이급

1989~1990년

WBC

스트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