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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슈분석] 사상 첫 '올림픽 노골드' 태권도 종주국, 성공적 세계화의 빛에 가려진 '근본상실' 그림자

이원만 기자

입력 2021-07-28 16:16

수정 2021-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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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첫 '올림픽 노골드' 태권도 종주국, 성공적 세계화의 빛에 가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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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올림픽 사상 첫 '노 골드'의 초라한 결과 앞에서 '태권도 종주국'의 명예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나마 종목 마지막 날, 이다빈(서울시청)과 인교돈(한국가스공사)이 투혼을 보여준 덕분에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태권도를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여겼던 국민들은 뜻밖의 성적에 아연실색하는 동시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나'를 궁금해 한다. 한국 태권도는 왜 경쟁력을 잃은 것일까.



▶경쟁력 잃은 태권도, 21년 만의 '올림픽 노골드'

2020 도쿄올림픽에 한국 태권도는 총 6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세계랭킹 1위로 자타공인 '태권 황제'인 남자 68㎏급 이대훈(대전시청)과 남자 58급 장 준(한국체대), 남자 80㎏ 초과급 인교돈, 여자 48㎏급 심재영(춘천시청) 여자 57㎏ 이아름(고양시청), 여자 64㎏ 초과급 이다빈이 '금 사냥'에 나섰다. 당초 목표는 금메달 최소 2개 이상이었다. 이대훈과 장 준이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였다. 나머지 선수들도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메달 경쟁력을 지녔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초라했다. 이대훈은 16강 첫 판 패배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이어 힘겹게 오른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지며 '노 골드' 아닌 '노 메달'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마쳤다. 심재영과 아름은 각각 8강과 16강 탈락. 그나마 이다빈이 은메달, 인교돈과 장 준이 각각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태권도는 '은 1, 동2'의 성적으로 도쿄올림픽을 끝냈다.

한국 태권도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사상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 부끄러운 성적이다. 다른 나라가 우러러보던 '한국 태권도'의 경쟁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처럼 한국 태권도가 도쿄올림픽에서 몰락한 직접적인 이유로 지적되는 것은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경기력의 하락이다. 겨루기 종목의 특성상 지속적인 실전 감각 유지와 상대 선수에 대한 데이터 업데이트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따라 국제 무대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선수촌에서 국내 선수들끼리 반복하는 훈련과 겨루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 걸린 남녀 8개의 메달 중 5개를 유럽 선수들이 쓸어갔다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한다. 유럽 선수들은 코로나19에 아랑곳없이 계속 대회에 출전해왔다. 결국 국내에 고립된 한국 선수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서서히 경쟁력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가 '노 골드'로 이어진 셈이다.

▶한국은 무너졌지만, '태권도'는 성공했다?

'올림픽 첫 노 골드' 충격으로 현재 국내 태권도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선수들을 응원하던 국민들의 실망감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특히 전자 호구장비에 의존해 포인트 획득 위주로 치러지는 경기 스타일 자체에 대한 실망감도 크다.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저게 과연 우리가 아는 태권도인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사실상 '초상집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국내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해외에서는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태권도에 대한 긍정론이 커지고 있다. 그간 세계태권도연맹(WT)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 해 온 '태권도 세계화' 및 '올림픽 스포츠화'가 상당히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유력매체인 뉴욕 타임즈는 지난 26일, '태권도가 선수단 규모가 적은 나라들의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61개국 및 난민 대표팀 선수 3명이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다. 5회째의 짧은 역사를 지닌 종목이지만, 놀라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주목한 건 태권도의 '보급 용이성'과 '보급률'이다. 비싼 장비나 넓은 장소가 필요없고, 호신술로서 인기가 높다는 것. 경제력이 높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보급 또한 쉽기 때문에 전 세계에 빠르게 보급돼 전략 종목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 매체는 특히 '태권도는 K팝에 앞서 한국이 수출한 가장 성공적인 문화상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에는 210개국 및 난민 대표가 회원국으로 등록돼 있다. 유엔 회원국(193개국)이나 IOC 회원국(205개국)보다도 많다. '태권도 세계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다.

▶다시 커지는 '근본론', 태권도는 '발펜싱'이 아니다

태권도의 이러한 성공적인 세계화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가 있다. 오래 전부터 제기돼 온 '태권도의 근본'에 관한 논쟁이다.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태권도가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포인트 획득 경쟁'에만 매몰되다 보니 종목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층 개량된 전자 호구 및 경기복이 도입돼 보다 더 정확한 포인트 입력이 가능해졌다. 또한 '회전'이라는 개념이 추가돼 보다 강력한 공격이 나오면 추가점이 부여되게 설정했다. 하지만 이런 장비의 개선이 오히려 경기의 흥미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발등과 바닥의 센서 부분이 호구에 닿으면 포인트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전의 강력하고 공격적인 발차기 대신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다 '발 터치'를 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발펜싱'이나 '앞발권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팬들은 '노잼 경기'라고 원색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발바닥 센서 제거'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이전에 예비 기술 정도로 사용되던 커트(앞발 밀기)가 오히려 점수를 쉽게 따내기 위한 주요 기술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인 출신 전문가들은 발바닥 센서를 제거하면 앞발 밀기 위주의 단조로운 경기가 사라지고 이전처럼 화려하고 공격적인 발기술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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