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났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네이버의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이버 자체 조사와 징계에도 불구하고 내부 직원 반발은 확산, 최고 경영진을 더욱 옥죄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한성숙 대표가 직접 사과에 나섰지만, 갈등의 불씨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묵살한 경영진을 상대로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안을 다루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 IT기업인 동시에 최고의 직장으로 꼽혀왔던 네이버의 민낯이다.
▶회사 차원 사건 조사 결과 발표, 노조 '꼬리 자르기' 비판
지난 5월 25일 오후 네이버의 팀장급 한 직원이 경기 성남 분당구에 위치한 자신의 주거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네이버는 사고 발생 한달 만인 지난 6월 25일 자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최인혁 COO는 직원 사망 사건과 관련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고 조사와 관계없이 COO와 등기이사, 광고 부문 사업부인 비즈 CIC(사내독립기업) 대표 등 네이버에서 맡은 모든 직책에서 사의를 표했고, 이사회는 이를 수용했다. 최 COO는 네이버 조사 결과 경고 처분 대상자였다. 사고 관련 당사자로 지목된 A는 해임, 다른 직원 B와 C는 각각 감봉과 경고 처분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이사회 산하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일부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있었고 건전한 조직문화 조성에 대한 리더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확인됐다"며 "대상자들에게는 확인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각각의 징계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사측의 징계 수위를 두고 즉각 반발했다. '솜방망이 처벌', '꼬리자르기 식 문제 해결'이라며 맞섰다. 노조는 회사 자체 조사 결과 공개 3일 뒤인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 COO가 네이버 관련 직책을 내려놓았지만 계열사인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등 다른 법인의 직책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준 리스크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분노와 실망을 느끼고, 직원을 죽음으로 몬 사건에 대한 징계결과가 이정도 수준에 그친 것은 향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CCO와 함께 감봉처분을 받은 B에 대한 해임도 요구했다.
특히 노조는 보고서를 통해 사건 발생 원인으로 과도했던 업무 및 상급자의 인력 통제와 불분명하고 부당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 임원의 절대적인 인사권,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한 경영진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노조는 직장 내 괴롭힘 재발방지를 위해 노사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 운영, 조직장에게 과도하게 몰려있는 권한 축소 등을 제안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회 등 단체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책 마련 요구' 정치권으로 확대
노사 갈등이 지속되자 이해진 GIO는 지난달 30일 이메일을 통해 직접 사과했다. 앞서 한성숙 대표의 사과에도 불구, 확대되는 직원 반발을 진화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셈이다. 이 GIO는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회사 문화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제 부족함과 잘못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가장 큰 책임은 이 회사를 창업한 저와 경영진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회사 안에서 괴롭힘이 발생했고 그것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면 이것은 회사 전체적인 문화의 문제"라며 "한두 사람의 징계 수위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경영쇄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 GIO가 직접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단순 사과가 아닌 최 COO 해임이라는 행동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게 이유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를 위한 노조 요구 수용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네이버는 향후 경영쇄신방안 마련 과정에 노조 참여는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관계자는 "경영쇄신안 관련 로드맵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연말 전까지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쇄신안 마련에 노조의 직접 참여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인사로 문제가 해결될 사안이 아닌 만큼 추가 인사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노사간 갈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의 노사 갈등이 확대됨에 따라 정치권도 사안의 심각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해진 GIO, 한성숙 대표가 올해 국감 증인에 채택될 수 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사내 구조와 작동하지 않은 신고 시스템, 6년간 눈감아준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지적했다. 고인을 비롯한 동료들이 2년 전인 2019년 1월부터 수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를 호소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이를 조치할 의무가 있는 네이버 경영진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의원은 "책임져야 할 경영진은 정작 조사 한번 받지 않은 채, 관련 직책만 내려놓고 다른 계열사 수장직은 유지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로 이번 사건 외에도 이전에 발생한 유사 사건에 대한 전수조사 등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정감사에서 철저히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