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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한탄강에 간 119 구조대원들

2009-01-22 12:29


 여름이면 물놀이로 들끓는 강원도 철원 한탄강. 인적이 끊긴 한겨울 한탄강은 또 다른 풍경을 담고 있다. 실팍하게 얼어붙은 강줄기, 주위 야산과 얼음판에 흩뿌려진 눈…. 귓불을 떼어갈 듯한 칼바람이 잠시 잦아든 한탄강이 요 며칠 시끌벅적하다. 설 대목도 잊은 119구조대원들의 수중 특수훈련이 한창이다. 남들 놀 때 더 바쁘고 고달픈 이들이기에 '명절 훈련'이라고 별다른 감흥이 있을 것도 없다. 2주 과정의 훈련 참가자는 30명. 전국 소방서에서 선발된 정예요원들이다. 기본 잠수훈련을 마스터하고, 진해 해양의료원의 잠수적성검사까지 통과해야만 이 훈련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무나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특수훈련이다. 얼음물에 빠져 실종된 사람을 수색하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수중훈련으로, 소방방재청 중앙 119구조대가 주관하고 있다. 특히 저체온증과 동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면서 실종자를 찾아내는 기술을 익히는 게 훈련의 주된 목적이다.
영하도 녹이는 열정 한탄강 얼음을 깨고 수중 실종자 수색 훈련을 하고 있는 119구조대원들. 대원들 뒤로 한탄대교가 보인다. <철원=송정헌 기자 scblog.chosun.com/heoniya>
 훈련장은 한탄대교에서 하류 쪽으로 200m쯤 떨어진 수심이 깊고(5~7m)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정했다. 가장 흥미로운 시설은 강 한가운데 뚫어 놓은 얼음 구멍들. 수중 수색훈련을 위해 두께가 38㎝나 되는 얼음판에 삼각형과 사각형 구멍을 총 12개나 뚫었다.

 외형적인 훈련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가로 4m, 세로 3m 크기의 사각형 얼음 구멍으로 잠수한 뒤 그 구멍을 중심으로 사방에 10m 거리를 두고 파놓은 삼각형 구멍을 오가면 된다.

 하지만, 그 구멍을 오가는 사이 물속에선 갖가지 훈련이 이뤄진다. 크게 '비상대처훈련'과 '방향유지훈련'이다. 비상대처훈련은 실종자 수색 도중 잠수 장비가 고장 나거나 장애물에 걸렸을 때 물속에서 장비를 해체해 위기를 벗어나는 훈련이고, 방향유지훈련은 부유물이 시야를 가려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을 때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되잡는 훈련이다.

 빙점 아래로 뚝 떨어진 날씨 탓에 뚫어놓은 구멍에 금세 살얼음이 덮인다. 교관들이 연방 뜰채로 얼음을 걷어내지만 돌아서면 또 얼음이 깔린다.

 1시간에 가까운 피티체조로 몸을 충분하게 푼 구조대원들이 25㎏에 달하는 잠수 장비를 갖추고 두 명씩 얼음물 속으로 뛰어든다. 혹한 속에서 얼음 지붕 아래로 하는 잠수이기에 잠깐의 방심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그래서 대원들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교관들의 고함이 끊이질 않는다.

 산소통을 메고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어 입수 명령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입술이 새파랗다. 추워서도 그렇지만 팽팽한 긴장감 또한 표정을 경직시킨다. 구조대원의 상당수가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라 깡다구와 담력은 대단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긴장감마저 떨치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새 산소통과 입을 연결하는 호흡기가 얼어붙는다. 수중에서 입에 문 호흡기가 파열되면 구조대원은 폐가 팽창하는 잠수병에 걸리거나 얼굴에 심각한 동상을 입을 수가 있다. 교관들과 구조대원들의 긴장감이 한층 커진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른 구조요원이 강가에 설치된 본부 막사로 득달같이 달려가 뜨거운 물을 퍼온다. 입수 대기자들이 번갈아 호흡기를 뜨거운 물에 담가 녹이고 나서 재차 잠수 채비를 갖춘다.

 "입수!"

 교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한 조를 이룬 두 명의 대원과 수중 훈련을 담당하는 교관 1명이 곧장 얼음장 밑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수면으로 떠오른다. 어찌나 추운지 물 밖으로 나온 대원들의 잠수복이 쩍쩍 얼어붙어 움직일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바람이 멎어준 게 그나마 다행이다.

 특전사 출신의 충주소방대 정회주 소방사(32)는 극심한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차가운 물속에서 장시간 교육받는 게 참 힘듭니다. 군 생활 할 때도 혹한기 잠수 경험이 있지만, 침투와 구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이번 교육이 새롭습니다. 얼마 전 자살하려고 충주 중산저수지 빙판 위로 차를 몰고 들어간 65세 여성 구조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미숙한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교육으로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마산소방대의 정현철 소방교(38)는 "남쪽 지방에서 올라와 강추위 속에서 훈련하다 보니 많이 강해진 것 같다. 실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의 목숨 구하려고 내 목숨 내건 119구조대원들.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날리고, 시신이라도 건져 올리려고 한겨울 저수지 바닥을 훑어대는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이야말로 빛과 소금에 다름 아니다. 구경꾼 하나 없는 썰렁한 겨울 한탄강. 그 얼음판 위에서 뜨겁게 청춘을 사르는 119구조대원들의 기민한 몸짓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 철원=최재성 기자 scblog.chosun.com/kk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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