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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영혼 르포] (42) 면담은 인연

2007-04-23 12:53

영혼의 세계엔 시간이 없다
 
 차길진 법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의 법당 면담 시에는 한꺼번에 70~80명이 대기한다. 노약자, 병자, 원거리 거주자 순으로 그날 면담이 진행된다. 법당을 찾는 사연도 가지가지다.

 A씨는 어머님이 매우 위급한 상태라 찾았다. 모진 고생을 한 어머니였기에 기적을 바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법당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순번을 정해보니 본인 보다 더 급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알고 깜짝 놀랐다. 1개월 남은 암환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간경화 환자, 뇌졸중 환자….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법당에 직접 나왔다.

 B씨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무슨 고민인지 알고 보니 그는 2번 자살을 시도했었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차 법사를 만나 하직을 고하러 온 사람이었다.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B씨는 경주마처럼 달려온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졌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도 저렇게 살겠다고 애원하고 죽어가는 부모를 위해 저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사지가 멀쩡한 자기가 죽겠다고 하다니.

 면담 신청자들은 이렇게 대기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문제를 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차 법사를 만나고 구명시식을 청한다. 만약 신청 전화 선착순으로 정한다면 지금부터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국내외 일정을 고려해 부득이 한 달 앞서 예상 면담자 수를 정하고 선착순 접수를 한 뒤, 정해진 숫자를 넘으면 나중에 다시 전화해서 접수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십 번 전화해도 매번 접수가 미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번에 접수가 되는 '복불복(福不福)'현상이 발생한다. 법당 수익이 목적이라면 다다익선이라고 매일 면담을 하고, 될 수 있는 한 접수를 늘려 잡고 급행료를 물리면 된다. 하지만 차 법사는 면담도 인연이라고 한다.

 "부처님도 정업은 못 면하고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면담 접수의 '형평성'과 '소비자 권리' 불만을 토로하기에 앞서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인연의 고리'를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대외 일정을 줄이고 폭주하는 면담을 해소하라는 의견도 있지만, 꼭 법당에서만 하는 것이 면담은 아니다. 차 법사에겐 대외 일정도 면담의 연장선이다. 일종의 '출장 면담'인 셈. 가장 난감한 것이 고위 공직자나 재력가, 정계 인사들이 VIP를 자처하는 경우다. 당일 면담비와 구명시식 비용을 모두 지불할 테니 혼자하게 해달라는 주문. 몇 백만 원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살려달라는 애원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지금보다 더 잘 되겠다는 사람들이 더 아우성이다. 인연이 안 되면 정성과 감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특별대우'라는 자충수를 두게 되면 면담기회가 더욱 멀어져 안타깝다.

 차 법사와의 면담도 마치 컨설팅이나 법률 자문처럼 면담비를 지불한 '소비자의 권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가 옆에서 관찰한 차 법사는 적어도 면담 신청자의 '업(業)'에 관해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다.

 "운(運)을 빌려주어서 당장은 눈앞에서 좋아지게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업보 자체를 녹이는 것은 힘들다. 운은 대출이기 때문에 갚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당했던 업을 돌아보지 않고 일시적 호전에 자만하다가 대출한 운의 빚까지 눈덩이처럼 떠안아 더욱 곤란을 당할 수 있다. 굶어죽기 직전에 겨우 죽 한 그릇 얻어먹은 것인데 일이 다 해결되고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면담은 한 숨 돌릴 여유를 얻은 것뿐이다."

 몇 분의 짧은 시간에 어떻게 면담자의 일신상을 간파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 영혼의 세계에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순식간에 몇 천 년, 수 개의 전생을 오갈 수 있는 것이 하늘에서 허락한 영능력이다. 물리학의 '차원'이란 개념에 해당되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영혼의 언어는 '침묵'이라고 한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 알아서 믿기보다 믿어서 아는 지혜. (작가ㆍpaanmiso@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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