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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영혼 르포] (36) 한표의 위력

2007-04-02 12:40

찰스 1세 한표 모자라 처형
 
 한 표는 운명을 가른다. 한 표는 역사를 뒤바꾼다. 개인과 역사의 운명을 바꾼 의회의 한 표 승부 사례는 흥미진진하다.

 18세기 프랑스 시민들은 엄청난 세금 폭탄에 신음하고 있었다. '빵이 없으면 고기나 과자를 먹으면 되지….' 가난과 굶주림에 시민 폭동이 예상된다는 보고를 듣고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다. 당시 귀족들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을 받고 대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고삐를 쥔 세력들이 장악한 의회에서 왕의 처형에 대해 온건파와 급진파가 열띤 찬반 공방을 벌였다. 마침내 361:360. 왕과 왕비의 처형이 단 한 표 차이로 결정됐다. 항간엔 찬성표 중에무자격자의 표가 있었다고 한다.

 1875년, 프랑스의 국가 형태를 놓고 공화당 대표와 왕정당 대표 706명의 치열한 공방 끝에 제3공화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처음 투표에선 353대353으로 같은 수였다. 재투표 도중 왕정당 의원 한 명이 배앓이로 불참하게 되자 결국 353대352가 됐다.

 영국의 찰스 1세는 의회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권리청원이 제출되자 의회를 해산하고 11년간 의회 소집을 중단한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의 반란 처리 비용을 위해 의회를 일시적으로 소집하였는데 크롬웰이 속한 의회와 정면대립, 청교도 혁명으로 확대됐다. 크롬웰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청교도 혁명을 틈타 찰스 1세에 맞섰다. 그런데 이때 임명 가결된 의회 표결의 결과는 91대90 한 표 차이. 크롬웰은 찰스 1세의 처형을 주도했다. 1649년 1월 찰스 1세의 재판 결과 68대67 한 표 차이로 가결되고 말았다. 1표의 임명과 처형이 명암으로 교차되는 순간, 찰스 1세는 '국민의 적'으로 규정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영국 주거 칙령'은 1701년 5월 14일, 96대95의 한 표 차이로 통과된 법령이었다. 이 마지막 한 표는 웨일즈의 아더 오웬 경이 던진 것으로, 이 한 표로 조지 1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어 영국의 왕권이 하노버 왕가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됐다.

 1800년, 미국 대통령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테네시의 클레아본 의원이 던진 한 표로 아론 버르를 누르고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824년 잭슨과 존 퀸시 아담스의 대통령직 경합은 한 표의 차이도 나지 않아 교착 상태를 이루다가 스티븐 펜실라 장군이 마음을 바꾼 한 표로 아담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는 한 표 차이로 미국의 주로 병합되었다. 51대51로 교착상태이다가 결국 50대52로 이 안건이 통과되었고 텍사스주도 상원 의원들이 26대26으로 팽팽하게 맞서다 한 의원이 마음을 돌려 25대27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어 미국에 합방되었다.

 미국의 태평양 전쟁 승전의 교두보도 한 표였다. 1941년 8월 12일, 징병 제도법의 연장안을 다루고 있던 미국 의회에서는 한 표 차이로 이 법안의 연장이 가까스로 승인되었다. 결국 징병제도가 18개월 동안 연장되었는데 법안의 연장이 통과된 지 4개월 후에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시작됐다.

 위헌의 논란이 끊이질 않는 우리나라의 '간통죄' 조문도 단 한 표 차이로 확정되었다. 1953년 형법 개정으로 간통죄 죄목의 존속을 찬성하는 초안과 전면 삭제 안이 정면충돌했다. '정조관념은 미풍약속이므로 지켜야한다'와 '법률 관습은 남의 집 문턱을 넘어서는 안된다'가 팽팽히 맞서다가 재적의원 112명 중 57표를 얻어 존속안이 가결되고 말았다. 간통죄는 한국에서만 유별난 법률로서 두 번의 헌법소원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작가. paanmiso@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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