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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산소 찾아간 '의로운 소' 사망

2007-01-12 14:49

 자신을 돌봐준 이웃집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가는 등 숱한 화제를 낳았던 경북 상주의 '의로운 소' 누렁이가 죽었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임봉선(73.여)씨의 암소 누렁이가 사망한 것은 11일 오후 8시40분께.

 누렁이의 나이는 20세로 사람으로 치면 60대 노인에 해당된다.

 누렁이는 다섯 살이던 1992년 8월 경북 예천군에서 팔려와 임씨 집에서 자랐다.

 누렁이가 '의로운 소'로 불리게 된 것은 14년 전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5월 26일 오전 11시께 임씨의 남편 고 서석모씨는 외양간에 있던 누렁이가 고삐가 끊긴 채 사라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온 동네를 뒤진 끝에 누렁이를 발견한 곳은 23일 숨져 25일 장례를 치른 이웃집 김보배(당시 85세) 할머니의 묘소.

 이곳은 집과 2㎞ 가량 떨어진 은치산 중턱에 자리잡고, 나무가 무성해 주민들도 찾기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씨는 발견 당시 누렁이가 묘소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소를 달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가 집으로 가지 않고 김씨의 집으로 들어간 사실.

 서씨는 흉사를 맞은 남의 집에 소가 함부로 들어가 결례라도 범하지 않을까 싶어 소를 데리고 나오려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누렁이는 김씨의 넋을 기리기라도 하듯 빈소 정면에 한참을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이 광경이 많은 문상객들에게 목격되면서 누렁이가 의로운 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봤던 안상현(43)씨는 "외양간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소가 어떻게 고삐를 끊고 김 할머니의 묘소까지 찾아갔는지도 믿기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 빈소를 찾아 문상하다시피 한참을 서 있다가 자기 우사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김씨의 큰아들이자 상주(喪主)였던 서창호(당시 78세)씨는 빈소를 찾은 소에게 일반 문상객처럼 접대해야 한다며 이튿날 막걸리 2병과 두부 3모, 양배추 1포기, 배추 1단을 누렁이에게 주며 예를 갖췄다.

 누렁이가 이렇게 숨진 김씨의 묘소까지 찾아갈 정도로 각별한 정을 보인 것은 김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누렁이는 농사에 동원되지 않아 외양간에서 홀로 지냈고, 이웃에 살며 인정 많던 김씨가 매일같이 찾아와 소를 쓰다듬으며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김씨는 주인이 없을 때면 소에게 먹이도 줘가며 정을 나눴고, 소도 외양간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반기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누렁이의 행동에 감동한 주민들은 묵상리 입구에 의로운 소 비석을 세웠고, 민속사료 연구가 우영부씨 등은 소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주인 임씨로부터 200만원을 주고 사들인 뒤 임씨에게 자연사할 때까지 위탁해 길러 줄 것을 부탁했다.

 우성사료와 상주축협 등은 매달 사료와 볏짚을 무상 지원했고, 상주수의사회도 무료진료를 해왔으며 누렁이는 줄을 풀어 놓으면 김씨의 묘소에 자주 찾아갔다고 주인 임씨는 전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듯 누렁이는 며칠 전부터 서있기조차 힘들어 하더니 각종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11일 죽었다.

 누렁이가 자연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주시와 주민들은 12일 염과 입관 등 사람 장례를 치르듯 절차를 거쳐 사벌면 삼덕리 상주박물관 옆에 묻었다.

 상주시는 의로운 소에 대한 내력과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의우총(義牛塚)을 만들어 유적화하고, 향토 민속사료로 전수될 수 있도록 기록을 보존키로 했다.

 소를 길러온 임씨는 "죽기 며칠 전에 김보배 할머니 영정을 갖다줬더니 쓰러져서 힘이 없는 와중에도 혓바닥으로 핥았다"며 "자식처럼 기르며 같이 살았는데 속이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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